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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신작시/김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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π 외 1편
해가 세 아이의 머리에 얹혔습니다
남은 둘이 될 때마다 번갈아 해를 나눕니다
남은 일이 그것밖에는 없다는 듯이
무언가를 잃고 남은 것은 아닙니다
목 위에서 흔들리는 얼굴을
아니라고 믿어버린
얼굴을 생략해버린
아이들은 셋이 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번갈아 목을 비워두기로 한 것이지요
하얗게 달구어진 눈을 가라앉히며
엷은 그림자로 돌아오는 아이를 위해
남은 둘은 머리를 기댑니다
사이가
없습니다
기울어 본 적 없는 아이들은
더 자라지 않습니다
눈썹은 더 하얘지지 않습니다
셋의 띄어쓰기는 언제 시작될까요
목 뒤쪽을 담고 비우는 음영처럼
서로의 몽타주가 되어가는
아이들이 어렴풋합니다
일식日蝕이라도 연습하는 걸까요
셋에게도 무언가 잃을 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식어가는
무딘 모서리라도
π
―거미
거미가 매번 같은 집을 짓는 것은
신이라는 음률이 그렇게 동일했기 때문이다
음률이 반복 재생되는 밤에도
거미는 거기에 들린 먹이들을 천천히 재생할 수 있었다
내일의 신을 연습할 때
거미는 음역을 조율해 보곤 한다
신이라는 음역을 빌린 거미줄이 울리면
같은 형상의 의문을 입은 것들이 재생을 재생한다
거미줄에 들려 알을 터는 것들
내일의 신이 일치할 때
시간은 거미줄에 감긴 자국이 있다
거미는 자신의 울음을 갖지 않았다
회귀선이 거미줄에 닿는 동안에도
신은 어른이 아니었다
김성대∙2005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김수영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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