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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신작시/하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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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346회 작성일 11-12-3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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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상만
  우울한 족보 외 1편



어떤 날에는 시장에서 작은어머니를 마주쳤을 때의 기분을 어머니에게 묻고 싶다 큰고모가 어머니의 머리채를 쥐어뜯고 있을 때 오물이 담긴 대야를 작은아버지가 뿌린 적이 있었다


작은할아버지의 돈을 빌려 아버지는 집을 지었는데 아버지가 갚지 않아서 할아버지는 목을 매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다 나는 작은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지만 내 인사를 받을 때마다 기분이 어떠신지 묻고 싶다


둘째고모는 미국에서 죽었고 내가 빚을 떠안았다 사촌들과 마주치면 어떤 기분일까, 얼굴을 모르니 잘 된 일이다 어렸을 때 헤어졌으니 돌아오지 마라


조그만 동네에서 혈육인 채, 모른 척하며 친척들은 살았다


할머니가 눈을 감자 친척들이 모였지만 아주 오래 전 일로 새벽에 소동이 있었다 그 소동 속에 막내고모가 목소리를 불쑥 내밀었는데 십 년은 못 본 얼굴이었다


한 번 갈라진 가지들은 처음 갈라진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타인을 위해 한 번도 진화의 길을 걸어 본 적 없는 생명들, 다윈은 옳다


하나의 점으로 상징되던 그곳이 부러졌으니 이제 피차 돌아볼 곳도 없었다

 

 

 

불가피한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를 잃게 된다, 는 속담 같은 것의 증거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른들의 말씀이 모두 옳았다, 는 말을 부정하고 싶어서 밖으로 나간 적도 있습니다


언제나 내 손에 멱살을 잡혀 끌려 왔습니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무얼 하십니까, 평균적인 당신의 삶이 궁금합니다


식후 삼십 분에 세 번 먹어야 하는 약은 두 끼를 먹는 나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당신에게까지 불친절합니까


일 년에 한 번 휴가를 정하고 떠나는 자동차의 행렬과 바다가 싫습니다


3시간을 일하고 2시간을 쉬고 3시간을 일하고 퇴근하는 유토피아에도 노예는 있습니다 그러니 유토피아는 책 속에도 없는 천국입니다


노예를 부리기도 하지만 결국 노예로 사는 삶이 당신의 삶인데, 휘파람 불며 일하는 당신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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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내가 이상한가요,


승진을 하고 돈을 벌면 다시 태어날 수 있나요,


살다보면 증명되는 어른들의 말씀이 과학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과학에는 예외가 없는 건가요


나는 과학 책을 즐겨 읽지만 다른 것을 믿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뱃속에 착상되는 순간 나는 세상 속에 있었습니다, 작은 결론 하나로 바꿀 수 있는 대전제는 없을까요


모양만 바뀔 뿐 질량은 보존됩니다,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든 나는 나의 무게로 살아야 합니다

 

 

   하상만∙200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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