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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가을호)/신작시/최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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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137회 작성일 11-12-31 21:57

본문

   최혜숙

   G선상의 아리아 외 1편



트렌치코트 깃을 목덜미까지 올리고

G선 위에서 사는 여자가 있다네

그녀의 손은 너무 떨려서

가끔은 활을 잡을 수도 없지만

그녀의 아리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네

G선의 한 끝에 서서

혼신의 힘을 다해

첫 번째 악장을 연주하고 있네

느리게 활을 문지르네

가슴 밑바닥을 할퀴며

낮게 깔리는 선율을 타고

잃어버린 아이가 돌아오고 있네

현이 끊어지면 안 되네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아이는 영영 가버릴 지도 모른다네

가능하면 낮은 저음으로

현의 울림통을 자극해야만 하네

크리스마스에 흐르는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G음에 묻힌 아이의 웃음소리

점점 가까이 들려오네

언 활을 들어 올려

붉은 핏줄을 깨우네

용솟음치는 피들의 향

 

아이가 그녀의 심장을 흔드네

이제 마지막 악장을 연주할 차례라네


오늘은 즐거운 크리스마스

오늘은 즐거운 크리스마스


외로운 바이올린 속에서 들리는

돌아온 아이의 따뜻한 노래

온 세상을 가득 채우네

 

 

 

 

不眠



밤새 헤아린 양이 몇 마리인지

침대 위에도 옷장 속에도 몽글몽글하다

잠을 자지 못한 밤일수록 그 수는 점점 늘어나

나중엔 방문을 열고 한 마리씩 거실로 내보낸다

온 집안에 양이 가득 찰 때쯤

제풀에 지친 나는

웅크린 태아처럼 풋잠이 든다


양 떼를 몰고 바람소리를 내며

몽골의 초원을 달리는 소년이 있다

어릴 때부터 말 젖을 먹고 자란 소년은

하루 종일 달려도 결코 지치는 법이 없다

사람들은 소년이 몰고 온 몽글몽글한 양을

서로 사려고 다툰다


푸른 초원에서 싱싱한 풀을 먹은 양들은

점점 토실해져서

한 마리씩 내 꿈속으로 다시 돌아온다

나는 또다시 밤마다 양을 센다

양 한 마리

……

양 백 마리

……

양 천 마리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양과는 달리 나는

날이 갈수록 얼굴이 파리해지고 기운이 없다

늦은 밤 혼자 깨어

양을 세는 일은 이제 그만하게 해달라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밤이 늘어간다


몽골 소년의 말방울 소리가 들린다

오늘밤도 그는 먼 길을 달려와

내가 세어놓은 양들을 몰고

몽골의 초원을 향해 말을 달려 갈 것이다

 

 

   최혜숙∙2007년 ≪시현실≫로 등단. 시집 <그날이 그날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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