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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신작시/장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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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외 1편
알몸 둘이
축 처진 거죽 몇 겹 안고
목욕탕 문을 밀고 들어왔다
더듬더듬 앉아
마른 명태 같은 팔로 허우적, 허공 웅덩이에서 물을 퍼낸다
수분이 다 빠진 굽은 고목 둘이
서로 형님 동생 그러며 근근이 등 밀어 준다
손닿지 않는 것이 어디 등뿐이랴,
허연 실타래 같은 세월 굽이친 머리에
흰 거품 뭉게뭉게 피워 올려 구름 동산 만들려나,
팔 다리 얼룩덜룩 저승꽃
하얗게 거품꽃 부풀려 빈 몸에 입혀본다
거품 같은 한 시절,
물 몇 바가지 퍼부어주니 순식간에 하수구로 흘렀다
나도 그 하수구에
누더기 껍데기 하나, 내던지고 왔다
내 탯줄 인제 끊겼다
하얀 천이 서서히 얼굴을 덮는다
이마를 짚은 손바닥 온기가 식는다
내 얼굴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 빠져나간다
뼈에 찍힌 손바닥 지문이
차고 딱딱해진다, 손바닥이
닿았던 곳마다 냉기가 정전기를 일으킨다
흰 천이 덮어버린,
억장 속에서 시들시들 익어간 허공의 무늬들
그 무늬 쓸어 담아 봉인한 차가운 얼굴
덮었다는 것은
모태가 줄을 끊고 체온을 자르고
나를 잘라냈다는 것
배꼽 깊이 우물 한 채 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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