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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신작시/김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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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796회 작성일 11-12-3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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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산
  詩魔 외 1편

   ―십우도(둘) 

 

 

하지만 쓸쓸한 비문碑文을 누가 읽고 갈 것인가?

 


죽음의 음악 멀리서 오는 게 아니라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온다   

 


누가 오느냐, 누가 걸어오느냐. 내게 산 자는 방문하지 않는다. 모든 방문자는 죽은 자인 것이다. 죽은 자의 방문은 예정에 없다. 가장 빠른 늦은 방문이거나 가장 늦은 빠른 방문이다. 낭비한 생이 휴지인가 의심하라, 나는 오히려 구겨진 종이 더미에서 죽은 자의 글자를 해독하려 했다. 그러나 쓸데없는 짓임을 알았다. 내버려 두어라, 산 자는 산 자의 글을 쓰게 하고 죽은 자는 죽은 자의 글을 쓰게 하라.

  

그때부터 내가 아는 죽은 자 몇이 찾아와 시를 썼다, 생전에 쓰려던 시를 아직 못 썼다고. 내가 모르는 죽은 자 몇이 찾아와 시를 썼다, 생전에 쓴 시를 아직 지우지 못했다고. 언젠가 이 시는 써질 것이다, 너무 많은 빗돌을 세웠노라 젊은 날! 젊은 날 죽은 자들은 살아 있다. 그들은 죽어서야 시를 쓰는 것이다. 생은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고 죽음은 생을 허락하지 않았으니, 멀리 멀리 갔더니 가장 가까이로 왔다.

  

시를 쓰는 한 별은 빛나리 

         

하지만 쓸쓸한 육체의

비문碑文을 누가 읽고 갈 것인가?   

 

그해 여름 그와 나는 먼 지방 도시에 있었다. 그날 밤 누이네 집 옥상 거센 바람 불었다. 먹구름 속에서 별은 무섭게 빛났다, 그와의 대학 시절은 그것 밖에 없다. 죽음의 도시 한여름 밤의 기억 옥상에 텐트는 고정되지 않는다! 그의 깡마른 육체는 육체랄 것도 없었다, 각혈하여 허공에 뱉었다. 폐결핵을 숨겼다, 왜 젊음을 숨겨야 했는지 모르지만 묻지 않았다. 그때 죽음의 도시에서 유령처럼 숨어야 했기에. 죽음의 도시 죽은 자가 신이기에 산 자는 입을 다물라. 다만 홀로 죽음의 도시 노래하던 해쓱한 별.

 

그해 여름 그와 나는 먼 지방 도시 벌판을 헤매고 있었다. 죽은 자들의 황량한 벌판 상여도 없이 암매장 당한 벌판 펼쳐지는 그때 바윗돌 보였다. 죽은 자가 서서히 일어서고 있었다. 다 일어서지 않은 채 웅크렸다. 돌상여 한 채 운구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바위의 집에 누가 사나, 둥근 바위 우리는 문을 두드렸다. 거기 누구 없소? 대답 없는 바윗돌 언제 꽃 피나, 그때 그 바위 바윗돌 노래로 지어진 줄 몰랐다. 바윗돌 노래 혼자 중얼거리며 그 바위인 줄 몰랐다. “찬비 맞으며 눈물만 흘리고 하얀 눈 맞으며 아픔만 달래는 바윗돌” 바윗돌 벌판에 놓여 있었다. 바위는 언제 꽃 피나, 죽음의 벌판 우리는 손님으로 와서 바위를 굴려 캄캄한 세월 앞에 놓는 거였다. 

 


하지만 이 쓸쓸한 비문碑文을 누가 읽고 갈 것인가?

 


오랜 세월 지난 후 그의 유고 시집 다시 펼쳐 든다. 우연히 방문객이 그일 뿐 누군들 상관없다. 나는 죽은 자가 좋기에 책을 읽는다. 책은 죽은 자의 비석이다, 검은 글씨 죽은 자의 비문이다. 그의 장례식은 황량한 벌판에서 치러졌다. 여전히 바윗돌 놓여 있었다. 망자들이 돌상여를 떠메고 가려 했다. 바윗돌 꿈적하지 않았다. 나는 바윗돌 천천히 불렀다. 죽은 자가 장례를 치러라, 아직 장례 치르지 않았기에 누가 죽음의 벌판 떠메고 가랴. 우리는 하나의 바위인 것을 지상에서 천상으로 굴려가며 우리 지구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굴리는 바위인 것을. 바윗돌 어디나 널려 있기에, 하물며 돌상여 많았기에! 우리 놀던 바위 모두 돌상여. 돌상여, 돌상여라!

 


더 이상 나는 산 자들을 읽지 않는다, 아직 암매장 벌판은 읽혀지지 않았다! 암매장 벌판 헤매는 건 죽은 자들이다. 죽은 자의 어깨가 무겁다. 축 처진 육신의 벌판 산 자에게 나눠 주어라. 죽은 자는 죽은 자끼리 산 자는 산 자끼리 죽음의 벌판 건넌다. 오직 산 자와 죽은 자가 굴리는 바윗돌 불러라! 오직 죽은 자를 태우고 갈 돌상여 불러라! 아직 장례는 치러지지 않았다, 나는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의 장례를 기록한 책이 나왔지만 장례를 믿지 않는다. 그의 직장 동료인 소설가 구효서가 공무도하가 ― 그는 스물여덟 죽기 전까지 운동권 학생시절부터 친구들 옥바라지 했고, 성악을 전공한 애인이 있다는 따위―를 썼기에 오히려 장례는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 곡성이 울렸다, 여전히! 장례 행렬 속에 곡을 하는 여인이 보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 목 놓아 울었다. 폐결핵으로 죽은 애인을 위해 울음을 퍼다 날랐다, 강물을 끌어다 울진 않았지만 울음은 음악이었기에 그녀 울음은 마르지 않는다. 여태 누가 울고 울음은 높고 낮은 음이 섞여 바람 속에 퍼져 나가 강에 울음을 보탠다. 강물은 마르지 않고 다시 그녀의 울음에 보탠다. 나는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고 믿는다, 영영 공무도하가 장례는 끝나지 않는다.

 

 

 

 

 

나는 꽃구경 가요

   ―여의도에서 

 


상처는 거품처럼 게워냈으니

딱딱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전철을 타고 입구부터 붐비는 인파 속을

마침내 흘러와서 손을 꼭 쥔

아이와 엄마, 나는 미아처럼

쓸쓸히 늙어 늙은 꽃나무 꽃필 때

 


여린 가지에 눈시울 붉어져

꽃은 피고 세상에 소풍 나온

아이와 엄마 꽃 속으로 사라지고

 


상처는 거품처럼 게워냈으니

딱딱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늙은 벚나무 인파를 부르고

봄날에 나는 꽃구경 가요

옛날의 꽃상여 한 채 눈부셔라

붉은 빛이 희어져 물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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