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43호(가을호)/신작시/이진명
페이지 정보

본문
기본基本, 이 하늘 아래 외 1편
서울에 살지 않고
벽촌 몇 곳을 돌며 사는 친구
일 년에 한두 번 전화 온다
어디야
내 있는 곳이지
어디에 있냐니까
이 하늘 아래 있지
이 하늘 아래 있으면, 그럼
…된 건가요 …된 거겠지요 …기본이니까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
기본을 잊고 있었어요
하늘 위 당신들처럼
기본이 안 되어 있을 때가 문제지
풀 수 없는 문제 그래서 더욱 문제가 되는 문제지
이 하늘 아래 있다면 문제 없어요
기본을 지키고 있는 친구처럼
같이 기본을 지키는 우리처럼
하늘 아래 같이 있다는 이 큰 기본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
이 기본은 너무 커 보이지 않아
우리들 사이 당신들처럼 극한으로 멀어
절대 같이할 수 없어 극악을 저지르기도 하죠
자주 보지 못하는 친구
멀리 도는 행성
이탈해서 기본을 기억하고
이탈해서 기본을 아는
이 하늘 아래 어디에서 무전이 온다
불현 허공과 부닥치는 기본이 온다
이연離緣 공고
한 종교신문에 실린
○○소속회와 사제간 이연의 뜻을 밝힌다는
성직자 명의의
이연 공고문을 다 본다
시원한 소나기 맞은 이 맛
홀딱 젖은 알몸에 단김 오르는 이 맛
핥고 싶은 진작 출현했어야 하는 이 맛
살아 하는 이별 공고
굳은 몸이 풀리는 비전이 보인다
이혼도 절교도
부모형제 의절 같은 것도 공고 때려야 하지 않겠나
결혼은 청첩 때리고 자매결연은 초대 때리는데
(죽은 이 부고 때리는 건 여기에선 별개 문제)
두 혀로, 다르게 또는 없는 것도 말하고
교묘히 비틀고 야바위 작태를 뒤로 생산하기보다는
연인아 친구야 동업자야 모든 사회적 존비속아
이연 공고를 내 이별 공고를 내
깨끗하고 말끔해 오히려
선하고 선해 아름다워 거짓 그칠 수 있어
선하지 못한 사후事後를 그쳐야 한다는 것
이 성직자는 그걸 바로 알았던 거다
한때 옷깃 스친 인연의 소중을 깊이깊이 알기에
법, 법도대로 이연을 공표하는 것
인연의 사실을 가장 높이 매달아 존중을 보내는 것
성속 불문
찢어진 것을 공고하자 깨진 것을 공고하자
파경을 파토를 결렬을
등 돌린 것을 등 돌릴 것을
투명 장부를 기리듯 칭송받는 투명 문화 정착 되리
앓지 말고 상하지 말고 욕지기 말고
무엇보다 증오와 분노 뿌리지 말고
자신과 상대 그 어떤 살해도 염불하지 말고
꿈이 하나 뿔처럼 줄기차게 돋았다
가만한, 이 간지러운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이연 공고의 꿈, 흐흐흐
너 죽지 말고 나도 죽지 마라
이연 공고를 내는 내 꿈의 실현으로
너와 나, 인연의 한때를 높이 저자에 걸어
한없는 한없는 존중을 보내 줄께
구토하는 존중을, 으흐흐흐
- 이전글43호(가을호)/신작시/백인덕 11.12.31
- 다음글43호(가을호)/신작시/김영산 11.12.3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