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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신작시/백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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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573회 작성일 11-12-3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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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덕

   사랑이 온다면 외 1편

 

 

사랑은 이쪽에서 왔네.

붉은 라이터로 담뱃불이나 붙이려

저쪽으로, 아니 아래로 한껏 웅크렸을 때

파란불이 빨갛게 사그라지기도 전, 아니

겨우 가린 손바닥 빗금 하나 읽기도 전,

사랑은 아마, 이쪽에서 왔었네.


봄은 어떻게 끝났던가?

부러진 목련 가지였던가, 짓밟힌 철쭉 꽃잎이었던가?

바람은 무엇에서, 어디로, 왜 불어갔는가?


초여름, 폭풍이 지나간 샛골목을 간다.

안팎을 잃어버린 문짝 하나, 누가 죽었는가?

사진은 없고 풀 자국만 선연한 앨범 한 장, 누가 죽었는가?

덧양말이 고스란히 끼어있는 운동화 한 짝, 누가 죽었는가?

알 없이 비틀려버린 갈색 안경테, 또 누가 죽었는가?

표지만 뜯긴 누런 시집 한 권,

누군가, 기어이 찬란한 죽음의 도열堵列에 뛰어든 그는?


사랑은 저쪽에서 왔네.

느린 발길을 자꾸 비트는 주머니 속 구식 핸드폰의 떨림으로,

하나, 둘, 셋 혹은 무한히 소실消失되는 신호등 불빛으로,

기꺼이 건네주고, 끝내 건너가지 못한 저녁 그을음. 


지친 바람이 키 낮은 입간판이나 돌릴 때,

사랑은 아마, 저쪽에서 왔었네.


여름은 어떻게 시작되었던가?

우표를 바를 때였던가, 떨며 찢어 던졌을 때였던가?

비는 무엇에서, 어디로, 왜 쏟아지는가, 쏟아지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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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물폭탄이 쏟아졌다.

한낮에 또 쏟아진단다.

서둘러 참호를 파자, 아니지

방주를 만들자.

헌 책상과 책장을 헐고

싱크대와 신발장도 뜯어내자.

창틀을 벗겨 쓸 만한 목재를 고르고

방문은 떼어 배 바닥에 깔자.

옷걸이로 노를 만들고

장판을 뜯어 지붕을 씌우면

아, 빨간 다라는 구명보트로 매달자.

한낮 분주한 몽상에 비구름보다 먼저

무거운 잠이 쏟아질 때,

사방에서 공습해제 사이렌이 울린다.

지레 피습된 처참한 방 한가운데

물 먹기 싫어 질식사한 변사체로 누워

틀 없는 창밖을 내어 본다.

아주 머―얼리, 한참을 내어다 본다.

정말, 그 방주엔 무엇을 싣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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