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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신작시/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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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외 1편
꽤 큰 유람선이 제 무게를 바람에 놓아주며
흔들리고 있다
다행이다
멀미약을 먹은 게
바닷물은 출렁, 칼날처럼 빛나고
이른 봄이면 동백과 원추리가 온 산을 덮는다는 말에
마음이 저 먼저 바쁘다
겨우 두세 명이 누울 수 있는
유성모텔은 바다가 멱 감고 나온 듯
온통 절은 냄새다
바닷마을이라고
돌고래처럼 펄쩍펄쩍 뛰어오르고 싶은지
사람들 밤새 설쳐대며 시끄럽다
한 잠도 눈 붙이지 못해서인지
햇빛 아래 붉은 홍도바위 때문인지
피곤한 눈이 풀어지질 않는다
깃대봉 아래
바다가 동백숲 사이로 몸통 드러낼 때
아! 홍도
기어이 내 눈 풀어 벌어지게 한다
길 위의 얼굴
태안, 당산 3리에서
길 잃어버린다
숙소와 숲길 사이에서
내 발걸음 잠시 머뭇거린다
숲길에 들어서니 시골마을이
슬프게도 아름다운 초록색을 띄고 있다
그 틈으로 보이는 노인 한 분,
널어놓은 고추를 뒤적이며 연신 땀을 닦는다
서걱이는 숲길을 들어서니 화들짝 놀란
다람쥐 한 마리,
꽁지가 빠져라 달아난다
노인의 표정이 화들짝 나를 반긴다
무시로 드나드는 바람이 내 얼굴 스치면서
매운내가 눈 속을 확 파고 든다
“안 매우세요?”
“웬 걸 맵지, 놀러 왔구먼”
공부 많이 시킨 자식들 객지로들 다 나가 잘 못 본다는
노인의 하소연,
연신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상한 고추를 잘 끄집어내신다
상처가 상처를 알아본다
재채기로 답하는 당산 3리,
기다리는 얼굴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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