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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신작시/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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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길 외 1편
어린 마음에 날이 어둑해지도록 안 오시는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웃성골 밭, 당산뫼 논고랑에 우리 아버지 빠져서 못 오시나 무서운 줄도 모르고 뒤지고 다녔다. 다른 길로 집에 오신 아버지 어린 아들 발 헛디뎌 저수지에 빠졌나 달빛 아래 전답을 순례하셨다.
뙤약볕에 벌초하러 갔다가 나는 혼자 아는 샛길로 오고 식구들은 마을 뒷길로 왔다. 한참을 기다려도 식구들이 오지 않아 마을 뒷길로 마중 나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집에 가니 식구들은 벌써 돌아왔는데 큰아들만 나를 찾으러 갔다. 산중의 아들이 걱정되어 땀 뻘뻘 흘리며 한 바퀴 돌고 오니 역시 땀 뻘뻘 흘린 아들이 막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허리 분질러진 메타세콰이어
아파트단지의 메타세콰이어
8층 높이쯤에 이르도록 자랐다
몇 해 전 까치내외 집을 분양 받아
해마다 새끼를 잘 키워 낸
봄이면 비바람에 헝클어져 리모델링한
숲 우거진 전원주택이었다
어느 날 아파트 풍경이 이상해졌다
누군가 4층 높이에서 메타세콰이어 허리를 잘라버렸다
둥지의 세상 물정 모르는 까치새끼들과
내 집 마련해 좋아하던 까치내외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그늘을 드리우는 것은 가만 두지 않겠다고
성공한 자만이 살 수 있는 이 아파트
10층 아파트보다 높이 자라려는
메타세콰이어의 높이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아파트 주민 회의가 결정한 것은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난 그 해 봄날이었다
어렵게 집 한 채 마련해
새끼를 낳고 먹이를 물어 나르고
사랑을 나누던 그들처럼 살던 까치내외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길조라고 부르던 그들의 아파트 단지에
허리 분질러진 고약한 풍경 뿐
오늘 아침도 까치소리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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