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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집중조명해설/소통을 꿈꾸는 ‘햇살’의 시선―이채민의 작품세계/권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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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가을호)집중조명해설/소통을 꿈꾸는 ‘햇살’의 시선―이채민의 작품세계/권경아
이채민은 세계와의 소통을 꿈꾸고 있다. 소통을 꿈꾸는 그의 시적 인식은 삶을 향해 있다. 시작메모에서 “우주의 성감대에 가닿는 비밀통로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 말하고 있는 것은 삶의 다양한 양상들을 모두 끌어안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세계, 우주와의 소통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채민의 시들은 세계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슬픔, 고독,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채민은 세계와의 소통 불능을 ‘잔인한 4월’이라 말한다. 삶에 다가가려 하지만 삶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채민의 시들은 이러한 삶, 세계, 우주와의 거리에 대해 아파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픔, 슬픔, 고독이 바로 이채민의 시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망가진 문짝처럼
그와의 거리에
한꺼번에 피어버린 수양벚꽃
그리고 햇살은
무작정 부시고
통통했다
―「잔인한 4월」 전문(≪시인시각≫ 2011년 여름호)
지난 여름에 발표된 「잔인한 4월」에서 시인은 “그와의 거리”를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삶이며 세계이고 또한 우주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러한 세계와의 거리를 “망가진 문짝처럼 삐걱”거린다고 말하고 있다. 이 시는 이채민의 시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와의 소통을 꿈꾸지만 세계와 시인 사이에는 “망가진 문짝처럼 삐걱거리는” 거리가 존재한다. 그 거리를 인식하고 있는 시인에게 그것은 슬픔이고 고통이다. 그러나 그 슬픔과 고통까지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고 끌어안고 있다. “햇살은 무작정 부시고 통통했다”라는 말 속에는 “그와의 거리” 또한 ‘햇살’로 받아들이고 그 ‘햇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의 신작시들에서도 이러한 시적 인식은 그대로 나타난다.
2.
나는 분명 그로테스크하다
이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다
화성에서 나를 찾아 여기까지 와 준
남자를 위해
부서진 알몸으로
기꺼이 대나무잎을 흔들었던 것처럼
그리고 대통 속으로
기어들어가 수액을 빨고
바람도 가르지 못한
완벽한 하나의 물방울이 된 것처럼
멀리서 날아온 멍텅구리 새들이
잠시 앉았다 날아가는
이 울타리를
언제나 떳떳하게 펼쳐놓을 수 있을까
벼락이라도 맞아 부끄럽지 않게 된다면
나, 기꺼이
치자꽃 향기 뭉개어 바르고
또 다른 화성의 남자 깊숙이 끌어안고
천국의 계단에서
벼락, 왕창 맞겠다
―「쓸쓸한 고백․2」 전문
이 시에서 세계는 “화성에서 나를 찾아 여기까지 와 준 남자”로 그려지고 있다. ‘그’를 위해 시인은 “부서진 알몸으로 기꺼이 대나무잎을 흔들”고 “투명한 햇살을 끌어와 손뼉을 치고” “바람도 가르지 못한 완벽한 하나의 물방울”이 된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것이다. “벼락이라도 맞아 부끄럽지 않게 된다면” 시인은 기꺼이 “또 다른 화성의 남자 깊숙이 끌어안고 천국의 계단에서” 벼락을 맞겠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이며 우주인 ‘남자’, 화성에서 시인을 찾아와준 ‘남자’는 세계와 다름아니다. 세계이며 우주인 그 ‘남자’와의 소통을 위해서 시인은 자신마저 기꺼이 버리겠다는 것이다. 시의 마지막에서 “또 다른 화성의 남자”를 끌어안고 있는 것은 세계와 우주는 하나로 정의되거나 단일한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세계의 모든 대상들과 소통의 장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햇빛이 땅 속으로 휘어들었다
허공으로 치솟은 한쪽 귀에 화살이 박히고
목구멍에 걸려있던 욕 한 사발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사람이 뱀보다 징그러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한 주인에게 일생을 걸고
복종과 순종 밖에 모르는
진돗개, 풍산개, 시베리안 허스키, 막내처럼 키우던 푸들과
치와와 그리고 똥개라고 부르는 진짜 개들의 순정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개를 어설프게 닮은 사람에게는 욕 밖에 줄 것이 없다
오뉴월 논두렁에 황소개구리마냥
그래서 욕들이 세상에 득실거리고
수상한 외로움과 마주섰을 때
사람들은 진짜 개 같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개와 같은 사람이 그립다」 부분
시인은 인간들과의 소통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삶 속에서 대면하게 되는 인간의 군상은 시인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때 시인의 시선이 닿은 것이 바로 “복종과 순종 밖에 모르는” “진짜 개들의 순정”이다. “개를 어설프게 닮은 사람”에게 시인은 “욕 밖에 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거짓이 만연한 세상. “욕들이 세상에 득실”거린다. 이 삶 속에서 시인은 “수상한 외로움”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 개 같은 사람” “복종과 순종밖에 모르는” 개와 같은 사람이 그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어미 코끼리가 학살당한 충격으로
밤새도록 악몽을 꾼다고 했다
그래서 군복을 벗으면, 제일 먼저
캉가를 만나러 가겠다던 그녀 아들의 목소리는 이미
나이로비의 푸른 초원을 날아가고 있었다는데.
아침밥을 먹기도 전에
혼자 사는 그녀의 현관에 떨어진 전보쪽지가
나풀거리며 복도에 안착했다
‘남00병장 순직’
그 후 701호 현관을 통해
몇 개의 눈알과 열 개의 이빨이 빠져나가고
시냐크 앞에서 발작하던 고흐의 모습이 언뜻언뜻 엿보였다
다행이 귀는 자르지 않았지만, 그녀는
심장을 도려내고 싶다고 했다
열흘 후면
아들과 함께
캉가의 악몽을 달래 주려했던 그녀는
누르스름한 빛깔로
정수리가 깨진 듯이 몹시 흔들거렸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내내
701호 현관에서는 아프리카의 눈물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701호, 그녀의 여름」 전문
이 시는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케냐의 새끼 코끼리 캉가는 인간들에 의해 어미를 잃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군에서 제대를 하면 제일 먼저 캉가를 만나러 가겠다던 그녀 아들. 캉가의 슬픔과 고통을 끌어안고자 했던 그녀 아들은 그러나 이제 케냐로 떠나지 못한다. 그녀의 현관에 떨어진 아들의 순직통보. 어미를 잃은 캉가와 아들을 잃은 그녀.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싶었던 아들이었지만 그녀에게 또 다른 슬픔과 고통을 안겨주게 된 것이다. “701호 현관에서는 아프리카의 눈물 킬로만자로 만년설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자식을 잃은 그녀의 슬픔과 고통을 시인은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슬픔을 잔잔하게 서술하며 바라보고 있지만 시인은 그녀의 슬픔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시 전체에 흐르는 “아프리카의 눈물”은 그녀의 슬픔이자 곧 시인의 슬픔으로 그려진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하려는 시인의 의지인 것이다.
만삭의 가을을 품고 용문산을 오르고 있다
이별을 준비하는 남자는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내려가고 있다
여자가 꾸었던 간밤의 꿈을 아는지 山頂에는
불긋한 단풍들이 튕기듯 튀어나와 왁자지껄하지만
흐르는 계곡물에는 울긋한
남자의 無心만이 흐르고 있다
결혼이 하고 싶은 가을여자
슬픈 노래를 많이 알고 있는 겨울 남자
서로가 성큼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버팀목에 기대어 뿌리를 드러내고 굳어가는
저 노송의 안부를 알기 때문이다
손발이 굳어지고 점점
입술이 굳어지는 사랑이 치명적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늙은 소의 워낭소리를 품고
겸허하게 늙어가는 가을, 용문산
터질 듯이 여물어가는 산정을 등에 지고
올라갈 때와는 반대로 여자와 남자가 토닥토닥
산을 내려간다
―「가을, 용문산」 전문(≪시현실≫ 2010년 겨울호)
이 시는 인간들 사이의 소통불능을 남녀의 사랑으로 담아내고 있다. 사랑하는 두 남녀. 그러나 그들은 함께 하지 못한다. 그녀는 “결혼이 하고 싶은 가을여자”이고 남자는 “슬픈 노래를 많이 알고 있는 겨울 남자”인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삶의 간극이 그들 사이에 존재한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거리를 안고 산을 오른다. “서로가 성큼 다가서지 못하는” 그들 사이에 삶이 있다. 삶은 선정에 피어있는 “불긋한 단풍들”처럼 “왁자지껄”하다. 삶은 설명할 수 없는 소음으로 인간들 사이를 떠도는 것이다. 이별을 준비하는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산을 오른다. 이 시는 인간들 사이에 설명할 수 없는 소통불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로 담아내고 있다. “올라갈 때와는 반대로 여자와 남자가 토닥토닥 산을 내려”가고 있다. 결국 소통되지 못하고 이별을 맞게 되는 연인을 시인은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인간들 사이에 알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한다. 시인은 그들의 간극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간극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중요하다. 그들의 이별은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다. 단지 서로의 진실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일뿐. 시인이 이 시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들 사이에는 어찌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 시인은 이러한 인간들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고 있다. 시인이 꿈꾸는 소통은 무조건적인 소통이 아니다. 그가 꿈꾸는 소통은 인간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고 그 간극을 넘어설 소통을 꿈꾸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며 또한 그 간극까지도 끌어안는 소통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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