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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가을호) 기획 젊은 시의 징후를 찾아서/ 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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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313회 작성일 11-12-2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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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준 

   방화범이 지은 집 외 1편



불을 놓으면서 사내는 옷장의 복부에 관해 생각한다

뿌연 이중창 속 침대로 걸어가는 아이의 실루엣을 생각한다

나팔꽃처럼 번지던 한 송이의 불빛이, 바깥을 향해 조용히 흔들릴 때

풀어놓은 불이 사납게 방안을 짖으며 날뛸 때

눈 없는 인형이 춤을 추기 시작할 때

몸 안팎에 챙겨놓은 사물의 색과 연기들이 떠오르면서, 순결해질 때

주검보다 먼저 사내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죽은 줄만 알았던 범인이 진실을 뒤집어 밟고 걸어올 때

걸어 다니면서 온몸으로 구둣자국을 찍는 느낌표와 날마다 추방당할 곳으로 기어들어가는 검은 외투에 관하여 생각한다 

범인 얼굴을 물음표로 만드는 사건이 축하고 옷걸이에 늘어질 때 

서로가 서로에게 좀 더 견고한 손잡이가 되어줄 때 

옷장의 숨어든 아이에 대해 생각한다

옷장 속에서 다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무릎 속으로 침몰시키는, 아이의 긴 잠의 대해 생각한다

살이 고요를 향해 녹아가는 것을 생각한다

범인이 씩, 웃음을 짓는 착란에 관해 생각한다

불길과 사내가 침묵할 때 

불길하게 불길이란, 서로에게 얼굴 없는 청자가 될 때

옷장 속 아이 몸에 달라붙은 인형이 툭 떨어뜨렸을 때

주검을 수습하면서 생각한다

수습되지 않는, 다른 주검의 집에 관해 생각한다

 

 

 

 

기항제寄港第



바다를 향해


남자A의 죽음을 여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면;아비의 연애편지가 나를 태어나게 한 최초의 문장이었다는 것을 들켜버렸다면, 나는 첨탑의 용도와 교회당의 관계에 관해, 떨어져나간 모자이크 무늬가 담당했던, 마리아의 한쪽 뺨에 관해, 말하리라.

  

말하고 나면;급소가 찔린 하늘과 축 늘어진 구름이 있고, 눈이 가려운 마을 사람들은 구름을 긁다가, 제 뒤통수에 손가락이 닿을 때까지 구멍이 뚫린 얼굴, 오염된 성수로 얼린 어린 작부의 눈동자가 촛농처럼 녹는다.

   

눈먼 자가 바다에 불을 켠다면;남자A의 여행은 전설이 되고, 허공은 매일매일 다르게 죽어가기 위해 편도로만 구름을 제조하고, 바다를 향해 쭈욱 짜낸 물감이 말라가는 동안 오월은 저만치 더 다가오고, 어린 작부를 향해 내리 갈길 손찌검이 남자A의 한 쪽 뺨에서 쏟아져 나올 때, 그림의 눈을 가만히 쓸어내리는 손이 있다.


그런 손이 있다면;그리다 만 인물화의 두 눈이 남자A의 얼굴을 찾아가 모른 듯이 떨리고, 그리지 못한 표정을 생각했던 손의 주인이 실종되었을 때, 편지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아 다행일 때가 있었다.


구름의 장례가 다행이라면;동공 속 찰랑거리는, 편지의 잘못 적힌 철자들에 관해, 한 곳을 버리고 또 한 곳을 선택한 남자A의 무책임에 관해, 낭떠러지에 떨어진 낭만을 길어 올리는 무뚝뚝함은 잠수부 눈에 차오르는 물, 차오르는 눈이 있겠다.

  

그렇게 항해하는 눈이 있다면;바다가 차오르는 수경 속 없는 잠수부의 눈을 생각한다면, 용서가 용서를 겪고, 그리지 못한 눈이 바다를 겪게 된다면, 바다를 향해, 바다를 향해, 신도 없는 종교처럼 누군가는 태어나겠다.


누군가가 태어난다면; 바다를 향해, 바다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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