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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가을호) 기획 젊은 시의 징후를 찾아서/ 황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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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35회 작성일 11-12-31 17:32

본문

   황혜경

   A반의 연필무덤 외 1편



전인미답前人未踏의 A반

날카롭게 깎는 소리들뿐이지만 

해치지는 않는 가장 안쪽의 이야기 부드러워

아무도 걸어 들어가지 않았지만

앉아있는 사람 없었지만


A반의 창가

책꽂이 한 구석에 숲이 우거지고

몽당연필들이 모이자 연필무덤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아직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고 전해지는

숨소리 가득한 A반


Answer, 그건 아니잖니

얘야, 모든 부위에서 뽕을 빼거라, 각 잡지 마라 

앤서, 그렇게 무책임해서 되겠니

앤서, 대응을 위한 것 말고 해답, 해결책으로 제발 좀


A반에서 쓰는 손을 본 적은 없다고 했지만

생각하는 의자에 등 돌려 앉아있는 앤서의 소리들 뿐 

읽힌 적 없다고 했지만

어디선가 빠르게 자라는 손톱들이 우수수

오늘도 깎여 쏟아지는 ‘∼동안’의 구석

그러므로 누군가 잘 먹고 잘 자고 있었다는 증거의 A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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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들이 최대한 암묵적으로 쓰고 지우고 배우면서 몽당연필을 쥔 채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작지만 또 손가락 사이에 쥐면 이건 비밀인데…… 입을 열어줄 A반의 연필무덤에 모여 있는 몽당연필들 그 앞에서 딱딱한 꼬마지우개가 지울까 말까 갸웃거리므로 누군가 쓰고 있는 게 분명하긴 하다는 A반 오늘도 세 자루의 몽당연필을 묻어주고 새 연필을 깎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읽힌 적 없는 문장들을 찾기 위해 연필을 꽉 쥔다 또 들려온다 집요한 필담筆談, 분명히 누군가 쓰고 있다

 

 

 

 

 

부정적인 그 사람이



‘얼마나 그리우면 꽃이 필까’ 가사를 듣다가 지고 있는 이파리들을 몸에서 뚝뚝 떼어내며 흐르는 피의 노래로 개사開寫하면서도 혼자인 것이 싫지는 않다고 말하는 그 사람을 알고 있다 방문객의 칫솔을 보관해 주는 일에 대하여 다시 오지 않더라도 기억해주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아니라고 싶으면서도 아니라고 고개 젓는 사람, 자기 앞의 사람은 불안을 자극하기만 하니까 사람으로부터 멀리 가고 있으면서도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그리움도 사랑도 꽃이 아니라고 당신들은 추억도 되지 못할 거면서 자극적인 것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나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 틈이 많은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젖어들거나 스며드는 것은 쏟아지는 것들이 많아서가 아니라고 건조하게 말하는 것이다    


이별의 노래를 먼저 암송하고 시작한 사랑이 있긴 있었지만 그 사람이 부정했다 시작하는 사랑에 익숙한 게 아니냐고 상대에게 따져 물으면서 결국 사랑이 아니라고 돌아가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 진심은 아니었다고 그럴 수는 없다고 불가능한 것만 믿으면서 뒷걸음질 치는 그 사람

 

가장 꼭대기에서 보면 저마다의 우리 사랑은 구름 위의 난교亂交일 거라고 짐작하면서도 너만은 아닐 거라고 믿으면서 믿고 싶어 하면서도 내내 달콤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는 것은 좀 이해해주길 바라기도 했지만 끝까지 아니라고 못한다고 아무것도 쉽게 정할 수 없었지만 부정적인 것들 박힌 채 잘 빠지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오래도록 굴러 떨어진다 떨어지면서 부정적인 그 사람이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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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시작한다 돌계단이나 철계단 아니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나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그 사람이 머리에서 피를 쏟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다행이라고 감사해하면서 피 묻은 손을 들어 손짓하면서 찢어진 입술을 움직이면서 사실은 모두 다 아닌 게 아니었다고 끄덕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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