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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박시영/바람소리를 듣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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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박시영/바람소리를 듣다 외 1편
박시영
바람소리를 듣다 외 1편
갈증의 모래밭을 타박타박 걷다보면
먼 곳의 초록 배경이
얼굴을 바꾸며 지나갈 뿐
걸음은 다른 길로 들어서지 못하지
모래밭이 지닌 내력을 지우듯
빗줄기가 빗금을 긋고 지나간 뒤
어린 해바라기가 품게 된
치명적인 그늘도
가을 산처럼 비어간다
고개 숙인 해바라기
깊어진 풍경에 귀 기울이면
울창한 바람소리
아직 먼 곳에 당도한 듯
일렁임만 내보이고
한낮의 햇빛은
바랜 색을 남기고 멀어져간다
손을 내밀다
죽을힘을 다해 꽃 피우려 하다니
그건 가난한 일이었는데
불안을 먹이 삼아 걸어온 날들
무시한 채 건너 뛴 발바닥 아래
얼굴이 뭉개진 하찮아진 무늬들
함부로 묻혀 있는 옹기종기 흰 뼈들
짧은 햇살에 피어난 찔레꽃들
방치한 마당은 텅 빈 헛간이 되어간다
햇살과 그늘을 숨 쉬는 동안
날씨는 얼마나 많은 습기를 품어왔나
고무나무 잎에 천진한 햇살
잠시 내려앉아 놀다 간 뒤
꼬리만 남겨두고 사라진 풍경들
구석에 뭉친 먼지처럼
거기 밟히고 형체를 잃은
무늬를 발굴하는 일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박시영 2007년 《시와 경계》로 등단. 시집 『바람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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