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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조성례/찰방찰방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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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조성례/찰방찰방 외 1편
조성례
찰방찰방 외 1편
똥 푸는 일이 천직인 그 사내
사람들은 찰방이라고 부른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나이보다 더 큰 지게가 어깨에 얹혀졌다
오직
입에 풀칠하려고 시작한
똥장군 지게를 걸머진 자리엔
훈장처럼 시퍼런 멍이 단단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똥, 기어이 불러오려면
폴짝 뛰어 오르며 혓바닥을 내민 채
찰방찰방 놀려댄단다.
남들이 코를 쥐고 고개를 돌려도
지친 목구멍을 막걸릿잔으로 씻어내면
목 안에 고인 똥이
찰방찰방 하루의 노고를 노래로 대신 불러준다나
생명이고 밥인 똥을
들판에 부려놓으면 바람과 햇볕에 풍화되어
사내의 내장에 되돌아와
잠꼬대조차 찰방찰방하는,
수수만년 지난 먼 훗날에
똥빛의 멍은 푸르고 짙은 화석으로 굳어
또 하나의 가훈이 되고 역사가 되겠지
하루살이
랜턴 불빛에
하루살이들이 까맣게 몰려온다
눈이며 입으로 달려드는 그들
손짓으로 막으려 하지만
막무가내
한 판 잔치를 벌리려나보다
불빛을 조명 삼아 전신을 흔들어 댄다
날아야만 종족번식을 위한 짝을 찾을 수 있는 날것들,
오직 날기만 하기 위해 태어난 듯
암수가 만나면 먼 비행을 시작한다는데
제 이름에 부여받은 짧은 생명에 대한
마지막 향연을 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루라는 말 속에는
궁핍하고 쫒기는 애달픔이 있다
애련리 철다리 아래서 달리는 기차의 굉음에
귀를 막고 함께 달려보고 싶은 때
저처럼 날갯짓을 하면서 헐떡였지
하루를 견디기 위한 허기에 지쳐 젊은 날을 건너왔던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를 넘기는 고된 마지막 몸짓,
어둠은 점점 짙어지고
사위가 느려지며 잦아져 가는 날갯소리들
하루가 또 그렇게 생을 마친다
*조성례 2015년 《애지》로 등단. 저서 『가을을 수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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