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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강빛나/미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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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강빛나/미열 외 1편
강빛나
미열 외 1편
당신은 한동안 말이 없다
말이 없는데 편안한 이 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옆에 있었는지
수일數日 없었는지
무심이 머물기까지 겨뤘던 양가감정은 침묵을 품고 안심 성분에 절여져 있다 이럴 때, 당신은 부족한 거리의 낭만이라 했고 나는 조용한 공허라 했다
당신은 행간 속에 들어가 말줄임표가 되었고 나는 행간에서 널뛰기를 했다
함께 겨울을 넘어가며 이따금 고백했던 문장은 벗겨지고 생략되고 시들시들 사라졌는데
내가 기억하는 당신의 옥타브에 흐르던 웃음과
내일의 결심은 다 어디 가고
성벽이 완벽하게 무너지던 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침묵은 당신의 피난처야, 나의 외줄타기야
당신과 함께 이마를 마주했던 미열이 내 몸을 빠져나가고 있다
나는 나에게도 거리가 필요하다
별에 거는 말
네가 던진 말이 거미줄에 걸렸다
그물을 쳤더니 몇 마디
나를 건드리고 간다
파란 하늘이다
분홍 코스모스에 실줄이 일렁거린다
살아 있어 좋으니
그래도 살아 있으니
실핏줄에 네 말이 젖었다 감겨 돈다
꽃은 꽃으로 예쁘고
거미줄은 거미줄로 품을 만드는
하늘 높은 날
사람 아래 서면
그 아래
나, 부끄럽지 않을까?
*강빛나 2017년 《미네르바》로 등단. 《미네르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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