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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신규철/호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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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신작시/신규철/호수 외 1편
신규철
호수 외 1편
물가의 억새풀
미세한 그 잎의 바람과
숲을 지키는 텃새의 눈빛과
날카로운 발톱
물까마귀가 낸 상처까지 어루만지더니만 결국
몸 속 사타구니도 송두리째 물고기에게 내어준 호수를 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아침은 아침대로 저녁은 저녁대로 정定함이 없다
느티나무처럼 내 지나온 길 돌아보니
안개 자욱한 마을길 같았다
밤낮없이 걸어 잠그고 채우기만 했다
사타구니도 물고기에게 내어준 호수처럼
억새풀 잎이 다 마르도록
단 한 번이라도 나를 내어 준 적 있던가
이래서 저래서
아무래도 핑계가 심했다
빈 가지 위에
바람이 분다
기도가 끝난 자리 위에
산 그림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내 어깨 위에
날마다 우리가 만나던 빈 가지 위에 바람이 분다
새들이 날아간다
곁길에 핀 하얀 들꽃 하나 아픈 기억들처럼
우리의 빈 가지 위에 마른 몸부림으로
가을 새들이 날아간다
가지는 비었어도
날아간 새 돌아오질 않고
바람이 소리 없이 먼 곳에서 내리고
저녁햇살은 기다랗게 손을 뻗어
예배당 붉은 담벼락 아래서
쥐똥나무 열매를 한 줌 움켜쥔다
바람이 분다
기도가 끝난 자리
돌아눕는 내 어깨 위에, 하루가 저물고
가깝고도 먼 가지 위에 밤새 바람이 분다
*신규철 2018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 『낡은 의자에 앉아서』. 제물포문학상, 인천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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