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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찾은 자아 정체성(바람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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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유럽의 느림과 여백이 혼합된 향수어린 흑백 필름이나
낡은 앨범 속 사진을 통해 현재를 보는듯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상징적인 의미찾기를 통해서 서서히 자신을
극속의 주인공과 대비시키며 자신의 가족과 가정, 그리고 자신이 선
현주소를 반추하며 오래도록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에게 묻게되리라.
감독이 원했던 컨셉이 먹혀 들어간 반증이라고 해야할까?
심리적 내면의 갈등을 대사가 아닌 몸짓으로 표현한 점이라든지
이따금씩 내밷듯이 던져지는 대사속에 들어있는 본질을 놓치면
관객은 절반 이상은 이미 잃은 상태에서 극을 관람하게 될 것이다.
영화에서는 코믹함도 선정적이거나 외설스러움도 발견할 수 없다.
격정적인 섹스장면까지도 인간의 깊은 고독의 몸부림처럼 보여졌음은
나만의 주관적인 견해일까?
이 영화의 근간을 이루는 가족의 구성원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따로 사는 시부모, 그리고 입양한 아들 하나를 둔 신세대 핵가족.
가족 구성원은 도시 사회의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남편은 변호사로, 아내는 전문 무용강사로 각각 전문가적 직업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입양한 아들에게 입양 사실을 알려줄 정도로
깨어있는 의식의 소유자들이다..
시한부 인생으로 병원에서 죽어가는 남편을 두고 첫사랑인 초등학교
동창과 밀애를 즐기는 시어머니는 이렇게 고백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남편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그녀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고백한다.
만나는 남자가 있을 뿐 아니라 15년동안 안했던 섹스도 한다.
그리고 난생 처음 오르가즘도 느낀다.
그 솔직한 고백을 며느리는 담백하게 받아들이며 시어머니의 새 삶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여자는 "탱탱한 젖가슴으로 왔다가 쪼그라진 빈가슴으로 간다."는 말이
단지 육체의 변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 이땅의 여성들의 자기 정체성을 되짚는 아픈
고백은 아니었을까?
아이 낳아 기르고, 남편과 시집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세월이 덧없이
흐른 후 자식, 남편 다 떠나 보내고 나니 빈껍데기만 남은 노년의 주름진
낯선 여인을 만나는 이질감과 상실감을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지 '위기의
여자'로 홀로 남겨지기전 우리 스스로도 자문해 봐야 한다.
젊고 능력있는 전형적인 중산층 현대의 젊은 부부인 남편과 아내에게
삶의 치열함, 열정, 상대에 대한 신선감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아내는 입양한 아들, 이웃집 방황하는 고등학생으로부터 호기심과 삶의
시간을 지탱하는 의미를 찾을 뿐이고 늘 일에 치이는 남편은 애인과의
격렬한 정사와 밀월 여행등으로 물리적인 욕망들을 풀어간다.
현대 중산층 남자의 표상인 남편은 애인이 임신을 하자 함께 가서 유산을
시키고, 함께 미역국을 먹고 택시를 태워 보내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
이기심을 버리지 않는다.
진정한 열정과 희생을 전제로 한 사랑은 이미 삶이 타성이 되고 식상한
습관에 불과한 그에게는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은 상대방 여인도 마찬가지여서 절대로 한남자를 고집하지 않고 자유
롭게 원하는대로 섹스 파트너를 바꾸기도 한다.
언제든 원하면 헤어지고 또 만나 섹스를 나눌 수 있는 상대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들의 관계는 오히려 투명하기까지 하다.
늘 바쁜 남편과 어쩌다 섹스를 나누더라도 환희나 열정, 오르가즘조차 느낄
수 없는 상황을 아내는 이렇게 표현한다.
'내 몸의 성감대가 없어진 것 같다'라며 관계 후 남편이 보는 앞에서 자위로
자신의 열정을 만족시키려는 아내의 몸짓은 오히려 서글프기까지 하다.
님편이 만나는 여인은 늘 섹스시 절정에 이르며 만족감을 표현하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그 장면들을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여성이 섹스에서 만족감을 얻으려면 정서적인 감응이 먼저 와야 하고
머리에서 상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인지되고 가슴으로 그 사랑이 느껴져야 한다.
이 부부에게 그 관심과 사랑이 식어진 것이다.
아내는 허전함을 입양한 아이를 끼고 자거나 함께 목욕을 하거나 대화를
함으로 달래고 빈 가슴을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나가고자 한다.
그것은 아이의 대사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네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말했니?
"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몰라, 친구들은 엄마가 배가 아파서 낳았지만 난 엄마가 가슴이 아파서
낳았으니까 나도 엄마 아들이 맞다고 했어, 그리고 그냥 나왔어."
가슴이 아파서 낳은 아들이란 말의 의미를 새겨듣는다면 고독하다거나
외롭다는 말 이상의 그 무엇이 감지되리라.
아내는 잠못 이루는 밤이면 혼자 거실로 나와 발가벗은 몸으로 물구나무
서기를 하거나 몸짓을 통해 내면의 상실감과 고독,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말보다 정직한 언어인 몸말이 주는 의미를 하나 하나 곱씹으며
영화를 본다면 그 외로움을 관객 스스로도 느끼게 된다.
그 내면의 갈등과 고독, 외로움이 읽혀지지 않는 한, 아내의 외도는
원조교제며 윤리성을 운운할 유부녀의 부도덕한 맞바람 정도에 그치게
되고 그렇다면 텍스트가 주고자 하는 의미전달의 절반은 실패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내의 몸부림은 삶에의 자기 정체성 확인에의 처절한 울부짖음이요
몸부림임이며 바람속에서 잃어버린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남편의 바람기에 대한 치기어린 맞바람이 아니라 이미 냉랭하게
식어버린 자기 안의 열정과 삶에의 끈끈한 그 무엇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내게는 읽혀졌기에.
그것은 남편과 늘 산행을 즐기던 아내가 자신의 관심을 유발시킨 옆집
고등학생과 밤산행을 하는 장면과 아들이 죽자 혼자서 비오는 밤에
산행을 감행해 자신의 죽은 아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을
연관시켜 본다면 쉽게 고리가 이어진다.
영화에서 아내가 산을 오르는 행위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필요할 때 행해지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아내는 그렇게 고등학생과의 산행을 통해, 식어버린 열정과 흥미와 끈끈한
정서적 교감을 되찾을 뿐 아니라 닫혔던 육체의 문이 새롭게 열리고
섹스를 통한 오르가즘도 회복하게 된다.
그것은 한 여인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 회복의 상징적인 성 행위기에 오랫동안
섹스를 함께 해왔던, 그리고 다른 여인을 임신시켜 유산까지 감행한 남편과의
결혼생활 동안 생기지 않았던 아이가 생기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결국 아내의 섹스행위는 근본적인 자아 찾기의 방편인 셈이었고 원하던
아이를 임신하게되고 기쁘게 그 아이를 낳아 기를 결심으로 남편의 굴레를
벗어나는 라스트 신으로 결말을 내게 된다.
감독은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의미, 상실된 가정의 참의미를 바람이란
눈에 보이는 형태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바람과 더불어 되찾은 자아를 아내는 아내가
아닌 한 인간 개체로 오래도록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새 삶을 시작하리라.
더불어 바람을 통해 사회적 형식과 구속으로 얽매인 껍데기 가정을 마치 소유물
처럼 두고 자기 방어용, 또는 자기 위안용 삼아 지냈던 남편은 그 모든 허상이
깨어진 순간 새롭게 자기 정체성을 돌아보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난 가족을 통해 감독과 작가가 진정 표현하고자 했던 상징성을 제대로
읽어 낸다면 관객은 영화보기의 성공과 더불어 자신의 현 주소를 점검해
보는 귀중한 시간을 덤으로 얻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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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명옥님의 댓글
이명옥 작성일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김재성님.<br />
보시다시피 전 영화나 연극 감상평을 간단히 하고 있습니다.<br />
영화도 하나의 코드읽기라고 한다면 각자 읽는 방법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런지... <br />
김재성님이 본 견해는 포르노이고, 관객마다 보는 관점과 관심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심이. <br />
누군가는 의상만 보기 위해서 같은 영화를 서너차례 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단 한 <br />
장면이나 대사 때문이기도 하고, <br />
김재성님의 코드로 상대방을 재단하려는 오류는 피해주시길...<br />
시를 쓰시는 것 같은데 건필하시길. ^^

이명옥님의 댓글
이명옥 작성일
^^<br />
홈 주인님의 글을 읽으니 따로 집을 가지고 계신것 같은데<br />
<br />
공개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br />
<br />
시적 감수성이나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br />
<br />
시를 쓰는분들이 무척 커 보이거든요. ^^<br />

김재성님의 댓글
김재성 작성일
시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의 시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기도 하지만<br />
시를 쓴다고는 할 수 없지요. 흉내내는거야 뭐 그리 흉뵈일 일이 아니니 그러는 것뿐.<br />
홈에 놀러오시는 것은 늘 환영입니다...... <a href=http://member.kll.co.kr/kim5904/ target=_blank>http://member.kll.co.kr/kim590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