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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이름을 지어 불렀던 여인 난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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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명옥
댓글 0건 조회 4,257회 작성일 03-09-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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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인들은 이름을 가질 수 없었지요.
그래서 태어난 곳이나 사는 곳을 따라, 또는 거처하는 곳을
따라 무슨 무슨당, 또는 어디댁으로 불려야 했고 가계나
집안의 일원으로서의 존재 이외의 가치나 존재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고 할까요?
바로 그런 시대에 난설헌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에게 격을 부여했던 멋진 여자지요.  
초희라는 이름도 스스로 지었고 거기다 '경번'이라는 자도 가졌고요. ^^  
남편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재주를 지녔던 난설헌은 역시 남편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졌고 신선이 되었다는 '번부인'을 흠모하여  
그런 자를 취했다고 하네요.  
중국에서 난설헌의 시와 문학적 평가가 더 높은데 그들은 '경번'을 이름으로  
잘못알고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의도적으로 난설헌을 폄하하고 그녀의 작품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왔던 터라...  
우리에게 그녀의 작품들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동생 허균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몰아가고 있지요.  
'초희' 라는 이름이 중국 궁중의 여성이 받는 관직의 명칭이기도 하다네요.  
난설헌은 자신의 기개를 남성들과 동등하게 펼쳐보이고 싶어했고,  
초장왕의 실제적인 참모 역할을 했던 부인 '번희'의 총명함과 지혜를 흠모하여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초국의 사서에 '초장왕이 패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초희의 공로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거든요.  
난설헌은 가슴에 조선이 재단해 놓은 제도와 문물을 뛰어넘어 마음껏 자신의 문재와  
기개를 펼쳐보이고 싶은 절절한 열망을 불꽃처럼 품고 살았던 시대를 뛰어넘는 여성이었지요.  
스스로 이름을 지어 무리로 부터 자신을 구분하고 스스로의 자아 정체성을 밝힌다는 것이  
그 시대 상황으로선 견디기 힘든 고난의 길을 자초하는 셈이었을테니까요.  
하지만 강탈당한 자유의 날개옷을 되찾으려는 그런 선각자가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자리에서 우리의 이름을 찾고, 성을 찾고, 권리를 찾으려는
의지를 괸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지은 여인이 수백년이나 앞서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고무되는 일입니까?  
이제 그 기개와 불꽃같은 열정을 우리가 이어받아 기필코 우리의 자리를 되찾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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