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문학자유게시판

서아람 학생의 수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리토피아
댓글 0건 조회 3,750회 작성일 02-08-09 03:34

본문

자유게시판의 글을 보고 서아람 학생과 통화가 된 시간은 자정(8월 9일 새벽 1시)이 훨씬 넘은 시간. 서아람양도 이미 게시판을 본 후인지라 부득이 어려운 전화를 걸어왔고, 과외지도교사가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주어진 주제 '상황'을 200자 원고지 20매에 담아보라는 주문에 응해 한 시간 반여(새벽 두 시 반)만에 써낸 서아람 양의  글을 소개합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는다

서초고 1학년 서아람

  소위 '헐리우드 키드'라고 불리우는 영화광 세대에 속하진 않지만, 난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전란이나 다름 없는 중간 고사가 코 앞에 닥쳐도, 용돈이 부족해 호주머니에서 먼지 냄새만 풀풀 날 때도 참새가 방앗간 찾듯 뻔질나게 극장을 드나들고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또래 여고생들이 논개의 우국충정에 비길만큼 열광하는 훤칠한 남자 연예인이나, 은막의 미세한 입자만이 잡아낼 수 있는 새로운 트렌드를 찾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 즐기는 것은, 환상이라는 전제 하에 스크린을 보고 있음을 깨끗이 망각하고 감독이 선물하는 타인의 인생에 뛰어드는 일이다. 그 안에는 지구의 인구를 능가하는 무수히 많은 색다른 상황들이 관객을 기다린다. 물론 그 상황은 빽빽거리는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뜨고 짐나르는 개미처럼 바쁘게 일터로 뛰어가는 아침처럼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할 수도 있다. 사춘기의 반항심으로 집을 뛰쳐나와 유흥가의 네온사인 사이를 전전하며 비참하게 생계를 연명하는 청소년들처럼, 우리 사회의 은밀한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 현실에서는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는 이상적인 이성이 아찔하게 자극적인 향수 냄새를 발하며 유혹의 손길을 뻗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머나먼 은하수 건너 외계의 생명체가 거대한 수신기를 통해 교류를 청하는 전파를 보내오기도 한다.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비롯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아가 소설과 시를 포함한 문학의 세계에도 같은 맥락의 원리가 적용된다. 작가가 창조하는 이 모든 상황 속에 내던져진, 개성적인 인격체를 담고 있는 등장인물이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방식, 주변 환경에 따라 상황을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다. 마법과도 같은 이 신기한 법칙에 따라,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천개씩 새롭게 요리되어 나오는 이야기들을 즐기게 된다. 사용되는 원료와 요리법은 고정적이지만, 냄비에 약간의 조미료와 향신료가 첨가됨으로써 맛보는 이는 깜박 속아 넘어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자신이 이전에 비슷한 요리를 먹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리거나 배를 잡고 폭소를 터뜨린다. 작가가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원동력과 묘미는 여기서 우러나온다. 아무리 진부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설정할지라도, 작은 나사 하나를 비틀어 줌으로써 운명의 수레바퀴는 완전히 다른 지점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소설과 시나리오의 매력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중학교 때 감상한 영화 중에,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온갖 잡상으로 가득 찬 내 머리를 폭발 직전까지 몰고 갔던 위험천만한 작품이 있다. 피터 호윗이 감독한 '슬라이딩 도어즈'가 바로 그것이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몇 년 전 우리 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테마 드라마와 멀티 엔딩을 연상시키는 착상에서 출발한, 다분히 실험적인 줄거리가 보는 이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필름은 여주인공 헬렌이 회사에서 억울하게 쫓겨나 지하철을 타면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 영화가 두 파트로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는 상황은 그녀가 막 닫히려는 지하철 문을 붙잡느냐 마느냐, 그야말로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만큼이나 사소한 문제다. 그렇지만 그녀가 지하철에 타는지의 여부에 따라 상황은 점점 극단적인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마침내 두 개의 인생이 동전의 양면처럼 뒤바꾸어 파생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장면은 같은 장소, 같은 상황으로 다시금 동화하며 종결된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흔히 신의 권위에 비유되는 운명이 전능의 힘으로 인사의 일체를 지배한다는 운명론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유교의 천명설, 불교의 인과응보설, 이슬람교의 종말론적 사상으로까지 확대되는 이 숙명의 존재를 우리는 믿어야만 하는 것일까?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어리석은 원숭이처럼, 아무리 발버둥쳐도 태고적부터 정해진 재앙과 금기를 극복할 수는 없으므로 진작에 체념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운명론과 반운명론의 갈등은 각 대륙과 종속 국가의 모체가 되는 탄생신 신화까지 그 뿌리가 거슬러 올라가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그 문제에 관해 인류의 조상이 연구한 심오한 지적 소양도, 삶의 의미와 윤회에 관한 정신적 성찰도 거치지 않았지만, 제 나름대로 우둔한 머리를 싸매며 고민해본 결과 난 인간의 내부에 잠재된 가능성을 믿는 쪽에 서기로 했다. 어떠한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개선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여러 번 체감했기 때문이다. 난 중학교 시절 교내 편집부장의 직책을 맡고 2년 동안 인터넷 신문을 제작한 적이 있었다. 일 년에 네 번 마감의 문턱을 넘을 때마다 산 넘어 산,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어야만 했다. 선무당이 작두 날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고 불안하기만 한 하루하루였다. 객원 기자들은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원고를 미뤘고, 두세 개씩 실어야 하는 인터뷰도 청탁 거절로 성사되지 못하고 번번이 무산되었다.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뛰고 또 뛰었지만 상황은 이른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전교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약속한 날짜에 신문을 발간하고야 말겠다는, 바위처럼 굳건한 다짐이 마음 속에 있었기에 쉴새없이 편집부라는 마차에 채찍질을 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신문이 선을 보였을 때는, 드디어 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가슴 벅차게 솟아올랐다. 가끔 불가피한 사정으로 신문 발간이 연기되거나, 애써 만든 신문이 거센 비난의 폭풍을 맞을 때도 있었지만, 그 고통의 과정을 통해 난 또다른 빛깔의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극한 상황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다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다. 전화위복이라는 성어가 말하듯, 앞으로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튼실한 디딤돌이 되어줄 참된 교훈과 지혜를 얻게 되는 까닭이다.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그들의 작품을 배경삼아 보여주려 하는 진실한 메시지는, 무한한 도전과 열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자아 성취와 진정한 행복을 이루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험한 나락으로 굴러 떨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다면, 난 그에게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보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반복되는 열등감과 위기감의 포로가 되지 말고, 영화와 문학, 나아가 이 사회 전체에 혼재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주시하고, 대치된 상황을 조정할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하여 '상황'이라는 단어는 타인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의지해야 하는 공동체 사회를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키워드가 된다.
얼마 전 난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의 2차 심사 과정으로 개인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내 시나리오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심사위원들은 면접 초반부터 과격한 말로 내 글을 비난하며 범죄자 심문하듯 거친 면접을 했다. 어설프게 반박을 해 보려다가 면박을 당하고 면접실을 나온 나를, 먼저 면접을 본 학생이 이렇게 위로해 주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감독의 인품과 정신적 성숙도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짧은 대화에서 내적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퍼붓고 그 반응을 보는 것이 주로 쓰이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난 합격했고, 지금은 열심히 영화를 찍고 있지만 아직도 돌발 상황이 닥치면 허둥대는 나를 보며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 되새기고는 한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안주하며 적당히 살아가는 인간은 영원히 발전하지 못한다. 인생을 바꿀 기회는, 1분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까닭이다.
    

추천9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