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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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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2001
6월의 첫날 아침입니다.
창을 여니 마당엔 이른 아침부터 새들이 놀고 있고 바람은 어느 낭만파 시인이 부른 세레나데처럼 감미롭습니다.
여기 옮긴 글들은 사과 하나로 시작된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세잔의 글입니다. 역시 좋은 예술이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자연과 어떻게 융합하며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론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잔은 그 당연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자신만의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과서적 이론이나 머리만이 아니 자신의 몸으로 지적 감성으로 그리고 열린 가슴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6월의 삶도 즐겁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화가 세잔의 글
화가 샤를 카무앵에게.
1903년 9월 13일. 엑스
쿠튀르는 제자들에게 말하곤 했어요. "좋은 친구들과 사귀도록 해. 루브르에 자주 가란 말이야. 대가의 그림을 보고는 재빨리 나와야 해. 그리고는 자연과 접촉해. 우리 내부의 본능. 우리 안에 숨쉬고 있는 예술감각을 되살리도록 해"...
에밀 베르나르에게
나는 자연에서 원통, 구, 원추를 봅니다. 사물을 적절히 배열하면, 물체나 면의 각변은 하나의 중심점을 지향하게 됩니다. 지평선에 평행한 여러 선은 넓이를 줍니다. 그것은 자연의 단면, 다시 말해 전지전능한 아버지 영원의 신이 우리들 눈앞에 펼쳐 놓은 광경의 단면을 줍니다. 반면 지평선에 수직으로 걸친 선은 깊이를 줍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자연의 넓이 보다는 깊이로 다가섭니다. 그러므로 빨강과 노랑으로 재현되는 빛의 진동 속에서 공기를 느끼게 하려면 충분할 만큼 파랑을 칠해 넣어야 합니다.
1904년 5월 12일. 엑스
나는 아주 천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아주 복잡한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앞으로 해야할 일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모델을 오래 쳐다보고 아주 정확하게 느껴야 합니다.....
예술가는 본질에 대한 지적 관찰이 뒷받침되지 않은 모든 판단을 경멸해야 합니다. 또 예술가로 하여금 진정한 길-자연을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것-에서 일탈하게 만드는 문학정신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술가는 허황된 생각에 빠져 길을 잃게 됩니다.
루브르는 좋은 참고서이지만 매개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진정한 학습은 자연이라는 그림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1906년 9월 8일. 엑스
마지막으로 내가 자연 앞에 눈이 더 밝아졌다는 것을 말해야겠구나.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캔버스 위에다 실현시키는 것은 늘 어렵단다. 자연에 생기를 주는 그 풍성한 색채를 주는 생기를 만들 수가 없구나. 강둑에는 볼거리가 널려있어. 같은 소재라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아주 강력하고 흥미진진한 대상이 돼. 그러니 앞으로 몇 달 동안은 같은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관찰해야겠어.....중략
1906년 9월 26일. 엑스
샤를 카무앵이 에밀 베르나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어. 우리는 그가 박물관의 기억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지식인이라는데 의견일치를 보았어. 그렇지만 그 친구는 자연을 관찰하지 않아. 그러나 무엇보다도 훌륭한 점은 그가 온갖 학파로부터, 그야말로 자유롭다는 점이야. 그래야 피사로의 말을 오해하지 않지. 물론 그가 말을 좀 심하게 하긴 했지만, 아무튼 그는 예술의 공동묘지를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맞는 말이야.
자칭 예술가라는 자들이 내놓은 온갖 학설을 모두 진열하면 훌륭한 동물원이 될꺼야.
* 장종권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07-31 21:21)
6월의 첫날 아침입니다.
창을 여니 마당엔 이른 아침부터 새들이 놀고 있고 바람은 어느 낭만파 시인이 부른 세레나데처럼 감미롭습니다.
여기 옮긴 글들은 사과 하나로 시작된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세잔의 글입니다. 역시 좋은 예술이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자연과 어떻게 융합하며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론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잔은 그 당연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자신만의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과서적 이론이나 머리만이 아니 자신의 몸으로 지적 감성으로 그리고 열린 가슴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6월의 삶도 즐겁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화가 세잔의 글
화가 샤를 카무앵에게.
1903년 9월 13일. 엑스
쿠튀르는 제자들에게 말하곤 했어요. "좋은 친구들과 사귀도록 해. 루브르에 자주 가란 말이야. 대가의 그림을 보고는 재빨리 나와야 해. 그리고는 자연과 접촉해. 우리 내부의 본능. 우리 안에 숨쉬고 있는 예술감각을 되살리도록 해"...
에밀 베르나르에게
나는 자연에서 원통, 구, 원추를 봅니다. 사물을 적절히 배열하면, 물체나 면의 각변은 하나의 중심점을 지향하게 됩니다. 지평선에 평행한 여러 선은 넓이를 줍니다. 그것은 자연의 단면, 다시 말해 전지전능한 아버지 영원의 신이 우리들 눈앞에 펼쳐 놓은 광경의 단면을 줍니다. 반면 지평선에 수직으로 걸친 선은 깊이를 줍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자연의 넓이 보다는 깊이로 다가섭니다. 그러므로 빨강과 노랑으로 재현되는 빛의 진동 속에서 공기를 느끼게 하려면 충분할 만큼 파랑을 칠해 넣어야 합니다.
1904년 5월 12일. 엑스
나는 아주 천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아주 복잡한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앞으로 해야할 일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모델을 오래 쳐다보고 아주 정확하게 느껴야 합니다.....
예술가는 본질에 대한 지적 관찰이 뒷받침되지 않은 모든 판단을 경멸해야 합니다. 또 예술가로 하여금 진정한 길-자연을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것-에서 일탈하게 만드는 문학정신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술가는 허황된 생각에 빠져 길을 잃게 됩니다.
루브르는 좋은 참고서이지만 매개 이상의 역할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진정한 학습은 자연이라는 그림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1906년 9월 8일. 엑스
마지막으로 내가 자연 앞에 눈이 더 밝아졌다는 것을 말해야겠구나.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캔버스 위에다 실현시키는 것은 늘 어렵단다. 자연에 생기를 주는 그 풍성한 색채를 주는 생기를 만들 수가 없구나. 강둑에는 볼거리가 널려있어. 같은 소재라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아주 강력하고 흥미진진한 대상이 돼. 그러니 앞으로 몇 달 동안은 같은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관찰해야겠어.....중략
1906년 9월 26일. 엑스
샤를 카무앵이 에밀 베르나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어. 우리는 그가 박물관의 기억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지식인이라는데 의견일치를 보았어. 그렇지만 그 친구는 자연을 관찰하지 않아. 그러나 무엇보다도 훌륭한 점은 그가 온갖 학파로부터, 그야말로 자유롭다는 점이야. 그래야 피사로의 말을 오해하지 않지. 물론 그가 말을 좀 심하게 하긴 했지만, 아무튼 그는 예술의 공동묘지를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그건 맞는 말이야.
자칭 예술가라는 자들이 내놓은 온갖 학설을 모두 진열하면 훌륭한 동물원이 될꺼야.
* 장종권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2-07-3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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