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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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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鍼)
완은 고등어 굽는 냄새에 눈을 뜬다. 새벽 네 시, 창밖은 아직 어슴푸레하다. 아버지가 부엌에서 아침상을 차리는 소리가 들린다. 완은 창문을 연다.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맑다. 당분간 큰 비는 없을 거라 했다. 가을이 오면 고등어들에 살이 오를 것이다. 비릿한 바닷내가 집안으로 스며든다. 완의 손끝에서 집안 구석구석까지 냄새는 따라다녔다.
아버지가 형의 이부자리 옆에서 고등어살을 바른다. 형이 고등어를 특별히 좋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완과 달리 생선이라면 뭐든 잘 먹었다. 아버지가 숟가락으로 밥을 떠 형의 입에 넣어준다. 고개만 움직여 음식을 받아먹는 형의 몸에서도 비릿한 냄새가 풍겨난다. 처음 사고로 척추를 다쳤을 때만 해도 음식을 먹지 않으려 해 밥 때마다 한바탕씩 실랑이를 벌이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 형의 몸은 사고 전보다도 불어 보인다.
"어젯밤에 미향이 할배가 찾아왔더구나."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연다. 그의 손은 고등어자반을 뒤집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이듯 잔가시가 섞일까 조심스레 뼈를 발라낸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완은 아침부터 아버지가 미향의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늘 형 앞에서 말조심을 시켰다. 형의 전신이 마비되었지만 청력이나 사고는 여전하다고 믿었다. 오히려 그의 귀는 더욱 예민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온몸의 신경이 귀로만 집중되었을지도. 완은 누워있는 형의 곁에서 밥을 먹는 일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알아서 하는 게 그 모양이냐?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들 수군대는 줄이나 알어? 나 원 참……."
아버지는 뭔가 더 말을 하려다 그만둔다. 형의 입가로 침이 흘러내린다. 아버지의 두터운 손이 쓱 그의 입가를 훔친다. 완은 아버지가 형을 대신해 화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이 자리에 눕자 그의 손발이 되었듯, 형 대신 화를 내고, 울고, 싸움을 걸었다. 완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문다. 지난밤 전씨가 아버지를 찾아왔다면 미향에게 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음에 틀림없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어떤 다짐을 받아냈든, 그들 사이에 어떠한 약속이 오갔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합심해 완과 미향의 결혼을 반대하리라는 것쯤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오히려 완은 미향이 결심을 굳혔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이 들떠 오른다.
선착장에 서너 개의 담뱃불이 흔들리고 있다. 완은 그들 너머의 바다를 바라본다. 아침놀이 붉다. 언제부터인가 풍경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다와 하늘의 빛은 그에게 시간과 날씨를 알려줄 뿐이었다. 배가 들어올 시간이다. 완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밤새 남쪽 바다에서 잡힌 물고기들이 두 시간 이상 배를 타고 새벽이면 이곳 부두로 몰려든다. 자그마한 어촌 마을이던 곳이, 항구가 생기고 육지 쪽으로 고속도로가 나면서 섬에서 도시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곳은 일종의 기착지인 셈이다. 여기 사람들도 거의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기보다는, 생선을 떼다 파는 중개꾼들이 되었다.
완은 배에 오른다. 배 바닥에 달린 손잡이를 당기자 헤엄치는 고등어들이 보인다. 물이 닿지 않는 구석에 환하게 백열등을 달아두었다. 고등어는 주위가 어두우면 배의 움직임에 더 예민해진다. 완은 뜰채로 그것들을 건져낸다. 놈이 버둥거리며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그는 바구니에 고등어를 부려 두고, 주머니에서 침통을 꺼내든다.
고등어는 활어 상태로 수송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물로 잡으면 죽은 채 올라오는 것들이 더 많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성질이 워낙 급해 도마 위에 오르기도 전에 죽어버리는 거라고도 한다. 그물에 걸려 죽고, 물이 조금만 탁해져도, 다른 생선과 함께 어항에 넣어두어도 죽기 때문에 잡자마자 냉동시키거나, 간고등어로 만든다. 고등어구이는 흔하지만, 고등어회는 드문 이유이다.
완은 이곳에서 횟감용으로 쓸 고등어에 침을 놓는다. 몸통을 따라 하얗게 선 흰줄이 고등어의 척추이다. 그 척추 끝에 침을 꽂으면 고등어는 한나절 정도 마취 상태에 빠진다. 침으로 머리만 살고, 몸통은 죽은 상태로 만드는 셈이다. 작은 상자에 바닷물과 함께 가사 상태에 빠진 고등어를 담아 냉장차에 실어 도시의 횟집이나 대형 포장마차로 실어 보낸다. 식물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완은 고등어의 숨통을 누를 때면 그에게 침술을 가르쳐주며 전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완은 배에서 이미 죽은 것들을 먼저 건져낸다. 살아있는 고등어들을 실은 배는 가능하면 속력을 줄여 움직여야 한다. 느리게 이동할수록 폐사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 몇 마리씩은 주둥이를 다물고 배를 뒤집은 채 물 위에 떠있게 마련이다. 하나같이 눈은 뜨고 있다. 고등어는 눈꺼풀이 없으니 그들은 한 번도 눈을 감지 못한 채 살다 죽은 것이다. 죽은 생선은 눈부터 썩어 들어갈 것 같다.
"이놈들 보면 진짜 잠자는 거 같지 않어? 사람도 말야 이렇게 급소를 찔리면 한방에 가는 벱이지."
선주(船主) 김씨가 침 맞은 고등어를 손가락 끝으로 꾹 누르며 말한다. 김씨의 말처럼 그것들은 고요히 잠든 듯 보인다. 물고기는 낚싯바늘에 걸려 주둥이가 찢겨 나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때문에 날카로운 꼬챙이에 입이 꿰여도 먹이를 놓지 않는다. 생선 대가리를 칼로 치면, 몸통이 떨어져나간 뒤에도 잠시 동안은 주둥이를 뻐금거리며 머리가 산 것처럼 움직인다. 그들에겐 통점이 없다.
완이 어렸을 적 아버지가 생선 배를 가르고 내장을 들어내는 걸 보고 얼굴을 찌푸리면 그가 말했다. 이놈들은 아픈 걸 못 느낀다구. 그리고 배가 벌겋게 갈라진 생선의 대가리를 물에 담가 보여주었다. 녀석의 눈은 희번덕이는 것처럼 보였고, 주둥이는 물을 찾아 헐떡였다. 그런 상태의 물고기는 자신의 갈라진 몸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짧은 순간이지만, 몸통 같은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움직인다. 완은 아버지에게 배운 통점이 없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앰뷸런스에 실려 가던 형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잠시 기절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외상이 적었다. 차라리 다리라도 부러지고 피가 났더라면, 배가 갈라져 내장이라도 흘러내렸더라면, 전신마비까지는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형의 사고는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요즘은 일기예보 기술이 좋아져 기상이 악화될 무렵에는 출항 경계령이 내려졌다. 대부분의 조난 사고는 기관 고장 때문에 일어난다. 형의 경우는 선박 사고였다. 쾌속정이 배의 옆구리를 들이받았고, 그물을 거두던 형의 허리를 부러뜨렸다. 쾌속정은 그대로 멈추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해경에서 인근 해수욕장과 부두를 뒤졌지만, 뺑소니 배를 찾지 못했다.
미향은 형이 응급처치를 받는 내내 병원 복도에 앉아 있었다. 반쯤 정신을 놓은 듯 보이기도 했고, 울음을 참으려 애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를 제대로 바라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그저 바다 볕에 온통 얼굴이 까매진 동네 여자애들 중 한 명일뿐이었다. 그런데 슬픔과 놀람에 휩싸인, 형의 안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창백해진 얼굴은 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몇 가지 검사와 응급 치료가 끝나자 형은 도시의 큰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앰뷸런스에는 가족 한 명만 동승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형이 떠나자 미향은 택시를 타고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완과 미향은 함께 차에 올랐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을 거예요, 완이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형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완 역시 금방 괜찮아질 사고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그런 상황에서 으레 주고받을 수 있는 말들로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다. 미향은 셔츠단을 손으로 꼭 말아 쥐고 있었다. 그 손이 헐거워졌을 때 완은 셔츠에 묻은 얼룩을 보았다. 핏자국 같기도 했고, 음식 국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을 하다 급하게 달려 나오며 셔츠에 손을 닦은 모양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선 대가리를 칼로 쳐내던 횟집 손녀. 형이 이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완이 미향에 대해 가진 인상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완의 손이 바빠진다. 도시로 갈 활어차가 벌써 도착해 펌프로 바닷물을 채우고 있다. 뜰채를 다시 담가 남은 고등어들을 건져낸다. 어깨와 손목이 뻐근하다. 배 한 척 분량의 고등어에 침을 놓고 나면 손목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이다. 그러나 침을 조금만 잘못 놓아도 고등어에서 피가 튀며 즉사해버리기 때문에 자연히 어깨와 손목에 힘이 들어갔다.
완은 수선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든다. 선주와 운송회사 정사장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며칠 전, 고속도로의 교통사고로 운송시간이 지연된 데다, 폭염까지 겹쳐 마취가 풀린 고등어들이 한두 마리씩 죽어갔다. 횟집에 도착했을 때는 트럭 한 대분의 고등어가 거의 죽은 상태였다. 횟집에서는 생선 값을 지불하지 않았고, 선주는 그 돈을 정사장에게 일부라도 받아내야겠다고 벼르던 중이었다.
완은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걱정스레 그들을 바라본다. 트럭 한 대 분을 폐사시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선주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시계였다. 전씨가 침을 놓은 고등어는 이틀 정도 마취 상태가 유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완은 고작 한나절 정도 밖에 마취시키지 못한다. 선주는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활고등어를 취급하면서 제법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허리가 휘도록 그물을 거두던 때보다 가만히 서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이 더 돈이 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따지고 들면 그쪽 책임이 더 크다는 거 몰라?"
선주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아니, 제대로 포장을 해서 넘기면 왜 괴기들이 나가 죽겠어? 그리고 고속도로에 차 막히는 거까지 내 책임이냐?”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 정사장이랑 거래 못해."
"뭐야? 하기 싫음 하지 마. 내가 뭐 니네 아니면 장사 못할까 봐? 그깟 배 한 척 가진 게 뭐 유세라고.”
금세 주먹다짐이라도 할 태세로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그러나 각별히 친한 사이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둘 사이엔 묘한 경쟁심이 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서로의 지갑 속을 궁금해 했다. 트럭 운전을 하는 이씨가 간신히 둘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을 뜯어말렸다.
"야, 이 새끼야, 니가 그딴 식으로 장사를 하니까 맨날 그렇게 밖에 못 사는 거야. 알어?”
선주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정사장의 뒤통수에 대고 기어이 한마디 더 붙인다. 완은 다시 고개를 숙여 침을 쥔 손에 힘을 준다. 순간, 그의 얼굴로 고등어 피가 튀어 오른다.
완은 수족관을 들여다본다. 도다리가 바닥에 붙어 몸채를 흔들며 유영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고등어 수족관이 붙어 있다. 작은 아파트처럼 층을 구분해 각 칸마다 한 마리씩을 넣어 두었다. 그 모습이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보인다. '침 맞고 기절한 고등어' 광고용으로 어항 위에 크게 써 붙인 글씨가 우스꽝스럽다. 고등어가 입을 뻐끔거리며 느리게 몸을 뒤챈다. 횟집 유리 너머로 미향이 서 있다. 점심 손님 맞을 채비를 하는지 손놀림이 분주하다.
완이 전씨에게 침술을 배울 때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횟집 뒤켠에 쭈그리고 앉아 고등어를 주물러대야 했다. 전씨는 가끔 들러 완이 침을 놓은 고등어를 들고 잔소리를 해대는 게 고작이었다. 척추가 끝나는 지점. 고등어의 몸통 옆으로 길게 이어진 흰 선으로 척추는 한눈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침은 단번에 찔러 넣어야 했고, 깊이 또한 중요했다. 정확한 하나의 점에서 조금만 빗겨나도 고등어는 꼬리를 들까불며 죽어버렸다. 시간이 갈수록 점차 무감각해졌지만 그 작은 입에서 단말마라도 새어나오는 것 같아 소름이 돋곤 했다. 그들에게 통점이 없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완이 제대로 침을 놓기까지, 그의 손에서 죽어나간 고등어가 이천 마리가 넘었다. 손목이 얼얼할 정도로 그것들을 만지고 있으면 미향이 점심상을 차려주었다. 피비린내는 비누로 씻어내도 잘 지워지지 않았다. 핏기가 가시면 그 다음엔 생선 비린내가 손끝에 맴돌았다. 눈을 감아도 생선 대가리들이 떠다녀 물것은 입에 대고 싶지 않았는데, 미향의 음식은 입에 잘 맞았다. 어쩌면 그녀가 끓여주던 매운탕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형이 인근 광역시의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미향은 매일 한 시간 반씩 버스를 타고 간병을 다녔다. 석 달이 지나도록, 형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늘 멍하니 잠들어 있거나, 반쯤 눈이 풀려 있었다. 미향은 병실에 들어서면 청소를 하고, 물수건으로 형의 얼굴과 손발을 닦았다. 그리고는 옆에 앉아 신문을 읽어주었다. 완은 미향이 어딘가 드라마같은 것에서 저런 장면을 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입원 기간이 길어져봐야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는 일 외에는 치료방법이 없었다. 뺑소니범은 잡히지 않았고,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버지는 결국 배를 팔아야 했다. 퇴원하던 날, 아버지는 미향의 손을 잡고 형의 병이 곧 나을 거라고 말했다. 형이 제 힘으로 일어서는 대로 식을 올리고 신혼살림도 차려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완은 아버지가 진정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형은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향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이내 체념인지 순응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물기가 그녀의 눈에 어렸다.
횟집 뒤켠에서 완이 그랬던 것처럼 한 사내가 쭈그리고 앉아 침을 놓고 있다. 전씨에게 침술을 배우는 중인 듯했다.
"형은 좀 어떤가?"
전씨가 완을 보고 먼저 말을 건넨다. 그는 전씨가 자신을 탐탁해 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씨가 일부러 매번 형의 안부를 묻는 이유 또한 알 것 같았다. 교활한 영감, 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전씨는 애초에 형과 손녀인 미향이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도 내켜하지 않았다. 형이 사고를 당하자, 분명히 반대할 이유가 생긴 셈이었다. 그런 판국에 완이 형수가 되었을지도 모를 미향을 넘보는 것을 가당치 않게 여겼다. 아버지는 그가 지난밤 집에 다녀갔다고 말했다. 그 둘 사이에 오간 대화 때문에 아버지는 아침부터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김씨가 자네 일하는 게 영 마음에 안 드는가봐. 오늘도 정사장이랑 한바탕 했다며?”
아무래도 선주가 새로 사람을 보낸 모양이었다. 침을 제대로 놓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냉동시켜 넘기는 것이 나았다. 선주는 완이 침을 놓은 차에서 유독 폐사율이 높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손가락 끝에 정신을 집중하라고. 침은 침으로 놓는 게 아니야. 손이 더 중요한 법이지.”
전씨가 사내가 침놓는 것을 지켜보며 말한다. 그는 완에게도 같은 소리를 여러 번 했다. 그럴 때마다 완은 손이 더 떨리는 듯했다.
형이 퇴원하던 밤, 완은 미향을 찾아갔다.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퇴원은, 형의 마비가 장기화될 것임을, 어쩌면 죽어야만 그 몸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셈이 되었다. 미향을 위로하겠다는 것은 핑계였다. 그렇지만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 또한 없었다. 그들은 빈 횟집에서 조명등 하나만 켜두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미향은 형의 사고가 자신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고, 동기 하나 없이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났다. 피해망상인지, 편집증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에게는 늘 불행한 일이 따라다녔고, 이제는 그러한 일들에 익숙해졌다고했다. 자신 때문에 형이 불행해졌다고 믿는 이 어리석은 여자의 자학에 완은 실소했다. 그리고 형이 부러웠다. 약혼자를 떠나버릴 궁리는커녕,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여자를 가진 그가 부러웠다.
"겨울바람이 잠잠한 날, 바닷가에 나앉아 있으면 꼭 멀리 있는 바다는 얼어붙은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처럼. 꼭 한번 남극에 가보고 싶어요. 남극에서는 바늘같은 얼음 결정체가 비가 되어 내린대요.”
미향이 뜬금없이 말했다. 왜 눈이 아니라 얼음비가 내리는 걸까. 여름이면 드넓은 얼음 평원 위로 날카롭고 뾰족한 얼음 소나기가 내리꽂힌다고 했다. 그것은 어쩌면 비수나 독침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침은 그 자체로 독이 되기도 한다. 고등어 침술 역시 신경의 흐름을 끊는 독인 것이다.
"형은 아마 곧 죽을 거예요.”
완이 말했다. 그는 차라리 형이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형은 가사상태에 빠진 채 상자에 담긴 고등어를 닮았다.
"알아요. 하지만 그때까진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어요.”
"의식도 없이 누워있는 사람이랑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
미향은 말이 없었다.
"당신 논리대로라면 형이 당신과 결혼하면 더 불행해지지 않겠어요? 그만 그 사람 죽은 셈치고 잊어버려요.”
완은 냉정히 잘라 말했다. 자신의 어디에 그런 무심함이 숨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역시 형의 사고로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처럼 가망 없는 희망에 매달리기보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이 낫다고 믿었다. 미향은 원망어린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 눈에 그렁그렁 담긴 눈물이 완의 마음을 들쑤셔 흔들어놓았다. 그는 여자를 부둥켜안았다. 욕정이었을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다고 완은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욕구가 솟아올랐다. 참을 수 없는 식욕과도 같은 허기짐이, 내장까지 뿌리째 토해내고 싶은 분출욕이 그를 휘감았다. 미향은 몸을 뒤틀어댔다. 그 모습이 마치 도마 위에 올라 마지막 도주를 시도하는 생선 같았다. 미향이 끝까지 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는 멈추었을까.
완은 전씨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횟집 문을 열고 들어선다. 미향은 개수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다 뒤를 돌아본다. 그녀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는 완 앞에 와 앉는다.
"할아버지가 뭐라고 안 해요? 당분간 여기 오지 마세요.”
그녀는 앞치마를 벗어 꼭 말아 쥐고 있다. 그 손에 힘이 잔뜩 실려 있다. 완은 그것이 미향의 버릇임을 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그녀는 뭐든 힘껏 말아 쥐고 놓지 않았다.
"얘기를 제대로 하긴 한 거야?”
"……미안해요. 할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요.”
완은 일주일 전, 그녀에게 청혼했다. 그럴듯한 프러포즈도, 반지도 없었다. 다만 그는 그녀와 함께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했다. 사고가 난지 일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그들을 결정해주기를 기다리기에도 그는 지쳐 있었다. 미향은 대답하지 않았고,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겠다고만 했다.
미향이 전씨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긴 듯이 구는 태도에 완은 화가 났다. 그녀의 착해 보이는 순종적인 자세 또한 이 순간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향을 처음 찾아갔던 그날 이후로, 완은 매일 밤 늦게 횟집에 들렀다. 보통 자정 즈음에 문을 닫았지만, 술손님이 있는 날은 시간이 더 늘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소주잔만 비우다 돌아왔다. 미향에게서 나는 비린내는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그것은 바다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도 완은 자정이 되기 직전에 횟집에 들어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횟집 안 손님은 다 빠져나간 뒤였다. 안주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미향의 손목을 완이 잡았다.
"아마 형도 당신이 행복해지길 바랄 거예요.”
완이 말했다. 그는 스스로의 말이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미향을 잡을 수만 있다면 형을 이용해도 좋겠다고 여겼다. 테이블에 고등어회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완은 주문을 하며 아무 것이나 달라고 했다. 그는 횟감용 침을 놓으면서도 고등어회는 좋아하지 않았다. 비릿한 향이 너무 강해 때로 비위가 상했다.
"사람에게 고등어 침을 놓으면 어떻게 되나요?”
미향이 말했다. 그녀는 완에게서 손을 빼낸 뒤 앞자리에 앉았다. 완은 술을 부어 그녀 앞에 놓았다.
"글쎄요, 왜 그런 걸 묻죠?”
"그냥요. ……당신 형제는 참 안 닮았어요.”
미향이 말했다. 그녀의 눈이 쓸쓸해 보였다.
그날 밤 미향은 횟집 구석방으로 완의 손을 잡아끌었다. 술기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완은 미향을 안고 이 여자가 형과도 잤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으니 물론 그랬겠지. 형이 술에 취해 새벽녘에나 들어왔던 그 밤이었을까. 아니면 대낮부터 사라져 온종일 나타나지 않던 그날이었을까.
"네 생각을 알고 싶어.”
이번에도 미향은 대답이 없다.
완이 횟집을 드나들면서 좁은 동네에 소문이 났지만 아버지도 전씨도 그에 대해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한 침묵이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강경하게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완에게 직접적으로 미향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 것은 그날 아침이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완이 어릴 적부터 형의 것이라면 뭐든 빼앗으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럼, 형이…… 죽으면 되겠어?
완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말을 눌러 삼킨다.
미향에게 답을 얻지 못한 채 횟집을 나서는 완을 전씨가 불러 세운다. 완은 전씨의 장광설을 묵묵히 참아낸다.
조실부모한 불쌍한 아이, 약혼자가 하루아침에 저 지경이 되자 정신이 이상해진 아이, 자신에게는 딸보다 더 귀한 손녀, 사람 사이의 도리, 법도……. 그리고 형수를 범하는 폐륜.
전씨의 이야기는 대충 그러했다.
"내 자네 아버지한테 말했다만 한동네 살면서 아주 안 보고 지낼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이제 그집이랑 우리집 인연은 이걸로 끝난 걸로 알았으면 좋겠네.”
사람들은 고등어를 두고 성질이 급하다고 말한다. 급한 성미 때문에 도마 위에 오르기도 전에 죽어버리는 거라고. 하지만 완은 그것이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물에 잡히는 순간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해봐야 결국은 이내 죽음에 이를 운명임을 감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완은 마당으로 나가 숫돌 앞에 앉는다. 침통을 꺼내 끝이 무디어진 것들을 골라낸다. 자전거살을 갈아 만든 침이다. 사람에게 쓰는 것보다 굵고 단단하다. 처음 침술을 배울 때 침 만드는 법부터 익혀야 했다. 자전거살을 한 뼘 길이로 잘라낸 다음 끝이 뾰족해질 때까지 숫돌에 간다. 그러면 손끝에 살짝 스쳐도 피가 고일 만큼 날이 선다. 그는 고등어에 침을 놓을 때보다 가만히 앉아 침을 가는 순간이 더 좋았다. 새로 간 침에 푸르스름한 빛이 어린다.
완은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고 방 안에 고인 비린내를 몰아낸다. 그 냄새의 진원지는 형의 몸이었다. 자주 목욕을 시켜도 오래 누워 지낸 병자 특유의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형.”
완은 실로 오랜만에 형을 불러본다. 형의 눈동자가 잠시 그를 바라본 듯했다. 그러나 그 눈 속에는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다. 몸통이 잘려나가도 번득이는 물고기의 눈처럼. 사고가 아니었다면 형은 미향과 결혼했을까. 완은 형이 실제로 살지 못한 인생에 대해 상상해본다. 그들이 아이를 낳고, 돈을 모아 집을 사고, 때로 부부싸움을 하고 권태를 느끼기도 하며 늙어갔을 모습을. 미향의 일로 완이 죄책감을 느꼈던가. 그는 형이 해주지 못한 것들을 그녀에게 줄 수 있다고 믿었다.
형의 꿈은 양식장을 내는 것이라고 했다. 바다에서 나고 자라 고기 잡는 일 외에는 배운 게 없는 아버지, 그게 무슨 대단한 가업이라도 되는 양 그 뒤를 따른 형. 완은 형에 대한 기억을 더 더듬어본다. 가족 사이의 대화란 으레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사표시 수준에 머물게 마련이었다. 이상하게도 형제간의 추억이라 부를 만한 것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어린 시절 아버지 몰래 둘만의 장난질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런 것이 그리 가슴 시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는 형을 사랑했다고 되뇐다. 그러나 나아질 가망이 없는 병간을 오래하다 보면 어느 날은 그가 죽었으면 하는 비밀스러운 소망을 품게 된다. 그 병세가 환자에게 고통을 준다면, 그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그가 죽고 나면 그러한 바람이 그의 생명을 단축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완은 형을 돌아 눕히고 물수건으로 등을 닦아준다. 스스로 자세를 바꾸지 못하니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열창이 생겼다. 형의 푸르스름한 등과 낮게 고동치는 목덜미, 곧은 척추를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사람의 척추 끝은 움푹 패여 있다. 그는 형의 등이 점점 고등어의 청흑색 물결무늬를 닮아간다고 생각한다. 완은 형이 마비 상태에서 깨어난다 해도 곧 죽고 말 것이라고 여겼다. 신경의 어딘가 맥이 끊어져 아직 불행히도 죽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단지 온전히 죽기 위해서 그는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이다. 그물에 잡힌 이상 다시 바다로 돌아갈 수는 없다. 도마 위에서의 도약질은 어리석은 몸부림일 뿐이다. 고등어들은 그 사실을 다른 물고기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결하는 것이다.
그럼, 형이…… 죽으면 되겠어?
완은 자신이 삼키던 속엣말을 다시 되뇐다. 미향 때문이 아니다. 형도…… 어쩌면 형도 그것을 바랄지도.
새로 간 침 끝에 푸르스름한 빛이 어린다.
해가 뜰 무렵의 바다는 붉게 물이 든다. 낮게 깔린 구름이 바다와 맞물려 있다. 집어등을 환하게 밝힌 배들이 너울에 흔들린다. 파도가 제법 높게 이는 모양이다. 완은 담배를 비벼 끄며 선착장으로 다가간다.
배에 오르는 완을 선주가 불러 세운다. 그의 뒤에 한 사내가 서 있다. 어제 전씨의 횟집에서 본 남자다.
"지금 일 배우는 중이니까, 자네도 잘 좀 가르쳐줘봐.”
사내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인다.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 즈음으로 완과 비슷한 또래로 보인다. 배 바닥을 열어 고등어를 건져 올리는 작업이 시작된다. 완은 침 끝에 묻은 피를 닦아낸다. 사내는 완 옆에 앉아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본다. 견습을 나온 학생처럼 눈길이 완의 손끝을 좇아 움직인다.
사내는 도시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는데, 그게 부도가 나면서 부모 집까지 저당 잡혀 시작한 일이 망해버렸다고 했다. 원양어선이라도 탈 요량으로 친척집에 내려왔다가, 그보다는 기술을 배워두는 편이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침술을 익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근데 어머니가 많이 우셨어요. 꽤나 독실한 불자신데, 산 목숨들을 그렇게 잡아 치면 쓰겠냐면서요.”
완은 사내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듣는다. 이 배에서 나오는 일감은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양이다. 선주는 어쩌면 사내가 일에 능숙해지기를 기다리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자면 또 얼마나 많은 고등어들이 죽어나가야 할까.
완의 휴대폰이 울린다. 아버지다. 그는 형이 호흡곤란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완은 사내에게 남은 일의 마무리를 부탁한다. 침통을 닫는 그의 손이 심하게 떨려온다.
완은 선착장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그는 어쩌면 양식장을 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완이 물고기를 기르고, 미향이 그것으로 장사를 한다면 좀 더 빨리 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창밖으로 빠르게 바다가 물러난다. 완은 생각을 고쳐 고향을 떠날 궁리를 해본다. 그를 따라다니는 비린내가 없는 도시로.
아버지는 중환자실 의자 앞에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다. 완은 작은 창으로 병실 안을 들여다본다. 형은 보이지 않는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혈색도 좋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너 일 나가는 소리에 일어나 들어가 보니까…….”
지난밤엔 바람이 많이 불었다. 형의 신음소리와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바람을 가르는 것을 들으며 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내내 뒤척이다가 아버지와 마주 앉기가 불편해 아침을 거른 채 집을 나왔다. 아버지는 애처로울 정도로 떨고 있다.
형, 무슨 미련이 이리도 많은 거야. 이제 제발…… 그만하자.
병원 복도에 미향이 서 있다. 아버지는 그녀를 보자 눈물도 없는 울음을 운다. 그녀 역시 병원으로 오는 길에 울었는지 눈이 발갛게 부어 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완이 미향에게 다가가 묻는다.
"아버님이…….”
그녀는 말을 채 맺지 못하고 아버지를 바라본다. 완은 아버님이란 말이 주는 느낌에 대해 생각한다. 형과 결혼하겠다고 인사를 왔을 때 차려입었던 그녀의 살구색 원피스와, 말끝마다 그 소리를 붙여 새색시처럼 굴던 일이 떠오른다.
"형님은…… 괜찮은 거예요?”
한참 뜸을 들여 미향이 묻는다. 그녀가 던지는 말들이 그에게 해독해야 할 암호문처럼 들린다. 그는 미향의 손을 잡고 병원 문을 나선다.
"형이 아직도 그렇게 걱정되는 거야? 이렇게 울면서 달려올 정도로?”
미향이 울지 않았다면 화가 나지 않았을까.
"솔직히 말해봐. 너도 형이 죽기를 바랐잖아.”
완의 목소리는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다. 미향은 완에게 손목을 잡힌 채 그를 노려본다. 그 눈에 작은 침이 들어선 것 같다. 신경을 끊어 독이 되는 침.
완은 문득 형이 사라진다 해도 이 관계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녀는 외려 형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여자의 눈 속에 있던 침이 그에게로 옮겨온다. 그 침 끝엔 핏자국이 엉겨 붙어 있다. 단말마보다 더 끔찍한 것은, 비명도 없이 마지막 요동을 치는 몸뚱어리다. 그 움직임은 손끝에 각인되듯 남는다. 완의 손에 힘이 풀린다. 그에게서 놓여나자 미향은 고개를 숙인 채 셔츠단을 꼭 말아 쥔다.
밤이 되자 바다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완은 그 깊은 곳 어딘가에 유영하고 있을 고등어를 떠올린다. 몇 마리는 운 나쁘게 그물에 걸릴 것이고, 그렇지 않은 물고기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리라.
형이 죽었다.
형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다. 완은 홀가분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슬픈 건 아니었다. 사고가 나던 날, 형은 그 자리에서 죽은 것이다. 미향을 안던 날, 형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완은 왠지 모든 것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뜻밖이었다. 죄책감이 아닌 상실감이 그를 괴롭히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완은 왜 죄에 대한 자책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픔이 더욱 큰지 알 수 없었다. 형이 다시 태어난다면 통점이 없는 물고기였으면 좋겠다.
바다에 작은 포말이 인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완은 살갗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낀다. 남극엔 얼음 침이 비가 되어 내린다고 했던가. 완은 침을 꺼내든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새로 간 침이다. 그는 자신의 척추 끝에 가만히 손을 대본다.
바다 속에서 고등어 한 마리가 조용히 몸을 뒤척인다.
심사평
고등어와 침 매개로 막막한 인생 담담히 서술
염무웅 교수
2008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작
[소설당선작] 침(鍼)
예심을 거쳐 본심으로 넘어온 소설은 모두 11편이었다. 11편은 각기 독특하고 재미있는 소재에 주제 의식이 뚜렷한 작품이 많았다. 그 가운데서도 상처받고 주눅든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담은 작품들이 돋보였다.
신문사의 입사 면접을 소재로 응시자의 복잡한 심리를 묘사한 '정직한 하루', 대학을 휴학하고 몰락해가는 탄광촌인 고향에 돌아와 짝사랑하는 오빠의 술집에서 경리를 보는 어린 처녀의 아련한 슬픔을 묘사한 '무랑무즈'는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러한 선별을 거쳐 마지막까지 심사자들의 손에 남은 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침'이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현실과 환상을 섞으면서 각주와 본문의
이인화 교수
긴장을 만들어내는 실험성과, 각기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세상에 상처받은 두 여자의 심리 묘사가 돋보였다. 소외된 자리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눈부심과 화려함을 정묘한 문장으로 잘 그려내고 있었다. 그러나 소설 후반부 두 여주인공이 만나면서부터 서사적 긴장이 사라지고 모처럼 참신하게 축조했던 메타포들이 진부한 감상으로 추락하는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침'은 전자에 비하면 평면적이고 새로움이 모자라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인생이 빚어내는 마성(魔性)적인 색채를 고등어와 침을 매개로 담담하게 서술하면서 끝까지 서사적 완결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단단한 작품이라고 판단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소설가로서의 지속적인 정진을 부탁한다.
당선소감
소설 만만찮은 작업이라 더 깊이 빠지고파
2008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작
[소설당선작] 침(鍼)
기쁘고, 고맙습니다. 맨 처음 소설을 쓰겠다고 펜을 잡았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마냥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소설이란 책상 구석에 앉아 키득거리며 공상을 하는 일쯤으로 여겼습니다. 뭘 잘 몰랐습니다. 가끔 힘들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꾸었습니다.
모든 일은 다 제로섬인가 봅니다. 소설이 재미있다고 쉽게 생각했다가, 나중에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차 싶었습니다. 이걸 어쩌나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설이 재미있기만 한 일이 아니며, 만만하게 덤빌일은 더욱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에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묵묵히 지켜봐주신 부모님과 가족들께, 그리운 에바에게, 먼 곳에서 늘 응원해준 니나에게, 좋은 친구 수영에게,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성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많이 부족한 글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 작가약력
△ 1975년 영주 출생
△ 1997년 한국외국어대 한국어교육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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