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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시조/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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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
이광
달아보면 느껴지는 저마다 지닌 무게
눈금 하나 사이에서 추를 살짝 멈추고
평형을 이루어내던 대저울이 생각난다
한 걸음 물러서면 한 쪽으로 쏠리고
괜한 욕심 앞세우다 흔들리어 떠는 몸짓
눈앞에 그려보고도 어긋나는 평형의 길
하루 가면 하루치 빚을 지고 돌아와
그 무게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생의 저울
언제쯤 수평에 서서 저 해넘이 바라보랴
[심사평]
진솔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사유 돋보여
좋은 시조는 어떤 모습일까? 심사를 할 때마다 새삼스럽게 이 질문을 먼저 떠 올린다. 정형시인 시조는 물론 그 형식을 잘 소화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공정 자체가 언어를 시적으로 극화시키는 적절한 압축과 긴장의 아름다움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대를 투시하는 예리한 시인의 눈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신춘문예의 경우 하나 더 욕심을 낸다면 참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수백 편의 응모작을 조심 조심 정독해 갔다. 대체로 시조 형식을 모르는 응모자는 없었다. 수준도 예년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시상이나 어법이 지나치게 평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관심을 끈 것은 '숭어 뜀을 담아오다', '프리즈 프레임', '판자촌 봄비', '저울' 등이었다. '숭어뜀을 담아오다'의 경우 리듬이 살아 있고 이미지가 참신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울림이 없다는 점이 적지 않은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프리즈 프레임'의 경우 시상이 자유롭고 기법 또한 참신했다. 그러나 전통시조 작법에서 바라보면 지나치게 이탈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낳게 했다. 언어의 밀도, 시상의 구체성 면에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판자촌의 봄비'의 경우 시조를 잘 알고 습작한 경험이 오랜 시인의 작품으로 읽혔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소박한 시상과 긴장감 부족이 흠이었다. 결국 올해의 영광은 '저울'의 작가 이광 시인에게 돌아갔다. 이 시인의 장점은 시상의 진솔성과 결코 가볍지 않은 시적 사유의 깊이에 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한결같이 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빚어낸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부분 부분 지나치게 비시적이거나 다른 시인의 그림자 같은 것이 있고 회고조의 정서도 노출된다. 그런 면에서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저울'을 내세우기로 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재지만 쉽게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저울'이다.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오랜 시적 수련과 사유의 깊이가 인생론적 의미를 띤 울림 있는 작품으로 빚어놓았다. 참신하지 않다는 흠이 있지만 신뢰가 가는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성을 빈다. 이근배 이우걸 (시조시인)
[당선소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작품 쓰고파"
당선 소식을 접하고 흥분이 가라앉을 때쯤 어머니의 산소가 눈앞에 그려졌다. 하늘 어딘가에서 흐뭇해하실 어머니를 떠올리며 지난했던 지난 날들을 잠시 되돌아 보았다. 사십대 중반에 들어 시조 잡지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살아가는 일이 자꾸 시들시들해져 내적 변화를 모색하던 차에 만나게 된 시조였다. 자유시와는 다른 단아한 품격과 3장 6구의 짜임 속에 흐르는 운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시조를 공부하며 한 수 한 수 습작을 늘리는 동안 찢어진 삶의 옷가지들도 한땀 한땀 기워져가던 그 위안의 밤들을 잊을 수 없다. 한 줄의 시구를 가다듬느라 생각이 길어지다 보면 어느 사이 결 고운 우리 말이 제 자리를 알고 소곳이 앉아줄 때 그 줄거움 또한 일품이었다. 이제 내 나이 쉰, 해가 바뀌면 쉰 하나다. 늦은 출발이라 창문 너머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도 귀기울이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겠다.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옛 시조가 아직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은이의 사상이나 의지가 종장에서 빛을 발하듯 표출되는 옛 시조의 멋을 현대시조에서 배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기보다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작품을 쓰고자 다짐해 본다. 그리하여 우리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의 대중화에 미력하나마 정성을 다하리라고 욕심도 가져본다. 오랜 친구 양수, 상호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 추운 겨울 밤늦도록 고생하는 아내의 두 손을 꼭 쥐어주고 싶다. 여전히 가정의 중심에 계신 아버지 그리고 사랑스런 아들과 딸의 축하에 가슴으로 따뜻함이 벅차오른다.
〈약력〉
▲ 1956년 부산 출생
▲동아대 농대 원예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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