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추천작품

200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소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4,851회 작성일 08-02-16 02:20

본문

  

사바끼
박영희



“한 솜씨 한다고 김 사장이 소개하던데 김 형, 솜씨 한번 봅시다.”
작업장에서 만난 주인남자의 말투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위압적으로 들렸다.

“농장에서 직접 길러서 잡은 육 고기라고 찌라시 돌리고 광고 때렸으니깐 오늘부터 바빠질 거요. 알아서 잘 좀 해 보슈.”

회색 동네의 키 낮은 지붕들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서자 거리엔 퓨전 스타일의 고깃집들이 생겨났다. 위기감을 느낀 주인남자는 낡은 식육점을 1층은 소매를 할 수 있는 육류전문 백화점으로, 2층은 실내장식이 고급스런 고깃집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농장을 갖고 있는 식육 도매업자인 김 사장과 직거래를 트고는 오늘부터 시작하여 오픈 날까지 사바끼를 해 달라고 부탁했었던 모양이다. 김 사장과 직거래를 하는 큰 식육점은 거의 내가 도맡듯이 작업을 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작업에 어려움을 느낀 집은 없었는데 주인남자의 투박함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이른 시간이었는지 작업장엔 내 일을 도와 줄 녀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김 사장이 부르는 녀석이라면 짐작컨대 식육학교 출신의 김 군일 것이다. 그 놈은 말이 없어서 마음에 든다. 몇 번 같이 일을 했지만 작업 중에 내 신경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단지 뻗을 때까지 술을 마시고는 거머리처럼 물고 늘어지는 그의 술버릇만 없다면 입 댈 것이 없는 놈이다.



작업용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가방에서 길고 둥근 쇠로 만든 야스리와 칼집에서 칼을 꺼낸다. 오늘 아침 날이 서도록 세심하게 간 칼날이다. 사바끼 칼은 얇지만 날 길이가 15cm 정도이고 칼자루가 10cm, 전체적으로 칼의 길이는 30cm 안팎이다. 섬세한 부위의 살을 발라낼 때 쓰이는 좀 작은 칼과 칼을 다스릴 때 필요한 30cm 정도의 쇠로 만든 둥근 막대 모양의 야스리가 준비되어야만 작업을 할 수 있다. 꺼낸 칼을 다시 한 번 야스리에 벼린다. 예리하게 갈아진 칼끝으로 팔뚝의 털을 엷게 밀어본다. 소리 없이 풀들이 눕는다. 칼날 끝으로 손바닥의 굳은살을 지긋이 눌러 보니 가늘게 드러나는 살의 선이 선명하다. 이 정도의 예리함이라면 오늘은 거침없이 칼을 잡아도 될 것 같다. 통나무 한 토막을 가로로 잘라 만든 도마는 손바닥으로 쓸어 봐도 티끌 하나 걸리지 않는다. 어찌되었던 작업하기에는 여러모로 좋은 징조다.

작업내역서를 훑어보니 오늘 작업물량은 소 다섯 마리와 돼지 열 마리다. 소 한 마리에 넉넉잡아 한 시간이니깐 합치면 다섯 시간이 걸린다. 돼지 열 마리면 한 마리에 십분 정도 잡으면 한 시간 40분 정도다. 그러면 정확하게 작업시간만 여섯 시간이다. 대형마트나 식당을 겸하는 고깃집에 오는 날은 돈은 되지만 손 봐줘야 될 귀찮은 일들이 자잘하게 많다. 고기를 부위별로 나누고 잘라서 뼈까지도 완벽한 골격으로 추려 분리해 주어야만 한다. 오늘은 넉넉하게 작업시간을 더 잡아 여유롭게 작업을 해야 될 것 같다.


냉동고 문을 열자 성에를 동반한 비릿한 냄새가 어젯밤 소주로 할퀸 빈속으로 확, 달려든다. 한눈에 보아도 아침 일찍 도축장에서 출하된 싱싱한 물량들이다.

‘난 이 냄새가 싫어. 당신 몸에서는 항상 피비린내가 나.’

어디선가 나영의 말소리가 나긋하게 들려온다. 나에게는 이 비릿한 육향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향수다. 아침밥도 거른 창자 속이 저릿해져 긴 숨을 들이마신다. 쇠고리에 일렬로 걸려 있는 고기들의 연하고도 붉은 색깔이 뿌연 성에 속에서 비밀스레 보인다. 4도 이하의 냉각으로 유지해야 하는 냉동고의 온도계는 3도 가까이에 서 있다. 서늘한 공기 속에 돼지들이 탄력 있는 허벅지와 엉덩이를 내어놓고 포박당한 포로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다. 원피스를 홀라당 벗고 희멀건 나체로 침대에 누운 나영은 항상 궁금하다며 물었다.

‘내가 뚱뚱해도 좋아?’

두 팔을 위로 쭉 뻗어 손깍지 끼고 투실투실한 다리를 꼬고 까딱거리는 모습은 뒤틀린 내 성욕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살집이 두툼한 나영의 몸은 가슴과 배의 구분이 없다. 아랫배는 삼겹살과 등심 사이에 길게 세로로 뻗어있는 갈매기살처럼 두툼하다. 연붉은 유두로 가슴이 확인되고 몇 가닥 노란 음모로 인해 성기가 구분된다. 나영은 뼈는 약하지만 살집이 단단한 오겹살의 뱃살을 가진 암팡진 암퇘지였다. 손끝에 묻어있는 촉감은 아직도 그녀를 보내지 않았나보다. 대책 없이 찾아오는 그녀의 향수에 마음보다 몸의 감각이 먼저 달려 나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보라색 검사 낙인이 찍힌 채 갈고리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투실한 암퇘지의 두 다리를 뻐근하게 벌린다.

오, 이런 붉게 부풀어 오른 성기.

숨겨두었던 굴풋한 내 성욕이 주체할 수 없이 달려 나온다. 갯벌의 힘은 오묘하다. 넓고 풍요롭게 펼쳐졌다가 함정처럼 오그라드는 살의 결 따라 움직임은 빨라진다. 깊은 곳에 이를수록 따뜻함은 살을 익히는 뜨거움으로 변한다. 뜨거움의 정점은 차가움이다. 평행선을 팽팽하게 유지하다 견고한 수문을 열고 내리꽂히는 폭포의 포말로 정점은 사라진다. 붉은 살점 위에 하얀 정액이 꽃잎처럼 흩어진다. 이번 것은 아마도 풍성한 꽃등심이 될 것이다.


*

흠집 하나 없는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긴 통나무 도마 위에 돼지 한 마리를 눕힌다. 차가우면서도 출렁출렁 만져지는 살이다. 촉감이 녹진녹진하게 와 닿는 것이 한 덩치 한 녀석 같다. 어디 보자, 보드랍게 와 닿는 살결이 장난이 아니군. 그렇다면 이놈은 거세한 후 방목으로 키운 수퇘지가 확실하다. 돼지고기 중에서도 최고의 맛을 내는 놈이다. 암퇘지보다 냄새도 적고 영양가도 높고 육질은 더 부드럽다. 좋은 살을 가진 놈을 만진다는 것은 사바끼하는 자에게는 욕망이며 희망이다.

오늘은 출발부터가 살의 감촉이 손끝에 착 감겨드는 것이 흡족하다. 야스리에 힘 있게 칼을 다스린다. 사삭거리며 부딪치는 쇠들의 음도 긴장한 소리다. 열 손가락을 펼쳤다 쥐었다 하며 긴장감을 풀어준다. 드디어 사바끼 칼을 녀석의 몸통에 깊게 박아 넣는다. 사악, 갈라지는 살의 소리가 일순 가슴팍을 서늘하게 지나간다. 탄력을 받은 칼의 속도는 빨라진다. 먼저 전지와 몸통, 후지로 크게 이분 채 분할을 한다. 목 부위의 선을 잡아 낸 다음에는 살 많은 앞다리를 걷어낸다. 뒷다리의 뼈를 발라낼 적에 우두둑, 고리뼈를 빠개는 것은 나의 어깨 힘이다. 부분육의 해체는 지육 해체가 끝난 후 살과 뼈를 정확하게 분리하는 것이다. 길게 등 쪽에 자리 잡은 등뼈를 발라낼 적엔 자잘하게 손이 많이 간다. 등심은 고기의 결이 곱고 지방이 없는 편이라 샤부샤부용으로 많이 찾기에 섬세하게 근육을 가른다. 야스리의 사근사근함을 끝없이 요구해야만 칼은 옹골차게 자리 잡고 있는 살들을 걷어낸다. 등심에서 목 쪽으로 이어지는 목심은 근육 사이사이에 육질이 단단하게 발달되어 있어 소금구이로 먹어볼 만한 맛이다. 출렁거리는 아래쪽 삼겹살 부위를 지나갈 때 칼은 잠깐 옆길을 따라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나영을 알게 된 건 카페골목 인근의 식육점에서 사바끼를 한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수육 해먹게 좋은 고기로 줘요.”

깊고도 묵직한 목소리였다. 땀범벅인 얼굴로 쳐다보니 둥글한 얼굴에 몸매의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뒤돌아서 있는 엉덩이의 살들이 농구공처럼 팽팽하게 바람이 들어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것만 같았다. 한마디로 화악, 당기는 살맛을 가진 여자였다. 탱탱한 몸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손끝이 파르르 떨려 왔다. 나영은 얼굴의 어떤 특징보다 풍성하고 탄력있는 엉덩이의 살이 더 선명하게 와 닿는 여자였다.

“수육할 때 들통에 무얼 넣어? 마늘, 양파 이런 것 말고.”

“커피 한 숟갈 넣어요.” 눈이 마주치고 난 뒤부터 반말이었다. 어쩌면 그런 당돌한 면에 마음이 한순간 기울어졌는지도 모른다.

“놀러와. 난 요 아래 골목에 있는 cafe 수림에 있어. 잘해 줄게···.”

잘해 준다는 말은 그냥 하는 빈말이 아니었다. 만난 날부터 헤어진 그날까지 나영은 나에게 진심으로 대해 주었다.

가브리살.

돼지 한 마리에 한 근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이며 돼지고기 중에선 백미다. 로스구이와 수육거리로 쓰는 배 쪽의 비계 살 안에 가늘게 가로로 자리 잡고 있는 얇으면서도 부드러운 맛이다. 내 삶에서 단 한번이라도 가브리살 한 근으로 보이는 값 나가는 시절의 부위는 있었을까? 풍성한 살들이 외투 자락처럼 겹겹이 달려 나와 상처의 몸을 안아주던 살찐 암퇘지의 몸을 한 그녀와 있었던 그 시절이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아앗-

약간의 방심에 칼은 어김없이 경고를 한다. 빠르게 피하지 않았다면 손이 사바끼 될 뻔했다. 오늘 들어 첫 번째 경고다. 야스리에 칼을 다시 다스린다. 차가운 생수 한 병을 단숨에 들이킨다.

부질없는 추억에 젖어 들다니···. 일을 시작하며 이렇게 감상에 젖어 들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나도 많이 약해졌군. 목젖을 적시는 차가운 물맛으로 풀어졌던 마음의 긴장을 바싹 당겨본다.

돼지고기는 지방이 적당하게 박혀 있고 살집이 차지고 근육이 연한 것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꼼꼼하게 박혀있는 육질은 육안으로도 좋고 나쁨을 확인할 수 있지만 손으로 만져 보았을 때가 더 정확하다. 섣불리 물 먹인 고기 살과 약을 먹인 살들은 살아있어도 부패한 관리들처럼 냄새를 풍긴다. 부패한 고기를 만지는 것은 사바끼하는 자에게는 치욕이다. 퓨전 식당인 이 집은 엄격한 기준에 맞춰 키운 거세당한 수퇘지가 주력상품인 것 같다. 가격은 일반 고기보다 좀 센 편이지만 고기 맛은 비싼 가격만큼 값어치를 톡톡히 할 것이다. 목이 긴 주인 남자의 부탁이 떠오르자 신경도 줄에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워진다. 칼을 쥔 오른손의 손바닥에 맺힌 땀을 닦고 다시 한 번 바투 쥔 손아귀에 힘을 준다.

칼은 갈매기살 옆에 있는 갈비를 걷어낼 때가 절정이다. 돼지의 옆구리 쪽에 붙어있는 첫 번째 갈비부터 다섯 번째 갈비까지의 육질이 쫄깃하고 향도 신선하다. 불갈비용으로 사용하면 그 맛의 진가를 발휘한다. 돼지갈비를 걷어낼 땐 섬세한 작은 칼날이 살과 뼈를 분리시켜 놓는다. 그런 다음 질긴 링겔 줄을 들뜬 갈비뼈 사이에 걸어서 앞으로 쫘악 당긴다. 너무 힘을 주어서도 느슨해서도 안된다.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뼈가 부러질 수도, 약하면 살이 당겨 올 수가 있다. 나는 절대 그런 일은 만들지 않는다. 이것은 육감으로 처리해야 한다. 살들과의 전쟁이 아닌 쓰다듬고 어르고 타이르듯이 달래주어야 한다. 감각 예민한 여자를 다루듯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싸릿대로 만든 매운 매로 엉덩이를 때릴 때 착, 착 감겨드는 소리, 그 소리여야만 된다.

갈비뼈를 차례로 걷어내자 열 개의 하얀 막들이 나타난다. 뼈가 있었던 자리와 없었던 자리가 붉고 흰 피아노 음반의 모습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철봉처럼 길게 이어진 쇠막대에 한 대의 피아노 건반을 쇠고리에 건다. 톡, 톡 건반을 두드린다. 통, 통 거리며 튕겨 올라오는 살들의 탄력에 짧은 전율을 찰나처럼 맛본다.

갈비짝과 등뼈, 예민한 부위의 살을 사바끼할 적엔 아버지가 유일하게 유산으로 남기신 칼로 마무리한다. 나무 손잡이가 땀에 절어 지금의 사바끼 칼보다 더 휘어진 그 칼로 작업을 할 때에만 나는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바끼 칼은 사바끼 행위를 하는 자와 한 몸으로 인식될 때, 그때가 최고의 절정기다. 지금의 나로선 절정기를 향해서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돼지고기의 손질이 어느 정도 끝났다. 김 군은 스테이크용 살들을 다듬느라 두꺼운 칼의 등을 다듬이질 하듯이 등심살 위를 계속 두들기고 있다. 아주 탁월한 맛의 스테이크가 나올 것 같다. 쇠등을 맞이하는 살의 경쾌한 소리만 들어도 단박에 알 수 있다.


*

이젠 소고기를 손질할 차례다. 소고기는 돼지고기보다 다루기가 까다로워 더욱 신중해야 한다. 덩치도 덩치지만 부위별로 나눠지는 귀한 살들이 끝없이 긴장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업 중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계절에 관계없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김 군은 그런 나의 의도를 아는지 자신도 마스크를 착용한다. 아주 눈치가 빠른 놈이다. 이 바닥에서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을 몸으로 익힌 것이다.

냉동고에서 꺼낸 소고기는 철봉처럼 이어진 쇠 난간에 힘겹게 걸려 있다. 김 군은 늦게 나타난 것이 미안했는지 플라스틱 궤짝을 재빠르게 가져오고 칼끝도 야물게 다스려 놓았다. 소고기는 쇠고리에 걸어 놓은 채 분할한다. 앞다리 부위에 칼을 넣는다. 둥글게 원을 따라 각이 잡히고 나면 힘 있게 살 속을 파고든다. 칼이 원하는 목표점을 향해 돌진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빠른 손놀림으로 살과 살의 경계선을 찾아가야 한다. 살들도 아픔을 감수하는 시간이 빠를수록 아무는 힘도 야무지기 때문이다. 갈비살과 목심을 다치지 않게 정확한 각도를 잡아낸다. 앞다리 두 짝을 번갈아 걷어낸다. 우족과 잡뼈가 있는 다리 부위는 마지막 분할 처리 땐 기계를 사용할 것이다. 그 일은 김 군의 몫이다. 뒤쪽의 다리를 걷어낼 땐 앞다리보다 한층 더 세심해야 한다. 미식가들이 좋아한다는 설도살과 사태살 사이를 위험하게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맛의 묘미와 진가가 숨어 있는 곳을 터널을 폭파하듯이, 땅굴을 파듯이 조심스럽게 진행해 나간다. 실수란 있을 수 없다. 앞다리와 뒷다리에 있는 사태살은 육회용이다. 고기의 결이 태양초처럼 붉고도 곱다. 큰 근육을 형성한 아롱사태인데 육안으로 보아도 최상급의 육질이다. 벌써 김 군은 칼끝에 선홍빛 붉은 살을 엷게 저며 맛을 보고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앞가슴부터 시작해 복부 아래 부분까지 길게 이어지는 양지살을 발라낼 땐 갈비살을 다치지 않게 근막부위를 조심스레 지나가야 한다. 주로 국거리용으로 이용되기에 붉게 물든 살들 사이로 잎맥 같은 지방의 줄이 국도처럼 지나간다. 차돌박이가 알맞게 박혀 있다. 손의 힘줄이 파랗게 돋아나는 것이 긴장을 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칼을 잡은 지가 어디 한두 해냐. 지나온 삶이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않을 것인데 언제나 이 부위에만 오면 나도 모르게 긴장된다. 벌써 칼의 손잡이가 축축하다. 야스리에 칼을 다스리고 손의 땀을 닦다 반짝하는 빛 하나가 칼끝에 머문다. 빛을 따라 눈길을 돌렸을 때 검게 그을린 고기 불판을 들고 한 여자가 진열대 앞에 서 있다. 여자의 시선은 정확하게 어디를 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눈빛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한 부분을 그리는 눈빛이다. 오래 전 나도 저 눈빛을 가진 적이 있었다. 여자는 뜯겨나가는 고기를 처음부터 보았을 것 같다. 저렇게 깊이도 젖어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쇠고리에 걸린 고기를 도마 위로 옮겨 온다. 그 사이 여자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들고 있는 그을린 불판으로 보아 이층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여자인 모양이다. 세심하게 손보아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여자의 젖은 눈빛이 칼날 위에 머문다. 쓸데없는 생각들을 지우듯 힘주어 야스리에 칼을 벼린다. 기술보다 힘을 필요로 하는 부위가 등심이다. 뼈의 힘도 과격하지만 뼈와 살을 가로막고 있는 근육과 막의 힘도 대단하다. 뼈 사이사이 숨겨 놓은 살들을 보물찾기라도 하듯이 꼼꼼하게 찾아내어야 한다. 생우의 육질로 최고로 치는 것은 살과 뼈를 분리해 놓았을 때 화강암 속에 검은 반점처럼 지방이 잔잔하게 섞인 ‘대리석 육’과 붉은 살 속에 늦가을 서리처럼 보일 듯 말 듯 아스라이 지방이 스며있는 ‘상강 육’의 육질을 최고로 인정한다. 농가에서 비육이 잘되었는지 오늘 걷어낸 이 소도 향이 좋은 대리석 살을 가지고 있다. 등심살 옆의 채끝살과 안심살까지도 엷은 대리석 살이다. 싱싱하고 차진 소의 살을 만진다는 것은 탄력 있는 몸을 가진 여자와의 정사처럼 흥분된다. 설깃살과 도가니살, 보섭살로 형성되어 있는 설도살을 조심스럽게 칼끝으로 걷어낸다. 궤짝을 들고 오는 김 군의 손길이 더욱 빨라진다.

목심을 발라낼 땐 아버지가 남기신 사바끼 칼을 살은 요구한다. 살의 근력이 완강하기 때문이다. 한 번 더 힘 있게 야스리에 사바끼 칼을 다스린다. 여러 줄의 다양한 근육이 모여 있는 부위이기에 예리하고 깊은 칼이 요구된다. 칼끝이 지나갈 때마다 깊은 안쪽의 발 골자국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두꺼운 힘줄이 길게 뻗어 나올 땐 기타 줄의 팽팽한 현을 보는 기분이다.

삭둑.

퉁, 하며 튕겨 나가는 근육의 힘이 크게 느껴진다. 벌써 발밑으로 여러 개의 궤짝들이 놓여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갈비살이다. 이마에서 땀 한 방울이 뚝, 하고 떨어진다. 등 쪽은 이미 면 속옷이 푹 젖었다.

하아, 입에서 단내가 맡아진다. 끝없이 요구되는 육체의 노동과 신경의 예민함을 요구하는 이 짓을 나는 왜 오늘도 하고 있지? 터무니없는 의문 속에 빠져도 본다.

긴 작업을 끝내고 나면 지독한 섹스를 한 것 같다. 노곤하면서도 만족한 피로감이 끊임없이 엄습해온다. 김 군은 벌써 문 밖에서 담배를 피운다. 담배 냄새는 살의 향을 맡는 후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일절 사절이다. 김 군은 궤짝마다 고기 살과 뼈들을 분리하다 말고 힐끗거리며 내 눈치를 살핀다. 요구사항이 있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벗고 김 군의 다부진 턱 선에 눈길을 준다. 대화를 해도 된다는 내 나름대로의 표현방법이다.

“형님! 저번에 말하던 협회 가입 건 말인데요. 이제 결정을 내리셔야 되는데···.”

“그 문제라면 싫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사양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마치고 저랑 소주 한 잔 합시다.”

오늘은 긴 작업만큼이나 피곤한 날이 될 것 같다. 서늘한 바람 한 줌이 갈비뼈 밑을 지나간다. 짧은 만족감과 공허감이 동시에 겹쳐진다.


주인남자는 쇠고리에 걸린 고기들을 보면서 만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고깃집은 말이야. 이렇게 손으로 직접 사바끼가 되어야 만이 최상의 육질을 볼 수 있는 거지. 기계로 갈비살을 툭툭 자르는 것은 플라스틱 냄새가 섞인 공장제품 같단 말이야.”

쇠고리에 걸려있는 튼실한 수퇘지의 허벅지를 권투를 하듯이 서너 번 주먹으로 건드려 보고는 가볍게 내 어깨를 툭, 친다. 만족한다는 표현이다. 냉동고 속의 고기들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생긴 모습하고는 다른 이재에 밝은 장사꾼의 냄새를 풍긴다. 개성상인들이 처음으로 돼지 삼겹살을 키워 판매했다고 하는데 주인남자에게도 개성상인의 피가 흐르는지도 모를 일이다. 칭찬은 어쩐지 어색하다. 미세한 알갱이가 눈에 들어간 것처럼 머들머들하다.

알코올 분무기를 이용하여 넓은 도마 위를 꼼꼼하게 닦아낸다. 앞치마와 신었던 장화까지도 소독한다. 도마 사이사이에 스며있는 기름때들은 잠깐 하는 사이 거대한 균을 만들어 언제든지 공격을 할 수 있는 강력한 적들로 변신할 수 있기에 끊임없이 경계의 손길을 가져야 된다. TOPAX68약품의 미세한 포말로 작업장 바닥까지 빈틈없이 청소해 놓는다. 청소의 마무리는 물론 김 군 몫이다. 내가 사바끼한 집은 청소까지 깔끔하게 마무리되어야 일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눈치껏 대충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먹거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놈을 나는 제일 경멸한다. 내일은 도마의 뒷면으로 고기를 손질할 것이다.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해야지 두 번 우려먹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청결, 안전. 이것이 사바끼하는 자의 철칙이며 원칙이다.


긴 작업과 청소가 마무리되면 이제 손을 씻어야 한다. 가져온 수세미와 빨랫비누를 챙겨들고 화장실 세면대로 간다. 오래도록 꼼꼼하게 얘기를 나누듯이 손을 씻는다. 단박하게 잘려진 손톱 밑의 기름때와 피부 속 깊이 박혀있는 놀란 피의 절규까지도 씻어내야 한다. 사바끼하는 자는 살의 향기를 맡을 줄 알아야만 좋은 고기를 고를 수 있기에 향기 나는 비누는 사양한다. 가끔이지만 락스 섞인 물에 손을 담근 적도 있었다. 고기의 육질이 칼을 속인 날은 어김없이 내 손에서도 고약한 냄새가 지독스럽게 났기 때문이다.

“입으로 핥아라. 칼을 잡는 자는 정직해야 한다. 칼은 주인의 심성을 그대로 닮으니깐.”

칼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칼은 어김없이 내 몸에 상처를 주었다. 왼손 다섯 마디에 남아있는 수많은 살의 울음은 칼이 나를 다스린 무언의 경고이며 타이름이었다.

골고루 세심하게 손과 칼을 씻고 난 다음 마지막으로 고운 황토로 마무리한다. 황토를 섞은 물에 손과 칼을 꼼꼼하게 씻는 것은 고기를 만진 손에 대한 예의이며 칼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언젠가 김 사장이 아버지의 칼을 건네줄 때 내 팔뚝을 그었다. 사선 속에 붉은 피가 포도주의 방울처럼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불 있어? 라이터 말이야?

여자는 화장실 문에 기대어 나의 행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알던 사람처럼 빤히 나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조금 전 작업장에서 본 여자였다. 오른쪽 손가락에 가느다란 담배를 끼우고 왼손으로 라이터 켜는 흉내를 내는 것이 마임을 하는 여자배우 같다. 가까이서 들여다본 여자의 얼굴은 어딘지 낯이 익다. 갸름한 얼굴 위에 눈 밑에서부터 거무스름하게 퍼져있는 기미의 본색이 파운데이션 분 화장 밑에서도 푸르게 느껴진다. 푸른 아이섀도 속에 머물고 있는 눈빛은 흰자위까지도 서늘하게 푸른색으로 물든 것 같아 내 눈이 시려 왔다. 여자의 전체적인 얼굴 분위기는 서늘한 십일월의 호수를 연상시킨다. 갈색의 립스틱은 매몰지역 호수에 떠 있는 죽은 나무처럼 어둡다.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돌리는 나를 개의치 않고 바로 화장실 문 위쪽을 더듬어 라이터를 찾아낸다. 그곳에 라이터가 있다는 것을 아는 여자는 세면대 쪽으로 다가서면서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난 당신을 알아.”

손을 씻다 말고 여자를 바라본다.



“시장 식육점에서 보았고 횟집 수족관 앞에서도 보았어. 당신의 칼 다루는 솜씨는 부드럽고 힘이 있어. 내가 본 꾼들 중에선 최상급이야. 시체 같은 살덩이도 당신 손이 스치면 꽃밭이 되더라구. 꽃등심이 피어나는 꽃밭 말이야. 왠지 이 고깃집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아? 칼잡이.” 여자는 급하게 담배를 빨아들인다. 말과 행동 모든 것이 내 손에서 물기가 몇 방울 떨어져 내리는 동안에 다 이루어졌다. 여자는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를 화장실 바닥에 던지고서는 태연하게 문을 열고 사라진다. 한마디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는 나는 꼭 버려진 비계 덩어리 같은 느낌이다.


주인 남자는 내일도 일찍 나와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고정으로 일한다면 월급은 알아서 맞추어 줄 수 있다고 한다.

“요새 새파란 젊은 것들 불러 쓰는 것보다 김 사장 소개도 있고 솜씨도 쓸 만하고.”

남자는 빠르게 고용의 관계를 셈으로 헤아렸는지 나에게 유리하다는 조건을 내세우면서도 자신의 실속을 빈틈없이 챙기고 있다. 젊은 것들이라고 못을 박는 것은 넌 나이 값을 하겠지. 설마 농땡이나 치는 날건달은 아니겠지, 라고 묻는 말처럼 들린다. 갑자기 속이 뒤틀린다.

오늘 일당을 챙긴 흰 봉투와 개업기념 축하합니다, 글씨가 새겨진 수건 한 장을 인사치레로 쥐어준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없이 고용의 고마움을 빚더미처럼 떠안고는 뒷문으로 돌아 나온다. 바라다 보이는 이층 유리창 안에서 여자는 매운 연기를 마시며 고기를 자르고 있다. 찡그린 미간의 주름이 깊게 느껴진다. 뒷머리를 걷어 올린 큐빅 핀에서 유성 하나가 반짝이며 빛나고 있다. 여자는 둥근 접시를 들고 일어서다가 순간 눈빛이 마주쳤다. 여자는 아주 잠깐 동안 엷게 미소를 짓는다. 어색하게 눈빛을 피한 것은 내 쪽이다. 푸른 바다를 오래 바라볼 때처럼 멀미가 났다.


*

월포횟집 유리문에 전어 1kg 이만 원이라고 적힌 하얀 종이가 붙어 있다. 흰 비늘을 희번덕거리며 유유히 수족관을 헤엄치는 성질 팔팔한 전어들을 바라본다. 서너 개의 테이블이 있고 주방과 긴 방으로 이어진 이 집을 가끔씩 들른다. 스치듯 지나치며 보게 된 살아있는 생선살을 다루는 둥근 칼의 모습이 날 매혹시켰기 때문이다. 주인여자가 사용하는 회칼은 배가 얇고 긴 칼이다.

횟집 여자는 유리창 너머의 거리를 힐끔거리면서도 횟감을 다듬고 손님들과 가벼운 농짓거리를 하면서도 능숙하게 칼을 놀렸다.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긴장 속으로 위태하게 몰아넣는 재주가 여자의 손놀림엔 있었다. 이 긴장감이 주는 서늘함이 좋아 주인 여자의 두툼한 손목에 잡힌 칼을 언제나 신뢰한다. 칼은 리듬에 따라 어김없이 살을 갈라낸다. 오징어의 몸통이 명주실 모양의 뽀얀 살결이 되어 나폴거리며 칼끝에서 비어져 나올 땐 그만 내 몸을 밀어 넣고 싶을 정도다. 날렵하게 다가오다 훽, 돌아가는 녀석들의 몸놀림이 제법 신선하게 느껴진다. 주인여자는 벌써 뜰채를 들고 수족관 앞에 섰다.

“오늘 받아온 놈들이야. 살이 잘 올랐어.” 파닥거리는 녀석들의 몸에서 은가루 같은 비늘들이 떨어진다. 수족관 속은 전어 별들이 유유히 떠다니는 작은 우주 같다. 횟집 여자의 두툼한 손목에서 전어의 모가지는 힘 있게 꺾인다. 배 쪽으로 길게 칼집을 넣고 비늘을 치고 뱃속에 남아있는 핏줄을 흰 수건으로 닦아낸다. 그 순간도 핏줄이 식지 않은 놈은 꼬리를 떨며 전율한다.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상태로 주인여자가 횟감을 옮겨오는 전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생선은 하얀 수건 위에 몸을 맡기고 있다. 이제 한 마리씩 손님의 뜻에 따라 뼈째 잘게 썰 것이냐 아님 뼈를 추려내고 뜰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듬성듬성 크게 썰어 줄 것을 당부했다. 실낱 같이 잘게 썰어 먹는 맛이 생선회의 맛이라지만 두툼하게 썰어 한 입에 넣어 공굴리며 씹을 때 이빨과 살들의 마찰이 탄력 있게 느껴져서 좋다. 혀끝을 따라 살아나는 살의 맛이 재미가 있다. 벌써 새콤한 초고추장에 매운 고추를 자잘하게 썰어 넣고 와사비와 막된장을 한 숟갈 얹은 양념장에 단단한 전어의 살을 붉게 물들여 씹을 때의 촉감이 느껴져 입술이 얼얼해온다. 혀는 그 예민한 미각의 맛을 느끼는지 벌써 목안을 촉촉하게 젖게 한다.

횟집 여자는 익숙하게 쑹덩쑹덩 전어의 몸에 칼집을 낸다. 대패 날에 떨어지는 나무의 결처럼 생선살은 통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잘라 만든 둥근 나무 도마에 툭, 툭 떨어져 눕는다. 여자는 먹고 갈 건지 가져갈 건지 칼자루를 쥔 손을 멈추고 동그랗게 눈동자를 모으고 날 건너다본다. 마주 본 여자의 오른쪽 눈썹이 아직 다 그려지지 않았다.

“손님이 올 거야.” 이제야 들고 있던 작업용 검은 가방을 탁자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다. 여자는 넓은 접시에 두툼하고도 싱싱한 살들을 무덤처럼 봉긋하게 만든다.

가을이 오기는 왔는가보다. 슬며시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시작되는 달부터 싱싱한 생선살이 씹고 싶어진다. 계절의 징후는 맛에 길들어져 있는 몸의 허기가 달려 나올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우리 지회로선 형님이 앞장서야 일이 제대로 진행됩니다.” 감청색 재킷에 왼쪽 귓불에 이어링까지 한 김 군의 모습이 타인처럼 느껴진다. 남성용 스킨 냄새가 작은 몸놀림에도 짙게 풍겨 온다.

“내 성격을 보더라도 그 일은 맞지 않아.” “이 지역에선 형님이 제일 고참이고 또 든든한 김 사장까지 형님 뒤에 계시지 않습니까? 형님만 앞장선다면 일당도 우리가 책정하여 식육점 사장들한테 요구할 수 있습니다요. 그저 가만히 이름만 올려놓고 명예회장직이면 됩니다. 나머지 일은 총무가 다 알아서 한답니다.”

건들거리면서 내뱉는 김 군의 목소리가 비장하다. 김 군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내가 이 바닥에서 사바끼를 제일 오래 했고 농장주이면서 도매업자인 김 사장의 빽도 있고 하니 이 기회에 내가 앞장서 주면 식육점 사장들을 상대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며 힘을 갖겠다는 것이다. 힘없는 자들로서는 좋은 의도로 느껴진다.

“미안하지만 난 이대로가 좋아. 젊은 너희들이 알아서 하지 그래. 뒤에서 힘닿는 데까지는 밀어 줄 테니···. 그리고 충고하는데 김 사장과 나를 같이 옭아매지는 말고.” 먼 일가인 김 사장에게 지금까지도 많은 혜택을 받았다. 더 이상 나로 인해 피해는 주고 싶지 않다. 녀석의 목적이 내가 아닌 김 사장으로 느껴져 불쾌함이 확 밀려든다.

“형님, 우리 지회가 앞으로 전국에서 제일 큰 지회가 될 겁니다. 도시는 점점 커져나가고 아파트는 자고나면 생기는데 고기 수요는 당연히 느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제3국 아이들이 칼 들고 사바끼 한다고 설쳤다 하면 우린 바로 개밥에 도토리 꼴 됩니다요.” 김 군의 얼굴빛이 비장하게 보여 빈말은 아닌 듯 싶다.

“같이 사는 방법도 좋잖아.”

“형님! 가만히 있으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 보고 알아서 일당 올려주고 우리 처지 생각해 줍니까? 자기 몫은 자기가 챙기는 세상인데 평생 남들 먹는 고기 뼈다귀만 만지다가 죽을 겁니까? 오늘 밤에 결정하소. 총무가 전화할 겁니다.”

앞에 놓인 소주잔을 들어 입 안에 탁, 털어넣는 것으로 김 군의 비장한 목소리는 잠시 침묵했다. 들고 있던 나무젓가락 하나가 바닥으로 툭, 하며 떨어진다. 나머지 한 짝도 바닥으로 던져버린다.

“형님이 한 발 양보하면 모든 것이 오케이라요.”

“한 번 더 생각해보지.”

흥분한 김 군과의 설전이 갑자기 따분하게 느껴진다. 이제 이쯤에서 물러서면서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김 군 앞에 놓인 술병의 수위가 빠르게 줄어든다. 녀석의 핏대가 더 올라가기 전에 정말 돌아버리기 전에 일어나야 된다. 벌겋게 상기되는 김 군의 목덜미 너머에서 강렬한 푸른 기운이 느껴진다. 언제 왔는지 큐빅 핀의 여자는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김 군 옆 의자에 풀썩 주저앉는다. 손님들이 건네는 술잔을 거절 없이 받은 모양인지 붉은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

“주인언니!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고요. 저 알죠? 큰 칼잡이? 작은 칼잡이?” “아이고 누님. 여긴 어쩐 일로···.” 반색을 하는 김 군의 제스처에 녀석의 반질한 이마를 쳐다본다. 여자와는 서로 오랜 세월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보인다. 오늘 처음 식당에서 보았다고 하기에는 김 군의 태도가 지나치게 친절하다. 김 군의 술잔이 건너가고 큐빅 핀 여자의 술잔이 건너온다. 두 사람의 친밀함에 혼자만 고립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어정쩡해진다. 누구의 안부를 묻고 그 집의 살림살이 걱정을 하며 대화는 그칠 줄 모른다. 어색함이 싫어 슬며시 바닥에 놓인 가방을 들자 김 군은 나보다 먼저 부산하게 일어난다. 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벌써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평상시의 김 군답지 않게 횟집 문을 열고 나간다. 당황스러워지는 것은 도리어 내 쪽이다. 나가다 말고 다시 돌아온 녀석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솔로야, 주인이 없다는 거지.”

왼쪽 눈을 깜빡거린다. 아주 재미있는 일을 발견했다는 듯 당겨 올라가는 입매의 꼬리가 짓궂게 느껴진다. 주인이 없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딘지 악의의 기미가 내포된 불편한 냄새를 풍긴다. 수족관 너머로 휘청거리는 녀석의 그림자가 길게 보인다. 보름달이 뜬 모양이다.


큐빅 핀의 여자는 나에게 술잔을 건네주며 잔이 넘치도록 술을 붓는다. 취기가 많이 오른 모양이다.

“당신이 아침에 냉동고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난 알아. 나쁜 짓은 아니지만 결코 바람직한 짓도 아니지. 비밀로 해주는 대신 내가 원하는 것 한 가지 들어줄 수 있어?” “그게 뭐지?”

후끈 달아오른 얼굴은 꼭 술기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당신이 제일 잘하는 것이지.”

여자는 술잔을 시원하게 들이킨다. 여자 앞으로 생선회 접시를 밀어준다. 여자 앞에는 아예 나무젓가락이 없다. 단단하게 붙어있는 나무젓가락을 힘주어 벌린다. 손의 긴장 때문인지 그만 반쯤에서 뚝, 하고 부러진다.

“지겨워, 너무 지겨워.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차라리 단단한 쇠고리에 미련 없이 걸리고 싶어.”

“그건 안돼.” 여자는 이유를 묻듯이 입술을 잘근 깨물고는 초점 흐린 눈으로 쳐다본다.

“그건 영혼보다 육체가 더 값나가는 것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야.”

“칼잡이 날 쳐다봐. 이게 사는 거야. 난 이제 그만 살고 싶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해. 아침에 눈뜨지 말게 해달라고 말이야. 이런 패자의 기분을 알아? 넌 특별해.”

“그것은 영혼이 무겁지 않는 것들의 몫이야.”

“그럼 내 무거운 영혼을 가볍게 해줘. 내 가슴을 열고 들어가 커다란 무덤이 된 응어리를 갈기갈기 찢어줘. 시리도록 예리한 칼로 내 영혼의 고통을 가볍게 사바끼해 줘.”

“난 영혼의 사바끼는 할 줄 몰라.”

“등신같이···. 넌 그래서 바보 같은 놈이야. 너 자신을 봐. 넌 정말 탁월한 칼잡이야 알아? 너만이 날 구제해 줄 수 있는 거야.”

여자의 부탁은 이제 애원으로 바뀌었다. 애원은 지워지지 않는 눈썹의 문신처럼 푸르게 가슴에 와 꼽힌다. 어쩜 저 큐빅 핀의 여자는 내 손길에서 살을 잃은 수많은 착한 영혼이 찾아 온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눈물까지 그윽하게 담긴 눈을 바라본다. 시린 파도가 금방이라도 나에게 달려올 것 같다. 여자의 눈물 한 방울이 술잔에 떨어진다. 출렁, 파도의 흰 포말이 술잔 밖으로 흩어진다. 여자의 야윈 어깨와 푸르게 시린 얼굴이 줄줄이 엮어져서 쇠고리에 걸리는 상상은 소름마저 돋게 한다. 이젠 정말이지 큐빅 핀의 여자 곁을 떠나야 한다. 일어나 저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여자는 집요하게 내 감정을 잡고 있다. 이렇게 난감할 때가 있을까? 알 수 없는 감정의 골짜기에 빠져버린 기분이다. 여자는 술에게 아주 함부로 대한다. 무례하고 예의가 전혀 없다. 마지막 남은 술을 입안으로 쏟아 붓고는 여자는 힘없이 무너진다. 무참하게 무너져버린 여자는 다시는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 여자가 힘들게 다시 일어나면 두 번 다시 쓰러지게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이 술기운보다 빠르게 번진다.


언제나 본델라슈 카스텔라를 고르는 제과점을 지나 목욕탕 건물 옆 공터를 돌아서 집으로 들어간다. 바람처럼 떠돌다가 다시 이 도시에 나타났을 때 김 사장이 마련해준 거처다. 시장이 끝나고 주택지로 들어서는 골목길에서 만나는 3층 건물, 찜질방과 목욕탕을 하는 건물 1층에 위치한 반 지하 보일러실 곁에 난 방 하나와 거실 겸 부엌이 딸린 집이다. 반 지하라는 것과 지하실 보일러 소리만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곳이다. 햇볕도 짧지만 작은 창문 크기만큼 오후까지 들어온다. 보일러실의 기계음이 오늘따라 더 우렁차게 들린다.

여자는 공터에 버려진 피아노가 들어온 이후 첫 번째로 나의 집을 방문한 손님이다. 나의 세계에 조금씩 문을 열어주는 내가 낯설지만 두렵지는 않다. 마지막 계단으로 내려섰을 때 여자의 의식은 조금은 돌아왔다가 다시 허물어졌다. 몸에 묻은 구토 물을 닦아내고 옷을 벗긴다. 여자의 몸은 움푹한 쇄골과 보잘것없는 젖무덤, 푹 꺼진 아랫배를 가진 어린 새끼 송아지의 몸이다. 여자의 숨결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불안한 들숨과 날숨을 쉰다. 집안의 공기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하고 있다. 여자를 위해 따뜻한 요를 깔고 벗은 몸 위로 폭삭한 이불을 덮어 주고는 머리에서 큐빅 핀을 떼어낸다.

여자는 아주 긴 머리채를 가졌다. 깊은 우물과도 같은 여자의 마음에 두레박줄을 내려도 될 정도의 길고도 조금은 거친 머릿결이다. 이제야 할 일을 끝냈다는 듯이 만족한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불안은 나를 둥글게 말아 누울 공간으로 이동하게 한다. 나의 공간은 한 사람만 누울 수 있는 높고 좁은 공간이다.


내 삶의 계류장.

거대한 공룡의 화석처럼 나의 침실은 방 안 중앙에 뼈로 이루어진 곳이다. 튼실한 황소 한 마리를 사바끼한 뒤 굳센 소나무 같은 뼈를 삶아 살과 기름을 완전히 제거하고 끓인 아교로 뼈와 뼈 사이를 연결하여 하나의 형상을 완성했다. 그 모습은 살아있는 황소의 표본이다. 황소의 배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담요 위에 눕는다. 이제야 굳은 몸은 카스텔라의 촉감처럼 나직하게 가라앉는다.

어디선가 피아노의 음이 들려온다. 부드러운 리듬이 의식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밝은 달빛 속에서 벗은 몸의 실루엣을 만들면서 여자가 피아노를 친다. 꿈결인가? 내리누르는 묵직한 어깨와 오른손의 통증이 여자가 피아노를 친다는 사실이 현실로 느껴진다. 푸른 달빛을 거느리고 여자가 다가온다. 내 몸 위로 힘을 싣는 것은 살을 걷어내고 뼈만 남은 아주 가벼운 몸이다.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어린 새끼들이 어미의 젖을 찾아 고개를 디밀듯이 겨드랑이로 목 밑으로 거침없이 파고든다.

“추워요. 너무 추워요.”

여자는 아주 많이 배가 고픈 듯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내 젖꼭지를 거칠게 빨아들인다. 거절할 수 없는 힘처럼 나의 손은 서서히 여자의 몸을 스친다. 지친 삶에 눅진하게 붙어있는 아픔을 서로의 따뜻한 체온으로 걷어낸다. 멍에처럼 짓누르던 슬픔과 외로움의 응어리를 얇게 저며 단단한 쇠고리에 주렁주렁 걸어둔다. 한 줄기 바람은 살들의 아우성을 아주 멀리 실어 가고 환한 달빛은 지친 영혼들을 따뜻하게 데워 줄 것이다. 거대한 황소의 돔은 이제야 완벽한 골격을 갖추고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윙윙거리며 우는 기계음 속으로 나를 부르는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어댄다.




■ 박영희씨 당선소감

즐거움 주는 '꾼'이 되고 싶어

나는 식육점 주인이 되고 싶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꾼이 되고 싶었다. 시장 한복판이나 재래시장 한쪽에 자리 잡은 식육점이면 더욱 좋겠다. 쇠막대에는 연붉은 고기들이 걸려 있고 파리들이 부푼 살덩어리에 오체투지하는 식육점에서 한 마리의 돼지를, 내 키보다 큰 황소도 가뿐히 해체해 버리는 날 센 칼날을 쥔 그런 꾼 말이다.

사는 게 참 그렇더라고, 푸념이라도 하고 싶은 날이면 내 발걸음은 언제나 식육점을 향한다. 좁은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는 근심 걱정도, 골수에 박힐 것 같은 절망도, 매번 짧은 사랑으로 끝낸 삶의 희망도 신명나게 한 판의 칼솜씨로 가뿐하게 해체해 버릴 수 있었다.

상상은 꿈으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꾼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내 어설픈 소설쓰기가 마뜩지 않다. 바람이 있다면 어차피 꾼이 된 김에 누군가에게도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꾼이 되고 싶다. 부디 날 센 칼날이 녹슬지 않도록, 부지런해지도록 기도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되었다.

당선 통지를 받고 나니 갑자기 용기가 충만해진다. 부끄러움이 스며들기 전에 고마운 분들께 이 기회에 안부를 전하고 싶다.

홀로 되신 두 분 어머님과 형제, 자매들에게도 조금의 위안과 기쁨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끝내주게 나를 잘 봐 주는 가족들에게도 계속 끝내주게 잘 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명행 선생님, 박태일 교수님께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매콤한 아귀찜 같이 먹고픈 벗들과 소행성 456호에서 온 나의 어린 제자들···고맙다. 소설 쓰기에 힘이 되어준 문창동지 여러분들에게도 뜨거운 사랑을 보내고 싶다.

많이 서툰 채 볼만 퉁퉁 부운 나를 발견해준 경남신문과 두 분 심사위원님들께도 이 은혜 잊지 않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박영희 △1965년 경주 출생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現 외국어 학원 경영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삶을 탐문하는 진지함 묻어나



선자(選者)들에게 넘겨진 50여 편의 소설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였다. 달라지고 있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탓이다. 기본 플롯이 되는 가족소설은 물론이고 소외된 여성과 노인, 성적 소수자 등의 문제를 다룬 소설도 다수였다.

그 무엇보다 서술 능력이 중요하다는 관점을 견지하고서 검토한 결과 최종 남은 작품들은 ‘틈’, ‘자수정’, ‘사바끼’ 세 편이었다. ‘틈’은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둔 여성의 일상을 미세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일상이 지니는 무게를 드러내려 한 점은 좋았으나 서술의 긴장도가 떨어지는 것이 흠결이 되었다. 이에 반해 ‘자수정’은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사진작가의 딜레마를 통하여 삶의 진실이 어디에 있는가를 곡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보이는 익숙한 서사문법이 우리를 주저하게 하였다. 일본식 용어를 사용하거나 서술 과정에서 일정한 비약이 보이는 등 논란거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사바끼’를 주목하게 되었다. 이는 이 소설이 지니는 제재의 특이성만이 아니다. 다소 거친 듯하나 삶의 기저를 탐문하는 진지함이 전편에 묻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사바끼’는 소와 돼지고기의 살을 가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진수를 헤집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선의 뒤편에 서 있는 작가의 번득이는 통찰의 눈빛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보다 안정적이고 능란한 ‘자수정’을 택하지 않고 신인다운 패기가 읽히는 ‘사바끼’를 당선작으로 뽑기로 하였다. 서술 능력에서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예견한 것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춘복(소설가), 구모룡(문학평론가)


추천1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