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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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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백지영
“아가씬 어디가 아파서 왔어?”
환자복으로 막 갈아입고 났을 때였다.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돌아보니 한눈에도 병색이 짙어 보이는 퀭한 눈이 내 몸을 훑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얼굴에 노리끼리한 눈이 아무래도 황달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환갑이 조금 지났을까. 마치 만삭의 임산부처럼 그녀는 남산만한 배를 환자복 속에 힘겹게 감추고 있었다.
순간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에티오피아 난민이 떠올랐다. 앙상한 뼈에 배만 볼록한 몸. 파리가 득실거리는 음식을 손으로 먹던 허연 눈의 아이들. 저 볼록한 배엔 어쩌면 입으로 들어간 파리가 득실거리는 건 아닐까. 그때 머릿속을 맴돌던 각종 애벌레의 환상이 떠오르며 뱃속이 요동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할 수도 없이 나는 그만 침대에 울컥 토사물을 쏟고 말았다.
“이런, 어디가 많이 아픈 모양이네….”
병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지고 있었다.
“미친년아! 그러게 왜 수술은 한다고 해서 생병을 앓고 지랄이야!”
뒤늦게 병실로 들어선 엄마는 다짜고짜 버럭 욕부터 해댔다. 덩치에 맞지 않게 비위가 약한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엄마였다. 엄마의 서슬에 사람들은 일제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종합병원이라는 데가 이런 곳일 줄이야. 하긴 웬만해선 병원 올 일 없는 내가 종합병원의 생리를 알았을 리 만무다. 그래도 다리가 삐거나 무릎에 무리가 갔을 때 다니던 의원에선 같은 종류의 환자들끼리 한 병실을 쓰게 했었다. 하지만 이 큰 병원에 나 하나 들어갈 곳이 없어 이렇게 중환자들만 모여 있는 병실에 들여보내다니. 임신도 아닌데 배가 남산만한 사람이 없질 않나, 콧속에 호수를 박고 있는 사람이 없질 않나. 어떤 병상에선 환자의 배에 구멍을 뚫고 오줌까지 받아내고 있었다.
“아주 송장들만 모아놨구나. 여기서 있다간 멀쩡한 사람도 죽어나가겠다.”
입원수속을 마친 엄마는 안 되겠다며 다른 병실을 알아보기 위해 나갔다. 하지만 돌아온 엄마는 잔뜩 짜증이 묻은 얼굴이었다.
나는 결국 간호사가 놔주는 주사를 맞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주사를 맞고 나니 속이 가라앉고 몰려들던 몸살기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
“아가씨는 어디가 아파서 그래? 보기엔 아주 건강해 보이는구만.”
돌아보니 아까 그 부인이 다시 퀭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여전히 남산만한 배를 안고서였다.
“어디가 아픈 거면 열불이나 안 나지요. 이 미친년이 글쎄 얼굴을 고친다내요.”
엄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병실에 울렸다. 순간 흩어졌던 시선들이 다시 내 쪽으로 몰리는 걸 느꼈다.
“아니 어딜 수술을 한다고 그래?”
그녀의 표정은 무척 놀란 것 같았다. 아니 한심한 표정인지도 몰랐다.
““턱이요. 저게 복턱인데 그것도 모르고 손을 댄다니. 참….”
엄마는 거푸 손부채질을 해댔다. 병실의 모든 눈동자들은 이번엔 내 턱으로 모아졌다.
“아니 턱이 어때서 수술을….”
그녀의 노리끼리한 눈이 내 턱에 닿았다. 그리곤 곧 알만하다는 표정이 되고 있었다.
“옛날부터 주걱턱이 잘 사는 법인데 뭘 그러니….”
아이들의 놀림에 씩씩대며 가게 문을 연 내게 이쁜이 아줌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언젠가의 대통령 부인도 주걱턱이지 않았냐며 그녀는 잔뜩 골이 나 들어 온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하지만 내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 턱은 단지 주걱턱으로 부르기엔 너무나 약한 느낌이었다. 삐죽이 나온 아래턱이 약간 앞으로 휘어있어 영락없이 끓는 곰탕을 풀 때 사용하는 국자모양이었다. 엄마도 아버지도 내가 알기론 일가친척 어느 하나 이런 턱을 가진 사람이 없건만 어떻게 된 일인지 나의 턱만 이 모양으로 생겨먹은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어이없는 건 턱이 아니라 이름이었다. 배국자. 어쩌면 허구 많은 이름 중에 국자라는 이름을 지었을까.
“그래도 야 그게 허투루 지은 이름이 아니다. 돈 주고 유명한 작명가한테 지은 이름이다.”
내가 따지고 들자 엄마는 오히려 그렇게 큰소리를 쳤다. 아니 이름까지라면 백번 양보해 그냥 넘겨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이름은 돈 주고 지었다고 하고 얼굴이야 그렇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할 수도. 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다름 아닌 내가 곰탕집 딸이라는 사실이었다.
“곰탕집 국자. 배국자.”
아이들은 음까지 넣어 노래를 부르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네 턱은 복턱이다. 우리가 이만큼 밥 먹고 사는 건 네 턱 때문이야.”
밖에 나가 내가 놀림을 받든 말든 엄마는 늘 내 턱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뿐만 아니었다. 모처럼 방안에 들어앉아 숙제라도 좀 할라치면 엄마는 어김없이 나를 불러다 손님 앞에 세우곤 했다.
“우리 복덩이에요.”
손님들은 내 얼굴을 여기저기 훑어보았다. 그리곤 거 참 희한하네,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손님들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박장대소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 손님들은 구경 한번 잘 했다는 듯 지갑에서 동전이나 지폐를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꼭 한마디씩 덧붙이는 것이다.
“이 곰탕집은 딸한테 물려주면 되겠네. 딸이 더 잘할 걸 아마….”
머리 위에서 번개가 친 느낌이었다. 곰탕집을 물려받다니. 엄마처럼 평생 곰탕 끓는 솥 곁에서 늙어가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그건 내 인생에 벌어질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 생긴 턱에 돈 주고 지었다는 이름까지. 이 척척 들어맞는 삼박자에 자꾸 드는 불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너 혹시 배구부에 들어오지 않을래?”
어느 날 체육선생님이 내 몸을 훑어보며 말했다.
나는 키가 꽤 큰 편이었다. 키도 크고 발도 크고 손도 크고. 모든 게 아버지를 닮은 탓이라고 했다. 계집애가 발이 크면 팔자가 사나운 법인데. 엄마는 한숨을 섞어 말하곤 했다. 하지만 뭐든지 큰 덕분에 나는 단박에 체육선생님의 눈에 들었다.
그건 하늘이 준 기회였다. 배구를 하게 되면 학교에 남아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방과 후에 학교에 남는 게 많이 힘들 거라며 마음 좋은 선생님은 벌써부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안타깝지 않았다. 만약 학교에서 연습을 하고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와 이쁜이 아줌마 둘만 있는 가게는 늘 손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가 끝나면 곰탕집으로 달려가야 했다. 나이에 비해 덩치가 큰 덕에 나는 웬만한 점원 몫의 일을 거뜬히 해냈다. 이쁜이 아줌마는 그런 날 언제나 대견해 했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엄마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한동안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엄명이라는 말에 예상대로 백기를 들고 배구부에 드는 것을 허락했다.
나는 배구가 좋았다. 새로 맞춘 유니폼도 좋았고 공이 흰색인 것도 좋았다. 나는 중앙 센터에 포지션이 주어졌다. 웬만한 6학년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상대편 공격수가 때린 공을 높이 점프해 블로킹을 할 때면 온몸에 날아갈 것 같은 희열이 느껴지곤 했다. 나는 내가 때린 공이 상대편 코트에 통렬히 꽂히는 기쁨에 빠져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내 점프 높이의 짜릿함도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물론 힘이 들 때도 있었다. 특히 공을 얼굴에 맞는 날엔 코피를 쏟거나 얼굴이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힘든 건 잠시 뿐이었다. 나는 공이 얼굴에 맞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만약 공이 날아와 튀어나온 턱에 맞아 납작턱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몇 번인가 은근슬쩍 날아오는 공에 얼굴을 대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공은 턱이 아닌 별로 높지도 않은 코를 때리며 줄줄 코피를 쏟게 만들고 말 뿐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나는 역시 중앙센터였다. 그렇게 크게 느껴지던 키가 어느 순간 별로 커 보이지 않는 것은 문제였다. 하지만 그래도 소년체전에 나가 동메달까지 딴 팀의 센터 공격수를 중학교라고 홀대할 리 없었다.
사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른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랐다. 가장 작은 세터마저도 팀의 센터 공격수인 나의 키에 육박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그 지겨운 곰탕을 질리도록 먹어댔지만 자라지 않는 키를 어쩌진 못했다. 키가 작은 중앙공격수는 상대편에게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었다. 내가 친 공은 더 이상 코트에 통렬히 꽂히지 않았다. 더 이상 블로킹도 할 수 없었다. 상대편 공격수가 친 공은 번번이 내 블로킹을 통과해 우리 팀의 코트를 강타했다. 그런 내게 더 이상 코트에 나갈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후보로 전락한 난 벤치에 앉아 박수를 치고 파이팅을 외치며 다른 선수들을 독려할 뿐이었다.
“혹시 세터를 해 볼 생각은 없니?”
내게 세터를 제안한 사람은 새로 부임한 코치선생님이었다. 실업팀에서도 뛰었다는 그는 발목 부상으로 화려하지 않은 선수생활을 접고 성적이 나쁜 중학교의 코치로 부임한 신출내기였다.
세터로의 전환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주전은 아니었지만 주전세터가 컨디션이 안 좋거나 작전상 코트 밖으로 나와 있을 때면 나는 잠깐이지만 코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팀에서 내 포지션이 있다는 게 기뻤다. 아무리 후보지만 일단 코트에 나가면 내 포지션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나만의 고유영역이었다.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도 다행히 세터를 필요로 하는 팀이 있어 어렵지 않게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주전은 아니었다.
실업팀에 스카우트 될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웬일인지 그해 실업팀이 두 개나 창단해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은 팀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물론 거기서도 주전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포지션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배구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운도 거기까지였다. 능력 없는 선수를 팀에서는 더 두고 보지 않았다. 내 나이 스물다섯. 다른 사람들은 막 인생을 시작할 나이에 나는 내 모든 걸 바쳤던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정든 코트를 떠나야 했다.
“선수였어요? 그럼 관중들 앞에서도 많이 서봤을 테고.….”
코트에 설수 없는 나는 다른 일을 찾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빈둥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대학도 나오지 않고 딱히 가진 기술도 없었다. 그런 내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 봤지만 늘 서류전형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력서를 넣은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서류전형을 통과 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것이다. 영업직을 뽑는 스포츠용품 회사였는데 실적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보수가 꽤 짭짤했다.
중년의 면접관은 내 선수이력을 높이 사는 듯했다. 하긴 대중 앞에서 떨지 않는 게 영업의 첫째 조건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거라면 자신 있었다. 물론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하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건 사정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게다가 나는 누구보다 스포츠용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아까까지 거침없던 면접관이 말끝을 흐렸다. 동시에 그의 시선이 내 턱에 닿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아까까지 더 없이 벅차게 부풀어 오르던 기대가 한순간 무너졌다. 그는 시선을 내 턱에 고정 시켰다. 그리고 얼마간 찬찬히 관찰하는 것 같았다. 너무 노골적인 시선이어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곧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는 시선과 표정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괴로웠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비로소 의식했을까. 그가 시선을 황급히 거뒀다.
“돌아 가 계세요. 결과는 저희 쪽에서 연락하겠습니다.”
결국 나는 서류통과에 만족해야 했다. 다른 몇 군데에서도 면접을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이, 배국자!”
공을 정리하던 그가 나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코트를 떠난 후에도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코트를 찾았다. 내가 세터를 시작한 체육관. 나를 보면 그는 늘 어이, 배국자! 하고 인사했다. 그때만큼은 내 이름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막 연습을 마친 그는 언제나처럼 라면을 끓여주었다.
“어이 세터, 오늘은 뭐가 또 문제냐?”
그릇에 라면을 퍼주며 그가 말했다. 그의 웃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늘 턱이 문제지요 뭐.”
나는 그릇에 코를 박은 채 라면을 먹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턱이 어떻다고. 나는 네 턱이 좋아.”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그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내게 새 포지션을 준 사람. 처음 그를 봤을 때 그도 지금의 나처럼 새 포지션을 찾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중학교 코치를 맡았겠지. 그때 그는 어딘가 반항기가 있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도 나이를 먹었다. 이마에 패이기 시작한 주름이 오늘따라 서글펐다. 그는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볼까. 왜 내 턱을 좋아한다고 말할까. 다른 사람들처럼 조롱하지. 그러면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언젠가는. 그게 오늘이어도 좋지 않을까.
“저 선생님….”
그때다. 라면가닥을 젓가락으로 건져 올리던 그가 움찔했다.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진동을 한 모양이었다.
“알았어, 지금 갈게.”
그는 서둘러 자리를 일어났다. 그리곤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늘 일어나는 일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나는 그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간질을 앓고 있는 아내가 또 발작을 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잘 버틴다 싶었어. 내가….”
엄마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이쁜이 아줌마가 또 말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줌마의 바람은 늘 예고도 없이 불어왔다. 아무 일 없이 손님을 받다가도 바람이 불면 홀연히 사라져 몇 달 동안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바람의 종류도 다양했다. 어떤 때는 손님 중 한명이 첫사랑을 닮았다는 이유에서였고, 어떤 때는 갑자기 진해의 벚꽃을 보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떤 때는 설악산에 내린 첫눈을 보고 싶은 것이 이유였고, 또 어떤 땐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보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줌마의 바람은 계절에 상관없이 불어왔다. 아줌마야 바람이 들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행동하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빈자리를 혼자 지켜야 하는 엄마에겐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었다.
“이년 오기만 해 봐, 내가 다시 또 받아주면 사람도 아니다.”
엄마는 같은 말을 잊어버리지도 않고 번번이 되뇌었다. 하지만 엄마가 말대로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람이 잠잠해질 때면 아줌마는 은근슬쩍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언제 나갔었냐는 듯 손님을 받았다. 하지만 엄마는 잠시 흘겨볼 뿐 짧은 잔소리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이 때 아줌마가 바람이 났을까. 이번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상가가 공사에 들어가는 바람에 점심때면 공사장의 인부들로 가게 안은 터질듯이 북적거렸다.
늘어진 어깨를 겨우 추스르며 가게 문을 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엄마는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나의 일에 바람이 든 이쁜이 아줌마까지. 엄마는 그렇게 쩔쩔매다가 밤이 되면 또 끙끙 앓아누울 것이다.
“이리 줘!”
난 엄마가 든 쟁반을 낚아채듯 받아들었다. 나는 엄마가 아픈 게 싫었다. 그건 걱정이 되는 것과는 달랐다. 엄마 특유의 그 앓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나곤 했다.
“어서 오세요?”
문이 열리자 엄마의 목소리가 가게에 울려 퍼졌다. 아까까지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던 엄마의 표정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
“아버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 나의 눈에 유령처럼 서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얼마 만일까. 연락도 없이 들이닥친 아버지는 그대로 가라앉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얗게 샌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 오랫동안 빨지 않았는지 입고 있는 점퍼엔 오래된 얼룩이 묻어 있었다.
“누가 왔다고?”
주방에 있던 엄마가 황급히 달려 나왔다. 손에는 머리가 큰 국자를 든 채였다.
“아이고 연락도 없이 이게 웬 일이오, 들어갑시다. 들어가요!”
엄마는 아버지의 힘없이 늘어뜨린 손을 잡아끌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문 앞에 구부정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 큰 키가 반쯤은 땅으로 꺼져버린 듯 왜소해 보였다. 아버지는 마치 착한 아이처럼 엄마의 손에 이끌려 안채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가게로 나온 엄마는 전에 없이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엄마는 우선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담가 논 깍두기도 소복이 접시에 담았다. 솥에선 언제나처럼 뽀얗게 곰탕이 끓고 있었다. 엄마는 국자를 솥에 넣어 몇 번인가 휘저었다. 국자의 움직임에 따라 바닥에 있던 하얀 뼈가 보였다간 다시 가라앉았다. 엄마는 국자로 진하게 우러난 곰탕을 옹기그릇에 한가득 담았다. 평생을 해 온 일이건만 국자를 든 엄마의 손은 어쩐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힘이 들면 저 지경이 됐을까. 그럼 병수발이 쉬운 일이 아니지….”
상을 차리는 동안 엄마는 그렇게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몇 달 만에 들이닥친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힘없이 쓰러질 것 같았다. 환갑이 넘은 아버지에게 중풍을 맞은 환자의 병수발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버지의 수척한 모습을 봤을 때 나는 그만 눈물이 날 뻔 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울지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자청한 일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나타났을 때는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아버지는 그렇게 들이닥쳤다고 했다. 뭐 저렇게 가여워 보이는 사람이 있나 싶게. 그때 엄마는 막 첫사랑에 실패한 후였다. 집을 떠났던 엄마는 만신창이가 돼 외할머니가 하던 식당으로 돌아왔다. 나보다 더 가여운 사람이 저기 있구나. 엄마는 아버지가 오면 어떤 손님보다도 더 극진히 대접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아버지의 사랑은 시작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결혼 한 몸이었다. 아버지는 전처와 사이가 좋지 않아 헤어질 결심으로 집을 떠나 있는 중이었다. 엄마는 곧 이혼을 하겠다는 말만 믿고 아버지와 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혼을 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그쪽 아들의 장래 때문에 본부인이 이혼만은 할 수 없다며 목을 매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졸지에 남의 가정을 파탄 내버린 파렴치한이 됐다. 그래도 엄마는 아버지와 헤어지지 않았다. 헤어지기는커녕 아버지와 엄마는 정말 사랑한 모양이었다. 어린 내 눈에도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애틋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전부인의 곁으로 돌아갔다. 전부인이 중풍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평생 아버지 노릇도 못했는데 아들한테 짐을 지을 순 없다며 아버지는 병수발을 자청했다. 엄마 또한 죄책감에 아버지를 보내고 말았다. 그것이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이었다. 아버지는 일 년에 서너 번씩 그렇게 지친 모습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곤 곧 다시 떠났다. 아버지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는 항상 아버지의 곰탕을 따로 끓여 준비했다.
엄마는 모든 게 운명이라고 했다. 엄마가 아버지를 만난 것도, 엄마가 평생 곰탕을 끓이며 사는 것도. 하다못해 이쁜이 아줌마의 시도 때도 없는 바람까지도 엄마에겐 모두 운명이었다.
하지만 난 운명을 바꾸고 싶었다. 곰탕집이라니. 아무리 태어날 때부터 국자턱의 계시를 받았다 해도 나는 물려받고 싶지 않았다. 평생을 죄책감에 산 엄마의 눈물로 끓인 곰탕을 나는 더 이상 끓이고 싶지 않았다. 내 턱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 그 부질없는 사랑에게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다행히 내 수중엔 은퇴하며 받은 얼마간의 퇴직금이 있었다. 이것으로 운명을 바꾸리라. 나는 다짐했다.
텔레비전을 보던 환자들은 뉴스가 끝나자마자 하나 둘씩 잠에 빠져들었다. 낮에는 병든 몸을 핑계로 그들은 가족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하지만 불이 꺼진 병실은 고요할 뿐이었다. 그 고요를 깨고 침상 하나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맞은편의 빈 병상에 간호사는 저녁 늦게 새 시트를 깔아 놓았었다. 그 병상의 주인이 그제야 당도한 모양이었다.
조용한 병실이 갑자기 낮은 소음으로 술렁거렸다. 잠은 자지 않았지만 나는 일어나 소음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그녀가 심각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병실 안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앓는 소리. 그건 마치 누군가가 교묘히 고문을 당하는 듯한 소리였다.
잠은 오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갈증은 심해졌다.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물 한 모금도 마실 수가 없었다. 금식이라 쓰인 카드를 간호사는 내 침대 맡에 붙여 놓았다.
그놈의 앓는 소리는 단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계속 되었다. 벌써 네 시간째다. 나는 어둠속에서도 시간을 가늠할 수 있었다. 똑똑 떨어져 흘러드는 수액. 정확히 세 시간이 되자 간호사는 새로운 수액으로 갈아 주었다.
잠시 눈을 들어 맞은편 침상을 건너다보았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에 병상 곁에 있는 중년여자가 양각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그녀는 어둠속에서 두 손을 모아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 앓는 소리만 아니라면 더 없이 경건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음으로 여자의 기도는 섬뜩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더러 가지 말라고 할 걸. 아침에 환자의 증세를 혼자 보기가 벌써부터 겁이 났다.
엄마는 아침 일찍 오겠다고 했다. 사실 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멀쩡한 몸에 엄마까지 병실에서 새우잠을 자야할 필요도 없긴 했다. 더구나 엄마가 아침 일찍 와주겠다고 한 건 너무나 다행이었다. 내가 처음 수술을 받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병원에 발걸음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까짓 취직이야 못하면 말지. 얼굴엔 함부로 손대는 거 아니다. 관상이 팔자를 가늠하는데. 게다가 그 복턱을 이만큼 밥 먹고 사는 게 다 그 턱 때문인데….”
엄마는 아직도 내 턱을 복턱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말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순간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래도 정말 엄마가 내게 곰탕집을 물려주고 싶어 할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엄마는 단 한 번도 그런 의사를 내비친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지레 겁먹고 밖으로 나돌 계획을 세웠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긴 누가 자신의 딸을 평생 곰탕이나 끓여야 하는 팔자를 타고났다고 생각할까. 하지만 엄마의 그 말은 곰탕집을 내 운명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엄마에게 속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 견딜 수 없었다. 그동안 코트에서 땀을 흘리는 나를 보며 엄마는 언젠가 돌아올 거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손을 떠난 공이 상대편 코트에 꽂히던 순간의 쾌감을 생각했다. 상대편에서 때린 회심의 강타가 내 손에 막혀 네트를 넘지도 못하고 그대로 떨어지던 순간의 짜릿함을. 그 코트 안에서라면 나는 코피를 쏟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리가 겹질리고 무릎이 터질듯 부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팀에서 쫓겨났을 때 엄마는 얼마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까. 나는 갑자기 엄마를 가장 아프게 하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술을 하겠다는 거야.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곰탕을 끓이면서 늙어가는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아버지 호적에도 못 올라본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목구멍까지 치미는 무엇인가를 내뱉듯 나는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느낀 배신감만큼 되갚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입으로 내뱉으면 시원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어쩐지 더 가슴이 답답했다. 자꾸만 서럽고 억울했다. 나는 그만 목 놓아 엉엉 울고 말았다.
“미친년, 울 일도 쌨다.”
엄마는 국자로 곰탕에 뜬 기름을 걷어 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긴 그런 말에 흔들릴 엄마가 아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야. 이쁜이 아줌마는 늘 그렇게 중얼거렸다.
국자턱을 손보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우선 얼마간의 치과 교정치료가 선행돼야 했다. 아래 위가 엇갈려 굳어버린 턱을 바로 하기 위해서였다. 치료 과정이 복잡할수록 비용도 늘어났다. 수술을 한 다음에도 얼마 동안은 교정치료가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퇴직금 정도면 쓰고도 남을 줄 알았는데. 벌써 비용은 퇴직금을 훌쩍 초과해 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내 방에 슬며시 들어왔다.
“그놈의 수술은 꼭 해야 되겠냐? 내 보기엔 괜찮은데.”
평소답지 않게 엄마의 목소리는 나긋했다. 왠지 눈치까지 슬금 거리며 보는 것 같았다.
“취직도 안 되는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내 말투는 찌르듯 터져 나왔다. 순간 엄마의 표정엔 잠시 어두운 그림자가 비쳐들었다. 하지만 곧 사라졌다. 그리곤 엄마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품어져 나왔다.
“저기 이거….”
말을 마친 엄마가 아까가지도 품에 감춰뒀던 무언가를 꺼냈다. 나는 엄마의 품에서 따뜻하게 온기를 품고 있었을 그것을 바라보았다. 통장이었다. 방바닥에 놓인 그것엔 어미닭이 병아리들을 이끌고 총총히 걸어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걸로 수술 해. 니 돈은 그냥 놔 둬. 그리고 시집갈 때 써라.”
말을 마친 엄마는 서둘러 방문을 닫고 나갔다. 엄마가 나간 후 나는 통장을 열어 기입된 저축액을 확인했다. 운명 어쩌고 하며 반대하던 엄마가 거금을 선뜻 내놓다니.
엄마는 새로 앉힌 곰탕이 끓는 걸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곁에 앉아 기름을 걷어 내야 했다. 몇 번인가 노랗게 떠오른 기름을 걷어 내야 담백한 진국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불이라도 좀 켜고 하지. 불도 켜지 않은 채 엄마는 국자로 동동 노랗게 올라오는 기름을 걷어 내고 또 걷어 냈다.
스위치를 올리려다 말고 나는 어두운 주방을 그대로 빠져 나왔다. 엄마가 울고 있었다. 국자로 기름을 걷어 내고 있는 엄마는 연방 한손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엄마. 그런 엄마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며 수증기처럼 주방을 가득 메웠다. 그리곤 곰탕 끓는 소리 속에 자꾸만 섞이는 것이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리곤 엄마의 더해만 가는 울음소리를 잠결이라 여기며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눈을 뜨니 새로운 수액이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 언제 잠이 든 걸까. 그런데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병실을 한번 눈으로 훑고 났을 때였다. 귓속을 때리는 아주 낮은 저음의 목소리. 그건 앞 병상에서 끊임없이 앓는 소리를 내던 주인공의 목소리였다.
“얘, 아가, 내 다리가 없다. 내 다리가 어디 갔니….”
순간 온몸엔 일제히 소름이 끼쳐들었다. 아아, 이건 또 뭘까.
“내 다리가 없잖니. 어디 갔어. 내 다리”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병실엔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햇빛이 비스듬히 비쳐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내 앞의 병상에서 울먹이는 노파를. 그리고 그녀의 뭉툭하게 잘린 다리를.
“이게 뭐야. 니가 이렇게 했냐. 이 나쁜 년아, 니가 뭔데 내 다리를 이렇게 만들어!”
울부짖던 노파가 이번엔 중년여자에게로 달려들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앓는 소리에도 아랑곳없던 다른 환자들도 노파의 절규에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 진정하세요.”
밤새 병상을 지키던 중년여자는 노파의 몸을 붙잡고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그녀는 노파의 작은 몸에 이리저리 휘둘릴 뿐이었다.
“할머니 고정하세요. 며느님이 무슨 죄겠어요.”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엄마는 다짜고짜 상황을 수습하려 들었다. 엄마는 노파의 손아귀에서 흔들리고 있는 여자의 몸을 떼 냈다. 노파의 손에서 벗어난 여자는 그만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머님이 당뇨를 오래 앓으셨어요. 그래서 다리를….”
당뇨를 앓던 노파는 합병증으로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리고 밤새 앓는 소리를 내야 했다. 수술 후 마취가 풀리며 찾아오는 통증 때문이었다.
음식 냄새가 풍기는가 싶더니 병실 안으로 하얀 모자와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들어왔다. 손에는 몇 개의 식판을 겹쳐 들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이맘때쯤 병실이 술렁거렸을 테지만 어쩐지 병실은 쥐 죽은 듯 고요할 뿐이었다.
노파는 잠들어 있었다. 간호사가 진정제를 놓고 간 후였다. 노파가 잠이 들자 병실은 고요해졌다. 어느 누구도 노파의 잠을 방해하려 들지 않았다.
다른 병상의 환자들이 아침식사를 마칠 때쯤 병실로 이동식 침대가 들어왔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난 이동식 침대에 몸을 눕혔다.
“아가씨 잘 갔다 와.”
들어올 때부터 관심을 보이던 복수가 찬 부인이 인사했다. 나는 한번 씽긋 웃어주었다. 잘 다녀올게요. 인사를 대신한 건 엄마였다.
바퀴가 구르며 침대가 병실 문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잠든 노파의 얼굴이 역시 미끄러지며 스쳤다. 잠들기 전 노파는 다시 한 번 며느리의 멱살을 낚아챘었다.
“이년아! 이러니 니 아버님이 안 오시는 게다. 이 꼴 보기 싫어 영 안 오실 게야. 이 꼴로 니 아버지를 어떻게 뵙냐….”
“어머님두. 아버님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며느리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노파는 아이처럼 엉엉 울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울음에선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마치 사랑을 잃은 소녀의 슬픔 같았다. 남편의 죽음에 아랑곳없이 잘린 다리 때문에 사랑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노파의 천진스러운 착각.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그만 픽 실소까지 나려했다.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이 레일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수술실 앞에 와 있었다. 수술실 앞에는 나 말고 두 개의 침상이 더 대기하고 있었다. 두 침상의 환자들 모두 생명과 관계된 대수술을 받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서도 날라리 환자는 나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불거져 나오는 생각이 있었다. 정말 내가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턱 때문일까.
수술실의 문이 열리며 다시 침대가 움직였다. 나는 엄마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엄마도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모습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시야는 온통 연두빛 천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저 목소리만 아련히 들릴 뿐이었다. 이러다가 잠이 들겠지. 누군가가 마취를 하면 나는 곧 잠이 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취 전인데도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리고 갑자기 뭔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려 애썼다.
나는 코트를 생각했다. 내 포지션이 있던 코트. 그러고 보니 나는 잠이 들 때도 늘 코트를 꿈꾸기를 바랐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쩐지 내 꿈의 무대는 거의가 곰탕집이었다. 홀에는 이쁜이 아줌마가 손님을 맞고 주방엔 엄마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도 나름대로의 포지션이 있었다. 엄마의 포지션. 엄마도 그 포지션에 만족 했을까. 단지 후보지만 행복했던 코트에서의 나처럼.
나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이 꿈에서 깨면 나는 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갑자기 그가 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꼭 한 번만.
심사평
예심에서 올라온 10편의 작품 중에서 특히 `그림자 놀이' `무정' `당신의 엄지' `곰탕' `연변 색시' 등을 관심있게 읽었다.
우선 박물관에서 마련한 `임종체험’ 프로그램 일을 하는 주인공의 과거 어두운 기억과 일상을 교차시킨 `그림자 이야기'는, `삶은 죽음의 그림자 놀이’라는 독특한 해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죽음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 소재가 독특하지만, 과거의 기억 속에 사로잡혀 생활 이전의 자의식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인물의 이야기인데다, 이야기 속의 상징적 장치가 충분히 형상화되어있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도시의 이면을 떠도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다룬 `당신의 엄지'는, 서사를 해체시키고 대신 인물들의 자의식과 심리의 움직임을 원고지 가득 채우고 있는 작가의 언어와 스타일은 결코 녹녹하지 않은 작품이다. 도시를 떠도는 소외되고 고독한 인물의 자의식의 세계를 독특한 스타일로 구축하고자 한 작가의 실험정신은 높이 평가할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난해하다는 문제점이 남았다.
한편 한 가족이 해체되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살아남은 소년의 시점에서 서술한 `무정'은 그 발상에서 참신함이 있으나, 작품이 스토리 위주로 흘렀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한편 연변 처녀와의 국제결혼이 실패하여 홀로 된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시골 노파의, 어느 장날 하루 동안의 나들이 이야기를 다룬 `연변 색시'는 현재 농촌에서 행해지는 국제결혼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리얼리즘의 힘을 재확인하게 해주지만, 이야기가 너무 장황하게 늘어져 있다는 점이 흠이었다.
이에 비하면 `곰탕'은 이야기에 충실한 전통적 문법에 가까운 소설이지만 단숨에 읽히는 작품이다. 여성의 숙명과 그 극복, 취직, 성형 문제 등의 복합적인 의미를 짧은 이야기 속에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이 갔다. 어머니와 다른 삶을 살기위해 어머니의 만류를 물리치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주인공의 행동에서 진취성과 패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다 읽고나면 뭔가 가볍게 느껴진다는 것이 이 작품의 문제점이었다. 이 아쉬움은 반전이 없는 이야기 구조의 단순함에서 기인하지만, 작가는 모녀이야기를 서로 포개고, 삶과 경기 모두에서의 `포지션', 곰탕집과 경기장 등의 복합적 장치를 통해 이 단순함을 어느정도 완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오랜 논의를 거쳐 `곰탕'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을 축하한다.
전상국·서준섭
당선소감
소설은 제게 시지프스의 돌 같은 것이었습니다. 가지고 있기 버겁지만 내려놓을 수도 없는. 게다가 그것과 함께 올라야 할 언덕은 너무나 아득하게만 보였습니다.
당선소식을 들었을 때 드디어 ‘언덕 하나를 올랐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흐르는 땀을 닦고 목을 축이고 나니 감사할 얼굴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철없는 막내딸을 묵묵히 지켜봐주신 부모님. 언니 오빠 내외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조카들. 당신들이 있기에 제가 있다는 걸 압니다. 그동안 머리를 채워주시고 가슴을 데워주신 세종대학교 교수님들과 친구 순정, 상미, 희경, 효진 미국에 있는 희순 언니에게도 감사의 말 전하고 싶습니다.
소설이라는 버거운 돌을 들고 힘들어 할 때 따뜻하게 용기주신 한수산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계셔 언덕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 앞엔 더 높고 험한 언덕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험하고 멀어도 소설이란 돌을 내려놓진 않겠습니다. 당신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약력
1973년 서울生
세종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세종대 박사과정(국어국문학과) 재학중.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620-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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