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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광주일보 신춘문에 당선작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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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497회 작성일 08-02-16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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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극장



오윤주



마술극장의 간판이 빛나고 있다.

검은 바탕에 반짝이는 붉은 글씨를 박아 넣은 화려한 간판이다.

검은 간판의 테두리에 붉은 꼬마전등들이 빙 둘러서서 1초에 한 번씩 꺼졌다가, 다시 켜진다.

지나치게 화려해서 도리어 잘 보이지 않는다.

이웃한 모텔과 단란주점의 간판들과 꽤 잘 어울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뒷골목 유흥가에 엉뚱하게 섞인 마술극장은, 고립무원 지경을 피하기 위해 보호색 작전을 펴고 있는 품새다.

간판 아래에 문이 하나 나 있다.

문이라기보다는 벽에 그은 금처럼 보인다.

누군가가 장난스럽게 그려놓은 그림인 듯, 문의 가로와 세로 선들은 약간 비뚤게 서로 뻗어가다가 어찌어찌 겨우 만나 열린 도형 신세를 면하였다.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은 문이다.

그러나 안 열릴 듯 잠잠히 닫힌 문은 슬쩍 문고리를 잡아당기면 손쉽게 입을 벌린다.

굴속 같은 어둠을 향해 뻗어간 지하 계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서 내려가, 마법사 삼촌이 속살거린다.

하지만 저긴 너무 어둡고, 뭔가 무서운 것이 있을 듯해요, 게다가, 이건 좀 지저분하잖아요.

잘 생각해봐, 실은 너도 꽤 끌리면서.

그러면서 삼촌은 그녀의 등을 확 떠민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했던지 옆 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둠 속에서도 정성껏 화장한 여자의 눈매가 확 눈에 들었다.

예뻐 보인다기보다는 그저 시간 꽤나 들었겠다 싶은 공들인 얼굴이었다.

그냥… 윤은 말끝을 흐리며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전 요 앞에 붙은 플래카드 보고 왔어요.

꽤 재미날 거 같죠?”
여자는 윤의 시원치 않은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품새였다.

윤은 일부러 가방 안을 뒤지는 척 하며 여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여자는 잠시 말이 없더니 다시 말을 걸어 왔다.

“정말 맞지 뭐예요.

사는 게 이게 뭔지, 정말 마술이라도 필요하잖아요?”
여자는 혼자서 까르르 웃어댔다.

여자의 얼굴 여기저기 점선처럼 살짝 숨어있던 주름들이 한꺼번에 자글자글 튀어나왔다.

화장으로도 도무지 가려지지 않는 여자의 주름에 윤은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여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윤 역시 플래카드의 문구에 끌려 여기까지 오게 된 셈이었으니까.

서른 셋, 결혼하기엔 마술이 필요한 나이였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기도 전에 삭아 내리는 무덤 속의 새 그릇처럼, 그녀는 소문도 없이 낡아가고 있었다.

아침이면 그새 또 늘어난 자글자글한 주름살과 검게 부어오른 눈밑 살을 바라보는 것은 처연한 일이었다.

세 번째 연애가 깨지고 난 후까지도 윤에게 삶은 만만한 것이었다.

결혼은 윤의 의지로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었고, 윤이 이제껏 결혼하지 않은 것은 다만 윤의 선택에 의한 것일 따름이었다.

그렇기에 서른이 되던 세밑, 윤은 예전만큼 열정에 불타지 않는 세 번째 애인과 미련 없이 헤어졌다.

미지근한 사랑은 죄악이므로, 스스로를 속이는 짓이므로, 윤은 정직하게 감정을 따라갔다.

그것은 쿨한 것이고, 어느 정도는 유행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세상은 윤에게 적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활짝 열리던 문들은 젊은 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소리 없이 하나 둘 닫혀 가는가 싶더니 이제 거의 모든 문이 육중하게 잠겨 있었다.

어쩐지 절박해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 이제 뭘 좀 알겠어? 문지기들은 이를 드러내며 음흉하게 웃어보였다.

결혼하지 않은 서른 중반의 여자는, 세상이 보기에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묵은 책무 같은 모양이었다.

도무지 세상의 문 안에 들어서지 않으려 하는 천방지축 이기적인 물건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 여성의 책무를 저버린 것들, 혹은 주제도 모르고 콧대만 치켜세우고 호가를 높이다가 허방에 빠진 처치곤란들, 쾌락만을 추구하는 동물스러운 물건들.

그들은 세상의 필요에 따라 농락 가능한 팜므 파탈이 되기도 하고, 혹여 그녀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라도 하면 대뜸 누더기 옷 뭉치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녀들은 위험한 짐승이거나 귀찮은 존재였다.

윤의 어머니는 세상의 대변자 노릇을 자청하기로 결심한 듯했다.

어머니는 다양한 스펙의 남자들을 맞선 상대로 들이대며 윤을 다그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윤과 만날 때마다 윤의 등짝을 함부로 후려치며 이 징글징글한 것아, 를 연발하곤 했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대기업의 촉망받는 사원이거나 밝은 전망을 지닌 능력 있는 청년들이었다.

지겹게도 유사한 그들의 이력 속에는 그러나 그들이 꽤나 심한 마초기질의 소유자라거나 종종 술을 마시면 애인을 때리기도 한다거나 하는 좀 더 중요한 사실들은 결코 들어있지 않았다.

스물쯤의 윤이라면 모를까, 서른셋의 윤은 드러나는 것들만을 믿을 만큼 그리 순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 사랑으로 결혼하느니 하는 그야말로 스무 살 어린 처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른셋의 여자가 직업도 집도 없는 문학청년 따위와 결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계절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윤은 정말로 위험해져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뿐인데, 점점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나고 있었다.

윤의 마음에 점점 칼날 몇 개가 돋아갔다.

윤은 맥없이 버스 의자에 기대어 앉아 버스가 흔들리는 대로 따라 흔들리며 덜컹덜컹 실려 가고 있었다.

저녁노을이 늘 그렇지 뭐, 하는 심드렁한 자세로 건물들 사이 하늘에 내려 있었다.

불현듯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당신의 삶에는 마술이 필요합니다.’
윤은 무의식중에 플래카드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때로 세상의 무수한 속된 말들 중에 어떤 한 마디가 내게만 보내는 신의 전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대체로 그것은 착각일 것이다.

내 마음이 순간 가 닿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아무렇게 만드는 거짓들.

우연들은 그렇게 착각 속에서 운명이 되어 누군가의 인생을 뒤흔든다.

‘지금 마술극장으로 오세요.’
윤은 플래카드 아래쪽에 조그맣게 쓰인 전화번호를 얼른 핸드폰에 입력했다.

우연이든 운명이든 뭐라도 좋아, 윤은 중얼거렸다.

이 심드렁한 인생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단 한 순간이라도 뒤흔들 수 있다면.

객석의 불이 꺼졌다.

빛의 둥근 원이 천천히 무대 위를 더듬었다.

뭔가 시작하려나 봐요.

여자는 다시 소곤거렸다.

둥근 빛 속으로 검은 연미복을 입은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어머나! 여자가 낮은 탄성을 내질렀다.

윤의 마음속에도 똑같은 탄성이 스쳐갔다.

기름 바른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긴 중년의 마술사 사내를 기대했었던가.

무대 위의 남자는 생각 외로 단정하고 산뜻한 인상이었다.

서른을 갓 넘겼을까.

몇 년 전에 한창 유행하던 어리디 어린 총각 마술사의 치기도, 느물느물한 흥행술사의 속기도 없이, 그는 그저 말끔하고 맑아 보였다.

“마술이 필요하신가요?”
마술사 남자는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딱, 울렸다.

수강생은 열 명 남짓이었다.

그들은 첫날 마술사 남자에게서 간단한 동전 숨기기 마술과 몇 가지 트릭들을 배웠다.

수업이 끝나자 윤의 옆 자리 여자의 제안으로 일행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여자는 문화센터에 줄곧 다녔다고 했다.

남편이나 애들이나, 이제 다 지긋지긋해.

다들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치댈 줄만 알지.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건 알고들 있나 몰라.

까르르.

여자는 닭갈비를 주걱으로 휘휘 저으면서 농담하듯 그렇게 말했다.

낙이라곤 뭔가 배우는 것 밖에 없어요.

기타에 유화에 요리에, 이젠 마술까지 왔네.

문화센터도 이제 좀 지겨워지려고 하길래 말예요.

인생이 이렇게 휘황찬란해.

까르르.

여자는 자신의 말이 모두 농담이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말끝마다 과장된 웃음을 덧붙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주름이 빗살처럼 활짝 일어났다가 또 잦아들곤 했다.

윤의 앞자리에는 우울한 낯빛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스물 대여섯 쯤 되었을까.

아직 볼 살도 다 빠지지 않은 듯 앳된 인상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뭔가 에너지가 결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그녀는 자신을 소개했다.

아이들이 늘 떠들어서요, 애들은 제가 앞에 있어도 저를 못 보는 것 같아요.

마술이라도 좀 해 볼까 하고, 그러면 좀 애들이 절 봐 줄까 해서.

병아리 선생님이네, 문화센터 여자는 또 까르르 웃었다.

“그나저나 마술사 선생님 정말 멋있죠? 안 그래요?”
문화센터 여자는 병아리 여선생을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병아리 여선생은 우물우물 입안의 음식을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숨이 멎어버리는 줄 알았어.

아유, 가만 서 있어도 멋진데 마술은 또 왜 그리 잘해?”
문화센터 여자는 가슴에 손을 모으고 부르르 진저리 치는 시늉을 했다.

“그렇다니까.

여자들이란.”
수강생 중 유일한 남자인 청년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왔다니깐요.

여자 꼬시기엔 마술이 최고예요.”
청년은 병아리 여선생과 비슷한 연배인 듯 했다.

바람둥이 같은 말투와는 달리 청년의 볼은 약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흘깃흘깃 병아리 여선생을 훔쳐보고 있었다.

윤은 청년이 아직 한 번도 여자를 꼬셔보지 못했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마술이 필요할 만도 하네요.

윤은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마술을 할 때마다 손가락을 딱, 울렸다.

마술에서 중요한 건 포즈예요.

지금 뭔가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포즈, 그 포즈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때, 마술사는 뭔가를 바꿔치거나 숨기는 거죠.

윤은 그의 손가락 끝을 정신없이 따라 갔다.

그는 주먹 쥔 손을 부채로 부쳐 끊임없이 색종이를 흩뿌리거나 흩뿌려진 종이들을 주워 모아 다시 색종이로, 비둘기로 바꾸어냈다.

비둘기들은 그의 손에서, 목에서, 등 뒤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수강생들은 그럴 때마다 과장된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감춰진 손바닥을 우리에게 펴 보이며 모든 것이 환영이었음을,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잠시 속이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그럴 때마다 세상의 이면이라도 발견한 듯 또 한 번 흐뭇한 탄성을 질렀다.

무엇에든 능숙하다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이었다.

그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그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딱, 울리면 그 순간 윤은 구질구질한 그녀의 일상에서 휙 뽑혀 나와 모든 것이 그의 마음대로 움직이고 변하고 사라지는 세계로 던져졌다.

윤은 무릎에 노트를 펴고 열심히 그의 손동작을 그리거나 메모를 했다.

그리고 옆 사람과 짝을 지어 천 원짜리 지폐를 만 원으로 바꾸거나 옆구리에서 장미꽃을 꺼내는 마술을 끈기 있게 반복했다.

그러면서 윤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녀가 원한 것이 이런 것일까.

환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흉내 내는 것도 아니라,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환상이 아니었던가.

그의 마술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몇 가지 마술을 그는 줄거리로 엮어 한 편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마술은 손장난이 아니에요.

새로운 세계를 하나 만들어서 사람들을 그리로 초대하는 거죠.

자신을 믿지 않으면 안돼요.

이건 사람들을 속이는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에요.

여러분 자신조차도 홀리는 마술.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마술사예요.

마술사 남자는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며 초보 마술사들의 서툰 동작을 교정해주고 시범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문화센터 여자는 마술사 남자가 곁에 올 때마다 아유, 잘 안 되네, 전 소질이 없나 봐요, 하며 또 까르르 웃어 댔다.

마술사 남자는 그럴 때마다 예의바르고 친근하게 여자를 북돋워 주었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 정도면 아주 잘 하시는데요.

여자는 또 어머나, 정말요? 하면서 진저리치는 시늉을 했다.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마술 극장에 모여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는 것과 있는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을 연습했다.

마치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만들어가는 것처럼, 완벽한 연기를 향해 그들은 매진했다.

연습의 파장이 마술극장 바깥에까지 퍼져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윤은 꼬박꼬박 마술극장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마술은 늘 손끝에서 멈추고, 삶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윤의 삶 안에 그가 들어온 것을 제외하고는.

그가 마술을 부리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문화센터 여자가 윤을 보자마자 손목을 잡아끌었다.

우리 선생님 신문에 난 거 봤어, 자기? 여자는 가방 안에서 차곡차곡 접은 신문을 꺼내어 펼쳐 보였다.

도민 신문이었다.

신문 기사 속의 그는 여전히 말쑥하고 단정했다.

그는 그의 가족들과 함께 화려한 공연 의상을 입고 서 있었다.

어디선가 가족이 다 함께 공연을 했다고 했다.

그의 두 여동생들은 금테를 두른 모자와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그의 옆에 서 있었다.

그들의 팔이며 옷자락에는 반짝이는 스팽글들이 촘촘히 붙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특집 기사로 따로 묶여져 있었다.

사진 속 그의 아버지는 윤이 상상했던 그대로의 마술사였다.

머리가 하얀 백발이라는 점이 좀 다르달까.

그의 손에는 흰 비둘기 한 마리가 올라 앉아 있었다.

기사는 몇 개의 문장으로 그들 가족의 내력담을 전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와 덤블링이 전문인 그의 어머니는 서커스단에서 만나 부부가 되었다고 했다.

그들의 아들인 마술사 남자는 대학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 후 가업을 이어 마술사가 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마술극장의 이야기도 잠깐 언급되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두 살이 아래였다.

그도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전국을 떠돌았을까.

천막을 치고 광대 분장을 한 채 한발 자전거를 탔을까.

실수라도 한 날이면 아버지에게서 채찍으로 매를 맞기도 했을까.

밤에는 흙바닥에 야전 침대를 펴고 온 식구가 함께 웅크려 잠들었을까.

윤은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사진 속의 그가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완전 마술사 가족이다, 그치? 까르르, 이 촌스런 금테 옷 좀 봐.

문화센터 여자가 새로 도착한 다른 이를 붙잡고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윤은 문화센터 여자에게 강렬한 적의를 느꼈다.

생각해보면 그가 안쓰러울 이유는 없었다.

그는 마술사이고, 마술사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었고, 마술사 동생을 둔 속속들이 진짜 마술사인 것이다.

그를 안쓰럽게 느낀 것은 그저 그의 스팽글 달린 공연복이 그리 세련되지 않아서였을지도 몰랐다.

사진 속의 그는 웃고 있었으나 그건 어딘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혹시 그의 가족들은 가짜가 아닐까.

이렇게 세상 밖의 사람처럼 깨끗하고 맑은 사람이, 이들과 피를 나눈 한 가족이라니, 윤은 믿기질 않았다.

혹 그는 어린 시절 서커스단에 납치된 게 아닐까.

어딘가 그와 같이 가늘고 긴 손가락을 가진 진짜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는 여태껏 마술 가족의 일원이 되어 혹사당해 온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윤의 머릿속은 끝없는 공상들로 어지러웠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그는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닮아 있었다.

그 가늘고 긴 손가락 마저도.

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래처 일을 마치고 나자 시간이 여유 있게 남았다.

윤의 발길은 자연스레 마술극장을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프린스 모텔을 찾으세요.

그 옆 번쩍번쩍한 골목길로 오시다 보면 오른쪽에 보여요.

처음 마술극장에 전화했을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과연 마술극장은 2류 유흥업소들이 가득한 골목에 슬쩍 끼어들어 있었다.

오후의 유흥가는 어딘지 겸연쩍은 표정이었다.

정오까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작부들이 세수도 안 한 채 문지방에 기대어 재수패라도 떼고 있는 모양새로, 고만고만한 업소들이 나른한 맨얼굴을 내보이고 있었다.

아직 켜지지 않은 네온사인들 위엔 뿌연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마술 도구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두 시간이나 일찍 찾아온 무례를 그는 꾸짖지도 묻지도 않았다.

그는 귓바퀴를 살짝 문지르더니 윤에게 주먹을 쑥 내밀었다.

윤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윤의 손에 툭 하고 동전 하나가 떨어졌다.

“행운의 동전이에요.

좋은 일만 생긴답니다.

일찍 오신 선물이에요.”
윤은 좀 머쓱해져서 공연히 동전을 한 번 위로 던졌다가 받았다.

그리고는 그에게 처음으로 배웠던 동전 숨기기 마술을 무심코 해 보였다.

“이제 아주 잘 하시네요.”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요.”
“배운다고 다 잘 하는 건 아니에요.

연습을 많이 하셨나 봐요.”
윤은 객석에 앉아 무대 중앙의 탁자에 검은 천을 덮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마음에 들어왔지만,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아직 타인이었고, 윤은 그저 그를 보는 것이 기쁘고, 그만큼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는 저만치, 윤은 여기에, 그뿐이었다.

“왜 마술사가 되셨어요?”
그의 손이 잠깐 멈추었다 다시 움직였다.

“글쎄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마술사가 되어 있었어요.”
“저랑 비슷하네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노처녀가 되어 있었거든요.”
그들은 함께 웃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린 건지 모르겠어요.”
“마술이 필요하세요?”
“웬만한 마술 가지고는 어림없어요.”
그들은 또 함께 웃었다.

누가 준 용기였을까, 윤은 불쑥 말했다.

“선생님이 좋아졌어요.”
그의 손이 다시 멈추어 섰다.

그는 말없이 객석의 윤을 건너다보더니 천천히 윤에게로 걸어왔다.

주먹이 쑥 윤의 눈앞에 다가들었다.

윤의 손바닥에 그의 따뜻한 손바닥이 맞닿았다.

그리고 그는 딱, 손가락을 울렸다.

“선물이에요.

당신은 지금 다시 스무 살이 되었어요.”
풋, 윤은 웃음을 터뜨렸다.

프로그램의 끝은 수강생들이 꾸미는 마술 쇼였다.

수강생들은 저마다 몇 가지 기술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마술사 남자는 그 보답으로 프로그램이 끝난 주 토요일, 그들만을 위한 정식 마술 공연을 선보이기로 했다.

수강생들은 얼마쯤 들떠 있었다.

문화센터 여자는 100송이 장미를 몸 여기저기서 자꾸자꾸 만들어내는 마술을 준비할 거라고 했다.

최고로 근사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 거라며 여자는 또 주름꽃을 잔뜩 피워냈다.

병아리 여선생은 문제아 아이들이 마술을 배우면서 철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만들 거라고 했다.

바람둥이 청년은 그의 사랑이 승리를 거두는 연애 판타지를 펼쳐 보일 모양이었다.

문화센터 여자는 상기된 얼굴을 윤에게로 돌렸다.

윤은, 윤의 이야기는, 여전히 도통 오리무중이었다.

윤은 스무 살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아침마다 윤은 거울 속에서 정직한 서른 셋 여자의 얼굴과 마주쳤다.

그의 마술은 들어먹지 않은 셈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윤은 그가 부린 마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밤마다 꾸는 윤의 심란한 꿈은 유치찬란하게도 그의 연인이,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달콤한 꿈의 정점에 서자마자 윤은 매번 처참하게 고꾸라져 내렸다.

그의 아내가 되어, 마술극장 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그의 운명을 윤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신문 조각의 가족사진 한 구석에 윤의 얼굴도 함께 박아 넣게 된다는 것이었다.

스팽글 가족을, 그리고 그들과 단단히 묶인 그를 그녀의 삶 안으로 받아들일 용기, 그럴 만한 용기가 윤에게 있을까.

그의 마술은 어디까지 통하는 것일까.

윤은 자문해 보았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윤이 지금까지 두려워했던 것은, 속물이 되는 것이었을까, 속물스러워 보이는 것이었을까.

윤은 스스로의 속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과 다르고 싶다는 것, 그만큼 속물스러운 것이 있을까.

나이트 가수처럼 반짝이 재킷을 입은 그의 아버지가 윤의 뒤를 쫒아오고 있었다.

평범한 게 싫어? 그럼 이런 건 어때, 봐, 비둘기도 나와.

윤은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 마술극장의 간판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검은 연미복을 입은 그가 해맑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안심하고 그의 품에 안기는 순간 주름이 잔뜩 달린 흰 발레복 차림의 그의 어머니가, 그리고 똑같은 복장을 한 그의 여동생들이 윤을 에워쌌다.

발레복 위로 튀어나올 듯 부풀어 오른 그들의 둥근 젖가슴이 윤의 등과 팔을 눌러왔다.

어서와, 어서와.

너에게 열린 문이야.

너에게 스팽글로 빛나는 삶을 선물로 줄게.

마술을 믿어 봐.

무대에 불이 들어오고, 그들은 차례로 둥근 원 안으로 나아갔다.

초등학생들의 첫 학예회 무대처럼 서툴고 정겨운 무대였다.

그들의 마술은 종종 들통이 났고, 나머지 관객들은 도리어 그 실수들을 유쾌하게 즐겼다.

문화센터 여자가 정말로 백 송이의 꽃을 만들어 보이더니 그것을 수줍게 마술사 남자에게 건넨 데서 마술 쇼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공연이 끝나자 마술극장의 무대는 간단한 뒤풀이 장소로 변했다.

사람들은 발그레한 얼굴로 둥글게 둘러 앉아 잔에 술을 채웠다.

무언가를 함께 한 사람들 사이에는 피붙이 같은 정겨움이 생겨난다.

그들은 서로에게 가족보다도 오랜 친구보다도 가깝게 느껴지는 타인이 된다.

오래가지 않는 환영, 일종의 착각 같은 것이 그 하룻밤 사람들 위에 축복처럼 내리는 것이다.

바로 그런 밤이었다.

맥주와 노래들, 그리고 이야기들, 마술과 착각이 사방에 고루 뿌려져 있었다.

술이 취하자 사람들은 서로 끌어안고 볼을 부벼 댔다.

병아리 여선생과 바람둥이 청년도 어느 틈에 손을 맞잡고 있었다.

청년의 마술이 통한 것일까.

병아리 여선생도 드디어 누구에겐가 눈치 채인 것일까.

스쳐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비를 피해 늘어선 처마 밑에서 말없이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처럼, 그렇게 덧없고 찰나일 뿐인 어느 봄날의 하룻밤이었다.

그 하룻밤이 지나고 나면 그들은 길에서 만나도 잠시 걸음을 멈췄다 다시 갈 길을 재촉하는, 그런 정도의 인연으로 머무를 것이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윤은 부러 냉정한 예측을 접어두고는 문화센터 여자의 톤에 맞추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마술극장의 층계참에서 윤은 화장실에 다녀오던 마술사 남자와 마주쳤다.

빛을 등지고 선 그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였던가, 불쑥 그에게 주먹을 내민 것은.

알 수 없는 것들이 싫어서, 세상이 쳐둔 베일 같은 것들이 지겨워져서였을까.

그는 손바닥을 내밀어 윤의 주먹을 받아 쥐었다.

그와 윤은 어둠과 마술의 힘을 빌어 키스했다.

세상의 눈을 피해 그들은 마술 우산 아래 숨었다.

주변의 모텔과 나이트의 불빛들이 마술극장의 입구까지 따라 들어오다가 말없이 등 돌려 그들을 가려 주었다.

윤이 극장 안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일시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왔다.

병아리 여선생은 고개를 저만치 돌렸고, 바람둥이 청년은 노골적으로 입을 삐쭉거렸다.

윤은 영문을 모른 채 쭈볏쭈볏 구석 자리에 앉았다.

그나마 문화센터 여자가 말을 걸어온 것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자기, 선생님하고 사귀어?”
순간 가슴이 흠칫, 멈추어졌다.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하고 사귀느냐고.”
사람들은 딴전을 부리는 척 하며 윤과 여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윤과 마술사 남자 사이의 일을 엿본 누군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그건.

윤은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홱 고개를 돌리며 내뱉듯이 말했다.

“마술사 선생 취향도 별 거 아니네.”
순간 윤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하긴, 마술사 선생도 뭐 별 건가.

속임수나 쓸 줄 아는 별 수 없는 딴따라지.”
“말씀이 너무 심하잖아요.”
“심하긴 뭐가 심해? 우리 모두 마술사 선생 좋아하는 거 알면서 혼자 선수 친 자기가 심하지.

별이라도 딴 기분인가? 어차피 뭐 어쩌겠다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자기 별루야.

같이 딴따라 마술 잘 해봐.

칼 꽂기 마술 할 때 조수도 하겠네.

찔리지 않게 조심하구.”
여자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쌩하니 시선을 돌렸다.

윤은 숨을 몰아쉬었지만, 대꾸할 말이 도무지 생각나질 않았다.

윤은 말없이 돌아섰다.

계단 앞에는 마술사 남자가 쓸쓸히 서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살며시 극장을 빠져나갔다.

윤은 날카롭게 문화센터 여자를 노려보았다.

윤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윤은 몸을 날려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마술사 남자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윤은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윤은 알았다.

문화센터 여자는 그저 조금 질투가 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윤에게는 마술사 남자를 그토록 쓸쓸하게 만든 문화센터 여자가 세상의 누구보다도 증오스러웠다.

그것은, 실은 윤 자신에 대한 증오였을까.

그와 키스하고 난 직후, 돌아서서 내려오던 윤의 머릿속에도 문화센터 여자와 비슷한 생각이 떠올랐다고 하면, 그건 그들 사이에 잠깐 핀 꽃 같은 마술에 대한 모독이었을까.

윤은 무엇에겐지 알 수 없는 슬픔으로 잠깐 울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깨끗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느 틈에 어른이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다음날 윤은 공연 시간보다 한참이나 일찍 그를 찾아갔다.

그는 울고 있었다.

공연 연습을 하고 있었던지 멋진 연미복에 마술사 모자를 쓴 채로, 그는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손을 짚고 선 비둘기 우리의 창살 틈으로 눈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윤은 가늘게 들썩이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젖은 눈으로 윤을 돌아보았다.

윤은 천천히 마술사 남자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들은 한동안 그런 자세로 멈추어서 있었다.

우리 속에서 비둘기들이 괜찮아요, 구구, 하고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는 슬쩍 윤에게서 몸을 빼내 고개를 돌렸다.

“당신에게 줄 게 없어요.”
“마술을 주었잖아요.”
“그건 눈속임일 뿐이에요.”
그는 마술사 모자를 거칠게 벗어 던졌다.

모자가 무대 바닥에 벌렁 넘어져 흔들거렸다.

“사람들은 삶이 무료할 때 잠깐 마술을 즐겨요.

모두 알아요.

내가 전능한 마법사가 아니라 그저 마술사에 불과하다는 걸.

나나 우리 식구들은 이 비둘기들만도 못해요.

여전히 세상이 두려워하는 천민, 통속도 그런 통속이 없는 싸구려 서커스쟁이들, 집도 절도 없는 누더기 집시 떼거리들이에요.

관객들은 아무리 멋지게 속이려 해도 절대 속아 넘어가지 않는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눈앞에선 박수에 환호를 질러대다가 돌아설 땐 싸구려들, 하고 코웃음을 치죠.”
윤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무대 옆 준비실로 들어갔다.

그의 의아한 눈빛이 윤의 뒤를 좇았다.

갖가지 공연 의상들이 가지런히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윤은 가만히, 반짝이는 의상들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우린 모두 꼭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속물이 아닌 척, 속된 것과는 천만 년 거리가 먼 척 우아한 얼굴을 하고서 도리어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냄새를 피우는 속물이 되는 것이 그나마 성공한 어른이란 것일까.

윤은 가장 화려한 스팽글 옷을 차려 입고는 무대로 나갔다.

금박 줄무늬가 옷깃마다 수놓아져 있었다.

어깨와 소매의 스팽글 옷이 움직일 때마다 찰그랑 찰그랑 맑은 소리를 냈다.

마술사 남자의 얼굴은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게 일그러져 있었다.

“당신만을 위한 공연이에요.”
윤은 딱, 손가락을 울렸다.

당신의 삶에는 마술이 필요해요.

마술로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더더욱 당신에겐, 그리고 나에겐 마술이 필요해요.

윤은 그에겐지 자신에겐지 알 수 없는 말들을 소곤소곤 중얼거렸다.

토요일 밤, 그와 그의 가족은 열 명의 수강생들을 위해 공들인 마술 쇼를 보여주었다.

그는 카드에 불을 붙여 그것을 입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어 불탄 자국 하나 없는 말끔한 새 카드로 만들었다.

그것을 부채로 부치자 그것들은 지폐 다발이 되었다가 다시 무수한 색종이들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갔다.

작은 극장 안에는 여전히 카드가 타다 만 매캐한 연기와 내음이 남아 있는 채였다.

그가 손가락을 딱 울리자 색종이들은 공중에서 흰 눈이 되어 폴폴 날렸다.

초보 수강생들에겐 도무지 어디쯤이 손재간인지 알 도리가 없는 솜씨 좋은 마술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무대 중앙으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불을 내뿜고, 어머니는 녹슬지 않은 덤블링 솜씨로 아버지의 불 고리 속을 통과했다.

그는 상자에 든 여동생에게 깊숙이 칼을 내꽂았다.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자 목만 내놓은 여동생은 찡긋 윙크를 했다.

또 다른 여동생은 죽은 듯이 최면에 잠겨 공중에 떠올랐다.

그의 마술 가족들은 하나같이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던 문화센터 여자도 어느 새 발그레한 얼굴로 입을 벌린 채 탄성과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마술사 남자가 손가락을 딱 울리자 관객들은 모두 조금씩 공중으로 떠올랐다.

관객들은 캬르륵 웃으며 공중에서 발을 동동거리고 손뼉을 쳤다.

마술사 남자와 윤의 시선이 공중에서 따뜻하게 얽혀들었다.

순식간에 윤의 몸이 빙글 공중에서 돌더니 무대 위로 둥둥 떠갔다.

마술사 남자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윤의 원피스는 스팽글 달린 발레복으로 바뀌었다.

윤은 치마를 양손으로 잡고 한 발을 뒤로 하여 멋들어진 무대 인사를 보냈다.

이것은 한편의 매직 쇼, 반짝이는 스팽글을 달고 우리는 물과 불 속을 전진하며 비둘기와 꽃을 피워 올린다.

마술극장 밖 거리에선 단란주점과 모텔과 나이트클럽의 네온사인들이 모두 함께 입을 맞추어 쇼쇼쇼, 합창을 한다.

마술극장을 나서는 순간 모든 것이 먼지로 변해 무너져 내리거나, 그보다 더 끔찍하게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천만년 머무른다 할지라도, 지금은 쇼쇼쇼, 키취풍 매직 쇼의 밤.

추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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