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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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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4,429회 작성일 08-02-1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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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김혜주



텅 비어 있는 눈빛은 슬펐다. 아무도 눈 맞춰 주지 않는 허공을 서성대고 있는 시선은 그래서 더 애잔했다. 그녀의 눈빛이 그랬다. 쌍꺼풀이 진 큰 눈에 눈물 한 방울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의 그 막막한 눈빛. 꽉 닫힌 문 앞에 서서 속절없이 빠져버린 문고리의 흔적을 장님마냥 더듬고 있는 눈빛. 그런 그녀를 만난 것은 병실이었다. 그녀는 하얀 시트 위에 석고상처럼 굳은 육신을 뉘고 있었다.

몇 날을 두통에 시달리다 동네 병원을 찾았다. 치료를 했으나 차도가 없자 의사는 더 정확한 검진을 위해 큰 병원에 가기를 권했다. 감기가 오래 가는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데 왼손에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그제야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 갔다. 검사 결과는 가벼운 뇌출혈. 그날로 입원을 했다. 신경외과 병동에는 대부분 중증 환자들이 많았다. 간호사가 안내하는 병실로 들어서다 그녀의 눈빛과 마주쳤다. 내 자리는 그녀의 옆이었다. 그녀는 전신 마비 환자였다.

너덜해진 차트 첫 장에 기록된 그녀의 나이는 서른아홉. 그것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느닷없이 찾아온 내 병을 감당하기도 어려웠지만 옆에 나란히 누운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은 더 힘들었다. 손등에 주사 바늘을 꽂은 채 나는 모로 누워 창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병실 안은 죽음 같은 고요가 흘렀다.

이른 저녁 식사 시간. 간병인 아줌마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그녀의 콧속으로 연결된 줄에 커다란 주사기로 물을 몇 번 밀어 넣더니 미음 주머니를 연결해 놓고는 사라졌다. 멀건 미음이 그녀의 코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슬픔도 아픔도 다 잊었다는 듯 그녀의 눈빛은 아득하기만 했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내 이름이 적혀 있는 식판이 덩그러니 침대 위에 있었다. 다 식어버린 국 한술을 입으로 떠 넣는데 어김없이 왼쪽 입술 사이로 주르르 흘러 내렸다. 당황스러워 휴지로 얼른 닦고 다시 숟가락을 드는데 국인지 눈물인지 온통 얼굴은 범벅이 되었다.

살아가자고 차가운 미음을 몸속으로 밀어 넣는 그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몸의 아픈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 그녀와 내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다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빛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말들을 내게 걸어 왔다. 아픈 사람에게는 국 한 그릇도 슬펐다. 하지만 나는 그 눈빛 때문에 식어버린 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녀의 눈빛이 환해졌다.

손끝 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그녀는 말라가는 가을빛이었다. 단 하나 비상구인 그 눈빛으로만 무형의 문자를 쏟아 내고 있었다. 딸아이를 만나면 안간힘을 쓰면서 눈동자를 꿈틀거리기도 했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아이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지만 인기척이 나면 반사적으로 시선이 병실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가 지쳐 갈 때쯤. 지방에서 일을 끝내고 바삐 왔다는 남편과 딸아이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손 내밀어 잡아 볼 수도. 이름을 불러 볼 수도 없었던 그녀의 눈빛은 강물처럼 울고 있었다. 죽는 일도 사는 일도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닫혀있는 육신의 문 앞에서 그 어떤 선택권도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어느 날 밤이었다. 모든 상황이 정지된 병실의 어두운 밤을 뒤흔드는 소리가 있었다. 그녀가 왼발을 까닭 없이 떨면서 침대 모서리를 연속적으로 치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나도 여전히 한 쪽이 불편했지만 가만히 그녀 곁으로 갔다.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눈을 깜박거려 봐요. 저절로 떨리는 거예요?”

그녀는 눈을 깜박거렸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마비 환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꼭 필요한 감각은 죽어 있으면서 그녀의 의지로도 막을 길 없는 떨림. 그녀의 눈빛도 흔들렸다. 나는 대책 없이 움직이는 그녀의 발목을 잡고 내 귀에 있던 이어폰을 그녀에게 꽂아 주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어쩐 일인지 그 떨림은 잦아들었다. 무너진 막장 속처럼 길을 잃고 멈춰있던 그녀의 몸. 그 깊은 곳 응어리진 멍울들이 조금씩 풀어지는 듯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손톱달이 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간신히 그녀의 베개를 들어 창 쪽으로 얼굴을 돌려주었다. 오랫동안 한 곳만 바라본 그녀가 밤하늘을 보더니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별도 보였다. 음악을 들으면서 창 밖 밤 풍경을 내다보던 그녀의 얼굴은 오랜만에 편안해 보였다. 그녀의 눈빛은 아직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여러 날이 흘렀다. 나는 차츰 감각이 돌아오고 두통도 사라졌다. 병실에 나란히 누워있던 두 사람에게 소통의 통로는 눈빛뿐이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웠다. 닫혀 있었던 것은 육신의 장애였을 뿐이지. 우리의 의식이 닫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병실 창으로 휘어져 있던 나뭇가지에 새가 앉았다. 사는 일이 날아든 새처럼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 회진 때 의사선생님은 내게 퇴원을 결정했다. 먹는 약으로 바꾸고 외래로 진료할 수 있도록 예약을 해 주었다. 집으로 갈 수 있어 좋았지만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짐을 꾸리면서 본 그녀의 눈빛이 쓸쓸해 보였다. 그녀 또한 얼마나 가족 곁으로 가고 싶었을까.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움직이는데 그녀의 입에서는 엷은 신음소리만이 들렸다. 병실을 나서려고 돌아서려는데 그녀의 손가락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솟았다.

그녀는 화석 같이 굳어 있던 여자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던 막막한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 몸속에서 우러난 자생력으로 손가락 하나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것은 잘 가라는 그녀의 인사이었으리라.

눈빛이 때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도 그 어떤 행동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할 때가 있다. 눈빛은 그녀와 나 사이에 흐르는 따스한 소통의 강이었다.




당선소감



일상의 벽에 작은 창 하나




늦은 저녁
베란다 방충망을 열어젖히고 어둠에 숭숭 구멍을 뚫는 하얀 꽃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을 때 당선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쏟아지는 함박눈. 서설(瑞雪)이었습니다.
창으로 보이는 인왕산의 붉은 가스등 아래로 눈발들이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절망과 싸우기 위해서 또 다른 절망과 맞서야 했던 시간들
그것은 마치 산불을 끄기 위해 맞불을 놓아야 하는. 그리하여 제 스스로 제 몸에 불을 질러야 했던 아픈 인내의 시간이었습니다.

답답한 일상의 벽 어디쯤에 뚫린 손바닥만 한 봉창 하나
문학은 제게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작은 창문으로 오늘 눈부신 햇빛이 쏟아져왔습니다.

쓸쓸한 계절에 맞이한 따뜻한 당선 소식은 몸져누워 있던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문학이라는 순결한 눈밭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내딛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 고향에서 투병 중이신 아버님. 담쟁이동인. 선생님….
멀리서 또한 가까이서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어깨 다독여주었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혼자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을 이 순간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선작의 주인공이 되어준 ‘미경’씨가 세상 어디선가에서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약력
△ 1961년 경북 경산 출생 △담쟁이 동인



심사평




중증환자와 교감 잘 그려내






수필 응모작품의 문장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느낀다. 전체적으로 작품 수준이 높아졌다.
수필은 체험을 통한 인생의 발견과 깨달음을 담은 글이다.

신변잡사에서 소재를 택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선 독자성. 차별성. 참신성. 개성이 필요하다.
체험에 있어서도 간접 체험보다 직접 체험이 더 가슴에 닿아오고. 관념적인 것보다 현실적인 것이 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1백여 편 중에서 당선작으로 뽑은 ‘눈빛’은 주제의 통일성. 소재의 특이성. 구성의 효율성에 있어서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이를 뒷받침하는 문장력이 치밀하다.

병원 입원실에서 환자의 신분으로 옆 자리의 중증 환자를 지켜보면서 삶과 인생에 대한 감회와 성찰. 고통 속에서 눈빛만으로 소통하는 절실한 교감을 잘 그려낸 수작이다.

중증 환자가 겪는 고통과 삶에 대한 애착. 입원실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 말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과의 유일한 감정 소통으로 ‘눈빛’이 상징하는 진실에 감동이 느껴진다.

유기농법의 시대적인 추세와 함께 담담한 문장력을 펼친 ‘대통령 특명’과 춤에 대한 체험적 신명과 인생에 대한 발견을 잘 승화시킨 ‘춤’이 최후심에 올랐지만 당선작에 미치지 못했다.

금년도 응모작품들은 수준이 향상되었으며. 체험의 치열성. 사유의 심오성. 주제의 선명성이 두드러지는 등 수필 발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다행스럽다.
금년 작품에서 소재면으로 보면. 주말 농장. 귀농 등 지금까지 잘 다루지 않았던 ‘농사짓기’에 대한 관심과 체험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리며. 초발심을 잊지 말고 꾸준한 정진을 당부한다.
(▲심사위원 김열규. 정목일)



추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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