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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이 슬퍼 보인다 / 안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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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태식
댓글 0건 조회 4,624회 작성일 06-10-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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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이 슬퍼 보인다

나는 오늘 내 손이 슬퍼 보인다. 개에게 과자를 주려고 손 내밀면
개는 어김없이 뒷발로 서서 앞발을 허우적거린다.
그 앞 발이 무언가 얻으려고 안달하는 내 손인 듯하여
문득 과자를 든 내 손이 서글퍼 보이는 것이다.
좀처럼 꺾이지 않는 직립이 불편하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한다.
아니다, 사람은 손 없이 왔다가 손 없이 가는 것이다.
보라, 기어 다니는 아이까지는 손이 아니라 발이다.
똥을 뭉개는 저
기어 다니는 노인의 손도 손이 아니라 발이다.
사람은 네 발로 와서 두 손으로 살다가
네 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두 손으로 사는 동안
잘난 사람들의 손은 악마적이다.
앞발이 손이 되는 것은 대체로 소유를 위해서며
앞발이 손이 되는 것은 대체로 폭력를 위해서며
앞발이 손이 되는 것은 대체로 군림를 위해서며

두 손으로 사는 동안
못난 사람들의 손은 더 악마적이다.
대체로 자본 앞에서 빌어먹기 위해서며
대체로 폭력 앞에서 싹싹 빌기 위해서며
대체로 권력 앞에서 두 손 들기 위해서다.

두 손으로 사는 동안 극한에 가서는
악마적인 손과 더 악마적인 손이 부딪친다.
빌어먹던 손이 찬탈하여 소유의 손이 되기도 하고,
싹싹 빌던 손이 칼을 빼앗아 들고 실수를 휘두르기고 하고,
항복하던 손이 권력의 숨통을 끊고 군림하기도 한다.
두 손의 역사는 끊임없이 싸움을 재생산하는 역사다.

나는 오늘
배가 부름ㄴ 이내 발로 돌아가는
저 순하디 순한 개의 손을 보면서
도무지 잉여를 모르는 저 개의 손을 보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손이 슬퍼 보인다. 그렇지만
개가 두 발로 오래 서 있지 못하는 것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니래도 손이 자유로운 것이 많아서 어지러운 세상에
개마저 그리된다면 끔찍하다.

과자를 주면
이내 네 발로 돌아가는 저 단순한 동물이
오늘따라 한없이 예쁘게만 보인다. 꼬리를 흔들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저 개와 섹스라도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오늘
분명 내 손이 슬퍼 보인다. 빼앗길 것도 없고
빼앗고 싶지도 않은 내 손이 한없이 슬퍼 보이는 것이다.
두 손 탈탈 털고 네 발로 기어 다니기에는
이미 세상은 너무나 직립공간인 탓이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위해 허우적거리는 내 손이 슬프다.

('계간아시아' 발표 - 경북작가회의 홈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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