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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폐차장 / 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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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폐차장
폐차들
시루떡같이 겹겹이 쌓여 있다.
질주의 끝이 이곳이라는 것을
우리는 몰랐다는 것을
온몸으로 항변하다 벌겋게 녹슬기도 하고
다 이제 해체되기를 기다린다.
늘 죽음 쪽으로 쏠릴 때마다 균형을 잡아 달렸는데
기어코 도달한 곳이 차의 거대한 무덤
압착기에 전신이 짜부라지는 무시무시한 순간이 기다리는 곳
과속을 할 때마다 헐떡이며 절정에 도달했을 때
그때쯤 그만두어야 하는데
따지면 무얼 그만두어야 하는지 마땅히 떠오르는 것도 없었는데
결국은 속도의 끝이 정지라는 것
늘 달렸지만 정지 쪽으로 살이 당겨진다는 것
우리가 가진 관성이라는 것도 죽음에게로 기울어가려는 것
길을 빗나간 차든지
곧장 떠난 차든지
결국은 이곳에서 만날 운명이었다는 것을
이곳에 모인 폐차들
어이없이 서로의 찌그러진 몰골을 바라본다.
정신없이 달릴 때 서로 알아봤어야 했다면서
추월하여 뒤꽁무니를 보일 때
이미 결론이 나 있었던 것이라며
폐차들 참회의 모습으로
지금은 차디찬 비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다.
** 김왕노 시집 <말달리자 아버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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