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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도의 진실-2(한하운의 한 맺힌 노래)/조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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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운 시인의 한 맺힌 노래
(상략)
그가 오마도 간척 공사장의 지휘소로 찾아온 것은 1962년 여름이었다.
무덥게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그는 산꼭대기에 있는 지휘소로 올라왔다. 나는 깜짝 놀라싿. 미리 기별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어찌된 일이세요? 이 산꼭대기까지 올라오시다니. 어서 앉으세요."
나는 반가움에 달려가 의자를 내놓고 손을 잡았다. 그는 내 손을 놓지 않고 잠시 서서 고래를 숙이고 있었다. 무더위에 산꼭대기까지 올라오느라고 숨이 차서 호흡을 고르느라고 그러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들었들 때는 그게 아니었다. 뜻밖으로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내 마음도 이상해졌다.
“왜 그러세요. 자, 눈물 닦으시고 기분 돌리세요.”
나는 손수건을 건네주며 그를 간신히 끌어앉혔다. 한참 말없이 마주앉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조 원장님, 당신은 우리 문둥이들이 구세주올시다. 보시오. 문둥이들이 이제야 합심해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일하고 있지 않고. 원장님도 아시다시피 문둥이들이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 보셨나요? 일제 때는 강제노동에 시달렸고, 해방 이후에는 거의 놀며 얻어먹고 살지 않았습니까? 이제야 문둥이들이 사람구실을 하는 것 같소. 너무 감격해서 갯벌에 앉아 시를 썼소. 틈이 나시거든 읽어보세요.”
하면서 나에게 건네주고 자기는 꼭 오늘 서울까지 가야 된다며 붙잡는 내 손을 떼어내며 떠나버렸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가 떠난 뒤에도 그의 말이 귓전에 뱅뱅 돌았다.
‘문둥이들이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 봤소.’
그 말은 나환자들이 게으르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거리가 없었다. 언제 누가 그들에게 정당하게 일을 시킨 적이 있었는가. 일정 때 일을 많이 했지만 그건 강제노역이었다. 시켜서 한 일은 제대로 된 일이 아니다. 내 필요에 의해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일할 때 비로소 보람도 느끼고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하운 시인은 바로 그런 점을 내게 말한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되새기며 작업장을 굽어보았다. 거기엔 정말 개미처럼 꿈틀거리며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시인은 그 사람들을 가리켜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한다고 표현했다. 사람 구실.....
그렇게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손에 든 그의 시를 펼쳐 보았다.
문둥이가
문둥이들이
바다에 돌을 실어서
바다에 돌을 던져서
풍양(豊陽)곶과 오마도를 이어
도양(道陽)곶을 둑 쌓아서
바다와
바닷물을 밀어낸
바다 330만 평 해면이
육지 330만 평의 5만 석 옥토가 된
이 간척지는
이 나라 영토를
지도를 확장한 대붕(大鵬)의 뜻
문둥이가
땅에서 못 살고 쫓겨난 한은
땅에서 살아보려는 원(願)은
땅에서 살아보지 못한 땅을 만들어
나라 사랑의
마지막으로 바치는 영원한 보국(報國)이
살아서 마지막으로
학대(虐待)된 이름을 씻어
사람 구실 하는
오 영광의 땅
햇빛 가득한 오마(五馬)의 땅이여
어둠에서 빛나는 햇빛이여
시를 잘 모르는 내가 읽어도 금방 담긴 뜻이 전해졌다. 그 잠깐 사이에 시를 지어내다니 놀라웠다. 나는 시를 읽은 뒤 작업장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부른 사람이 올라오고 나는 시를 건네주며 큰 판에 시를 써서 방조제에 세워놓으라고 말했다.
(하략)
――『허허, 나이롱 의사/외길도 제 길인걸요?』(조창원 지음/명경출판사.1998년)
제2장 「바다를 이겨야 살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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