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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04 신춘문예 당선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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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연포에서
황성진
이 겨울 연포에서 파도 한 뿌리 캐어 본다
뜨겁던 여름 사내 온 몸으로 심은 그것
남겨진 잔물결 속에 밀려왔다 밀려가고
저 파도 뿌리는 늘 흰색 아니면 청색이다
사납게 일어나서 시퍼렇게 울다가도
가끔씩 잇몸 드러내 웃고 있는 것 보면.
어느 누가 있어 쓰라린 이 상처 위에
간간한 바람 주고 쓴 포말 보내었나
시퍼런 해안선마다 눈물자국 번득인다
[시조/심사평] 순간적 충격 전하는 말부림 빼어나
아직도 의고체(擬古體) 시조, 상투적 언어를 구사한 시조가 응모작품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다.
신춘문예가 프로정신이 투철한 신인 발굴 무대라면 복고주의를 떨쳐버리지 못한 고풍스런 발상이나, 이제 식상할 대로 식상한 예사말의 늪을 훌쩍 헤쳐나오지 못한 작품은 의당 논의의 대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술의 크나큰 적이랄 수 있는 도식성을 멋지게 극복한 당선작 ‘겨울, 연포에서’(황성진)를 만난 것은 경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가 넉넉한 당선작은 감각적 ‘말부림’ 능력이 탁월하다.
당선작과 호각을 이룬 ‘풀섶길’(김형태)과 ‘고등어의 눈’(이애자), ‘구절리 시편(詩篇)’(신희창)을 주의깊게 살폈다. 이 세 작품은 어디 한 군데 흠 잡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우며 흡인력이 넘친다. 그러나 선경(先景) 후정(後情)의 원리·묘사와 진술의 원리를 잘 녹여내지 못하고 있다.
이미지를 풀어낸 다음 그 위에 담론(시적 화자의 내면세계)을 실어야 하는데 그것을 그만 빠뜨리고 만 것이다. ‘구절리 시편’은 이른바 풍자시조의 범주에 든다. 풍자시조가 설 자리가 어디인가. 시는 현실을 끌어안되 현실을 날 것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발효시켜 새로운 그 무엇으로 환치시켜야 하는 것이다. ‘구절리…’는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 익숙한 세상 현실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데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당선작은 시조 특유의 순간적 임팩트(충격)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시인으로 성장하기 바란다. (윤금초·시조시인)
[시조/당선소감] 억센 손에 멍든채 누운 사연들
소중히 캐내 향기롭게 가꾸리
나는 이곳 태안에서 나서 태안에서 살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3면이 바다인 반도의 형태로 흔히 태안반도라 칭하는 이곳, 이 고향이 좋아 불혹 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어떤 이는 해안선의 길이가 천 리가 넘는다 하고, 또 어떤 이는 리아스식 해안의 전형이라고도 한다. 또한 만리포, 천리포, 몽산포 등 끝없는 포구와 갯벌이 천만 겁이 넘도록 예 그대로 철썩이고 있다.
이름하여 서해라 불리는, 그 끝없는 부침의 끄트머리 어디쯤 연포(戀浦)가 있다. 여름, 억센 장정의 손에 멍든 채 누운 시퍼런 사연이 있다.
이제 그 향기로운 사연을 캐낼 때가 된 모양이다. 이 땅 가장 깊은 곳, 조선일보의 바다에 우리 시란 파도를 캐낼 때가 된 것이다. 알맞게 간 맞추고, 소중히 말려서, 늘 먹음직한 해초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언제나 마음을 써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 나의 꽃다이 지윤숙 여사와 연이, 원이 그리고 우리 태안여고 학생 및 모든 선생님께 이 영광을 돌린다. 또한 조선일보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큰절을 올린다.
*황성진 씨 약력
1961년 충남 태안 출생
청주사범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2003년 12월 제10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필 당선
현재, 충남 태안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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