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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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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門
선안영
어둡기 전에 불을 켜야 조금 덜 쓸쓸하다는
아버지의 말씀 따라 촛불을 밝힌다.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편지 속에 추운 문자들
흔들리는 불꽃 따라 바람벽이 출렁이고
마른 잎새의 귀를 달고… 웃고 있던… 눈사람
幼年이 긴 꼬리를 감고
소리 없이 굴러온다
우리 잠시 지나왔던 길들 다시 포개져
아버지, 지치도록 걸어온 불의 몸을
저녁 내 그림자가 껴안고
까무룩 졸고 있다.
뜨거운 세상 향해 심지를 밀어 올리는
그 열림과 닫힘의 門을 지나, 침묵도 지나
헐렁한 바늘귀를 건너
눈꽃들이 피어난다.
------------------------------------------------------------
심사평
아주 능숙한 솜씨로 일상 그려
거듭된 토의 끝에 최종심에 올린 작품은 김옥희의 ‘실상사에서 만난다’, 임정집의 ‘판화 작업’, 장기숙의 ‘두 여중생의 죽음, 그 뒤’, 손영희의 ‘여름, 동강’, 선안영의 ‘꿈꾸는 문(門)’ 등 다섯 편이었다.
이중 ‘실상사에서 만난다’는 시는 엮어가는 능숙한 솜씨에 비해 적절한 시어의 선택이 따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고, ‘판화 작업’은 새로운 시각과 당찬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갈무리 능력이 못미쳤다. 또 시사문제를 다룬 ‘두 여중생의 죽음, 그 뒤’는 의욕이 너무 앞서서 직설적이고 생경한 표현들이 군데군데 드러난 것이 결정적인 흠으로 지적되었다. 마지막까지 거론되었던 ‘여름, 동강’은 첫 수 종장 결구법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연시조라 할지라도 한 수 한 수의 결구(結句)는 바로 시조의 기본 보법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꿈꾸는 문’은 화자만의 이야기를 시로 엮어가는 데 아주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 또는 추억이 시로서 다시 태어났을 때 그 아름다움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믿음을 뒷받침해 준 것은 함께 투고한 작품 ‘SELECTION’ 연작이었다. 연작 여섯 편 중에서 한 편의 단수만을 당선작으로 뽑아도 결코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아주 뛰어났다. 당선작 ‘꿈꾸는 문’으로 2003년 새해의 밝은 문을 연 선안영씨에게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김제현·박시교>
선안영
어둡기 전에 불을 켜야 조금 덜 쓸쓸하다는
아버지의 말씀 따라 촛불을 밝힌다.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편지 속에 추운 문자들
흔들리는 불꽃 따라 바람벽이 출렁이고
마른 잎새의 귀를 달고… 웃고 있던… 눈사람
幼年이 긴 꼬리를 감고
소리 없이 굴러온다
우리 잠시 지나왔던 길들 다시 포개져
아버지, 지치도록 걸어온 불의 몸을
저녁 내 그림자가 껴안고
까무룩 졸고 있다.
뜨거운 세상 향해 심지를 밀어 올리는
그 열림과 닫힘의 門을 지나, 침묵도 지나
헐렁한 바늘귀를 건너
눈꽃들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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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아주 능숙한 솜씨로 일상 그려
거듭된 토의 끝에 최종심에 올린 작품은 김옥희의 ‘실상사에서 만난다’, 임정집의 ‘판화 작업’, 장기숙의 ‘두 여중생의 죽음, 그 뒤’, 손영희의 ‘여름, 동강’, 선안영의 ‘꿈꾸는 문(門)’ 등 다섯 편이었다.
이중 ‘실상사에서 만난다’는 시는 엮어가는 능숙한 솜씨에 비해 적절한 시어의 선택이 따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고, ‘판화 작업’은 새로운 시각과 당찬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갈무리 능력이 못미쳤다. 또 시사문제를 다룬 ‘두 여중생의 죽음, 그 뒤’는 의욕이 너무 앞서서 직설적이고 생경한 표현들이 군데군데 드러난 것이 결정적인 흠으로 지적되었다. 마지막까지 거론되었던 ‘여름, 동강’은 첫 수 종장 결구법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연시조라 할지라도 한 수 한 수의 결구(結句)는 바로 시조의 기본 보법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꿈꾸는 문’은 화자만의 이야기를 시로 엮어가는 데 아주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 또는 추억이 시로서 다시 태어났을 때 그 아름다움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믿음을 뒷받침해 준 것은 함께 투고한 작품 ‘SELECTION’ 연작이었다. 연작 여섯 편 중에서 한 편의 단수만을 당선작으로 뽑아도 결코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아주 뛰어났다. 당선작 ‘꿈꾸는 문’으로 2003년 새해의 밝은 문을 연 선안영씨에게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김제현·박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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