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작품
2003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김옥숙
페이지 정보

본문
낙 타
김옥숙
낙타의 젖은 눈썹을 본 일이 있는가 그림 속 낙타의 눈을 들여다보지 말라
낙타의 길고 아름다운 눈썹에 손을 대지 말라
천년만년 그림 속에 박제가 되어있어야 할
낙타가 고개를 돌려 당신 앞으로 걸어나올 것이다
낙타가 당신에게 올라타라고 말을 건넨다
언젠가 낙타의 등에 올라타고
한없이 사막을 건너갔던 것처럼 낙타의 익숙한 등
불룩한 혹을 쓰다듬을 것이다 당신은
지쳐보이는 식구처럼 낙타가 안쓰러울 것이다
선인장들은 하늘에다 무수한 가시를 박아 넣고
메마른 하늘을 마구 찔러대고 있다
선인장의 눈과 귀는 뿌리에 있지 낙타가 말한다
캄캄한 지하에 눈과 귀를 박아 넣고
수만 미터 아래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찾아내는 거야
내 몸 속의 물을 꺼내 마셔, 괜찮아
낙타의 목을 끌어안고 우는 당신
낙타의 몸에서 물을 꺼내 마신다
모래바람이 불어와 낙타의 몸을 이불처럼 덮는다
당신은 눈물을 훔치며 그림 속을 걸어나온다
당신의 몸 속에 들어온 낙타 한 마리
문을 열면 모래 바람이 거세게 불고
당신의 늑골 속으로 기억 속으로 모래가 쌓이는 소리
당신은 몸 속의 낙타 한 마리 거느리고
사막을 건넌다 그림 속의 낙타는 눈썹이 길다
-------------------------------------------------------------------
* 심사평 *
본심에 오른 작품 중에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은
철탑, 머물어가는 사람들, 옻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고서점에서,결합 ,매직 아이, 곶감, 월전리, 어린 골파,
낙타, 말이 그려진 방석, 지구촌 오지를 가다, 사월,
살꽃이 피다, 아리랑 성냥, 홍인, 외딴 묘지, 재봉틀 등이었다.
모두들 그만그만한 수준을 지닌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이것이다라고 집어내기엔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면서도 최후까지 남은 작품은 살꽃이 피다, 사월,
말이 그려진 방석, 낙타, 어린 골파, 월전리 였다.
어린 골파 는 작품 구성이나 서정적 처리가
가장 짜임새 있는 작품이었으나,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이 편차가 심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말이 그려진 방석과 살꽃이 피다 는 두 작품 모두
나름대로의 어법을 지닌 독특한 감수성의 소유자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것 이외의 작품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이미지의 부자연
스런 연결이 마음에 걸려 고심 끝에 제외시켰다. 월전리는
싱싱한 감각과 활달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낙타와
함께 당선작으로 하고 싶을 정도였으나 한 작품을 선택해야하는
신춘문예의 응모방침에 따라 부득불 빠지게 된 아쉬움이 남는다.
시적 상상력과 서사적 밀도가 더 뛰어났다는 점이 낙타가
당선작으로 선정된 이유였다.
더욱 정진한다면 모두에게 좋은 결실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권기호(시인\경북대 교수) 정호승(시인\현대문학북스 대표)
- 이전글200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천수호 03.01.03
- 다음글2003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문성해 03.01.0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