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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하던 날/정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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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하던 날/정승렬
수덕사에서 견성암 가는 길목
경내를 빠져 나온 목탁소리가
방장스님의 헛기침 소리보다 근엄하다.
잿빛 승복을 걸쳐 입은 산목련 한 그루
살 터지는 바람맞으며 참선중,
죽비 세례가 두려워 언 발 땅에 묻힌 채 숨죽이고 있다.
날세운 바람이 남쪽 산자락을 넘으며 무디어지고 있다.
농익은 햇살들이 산목련 어깨 위를 촘촘히 내려와 앉는다.
무수한 봄의 흔적들이 무리 지어
산문을 지나고 사천왕문을 지나
혁명군의 모습으로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다.
대웅전을 애워싸고 산 능선까지 오르는 함성들.
분홍색 깃발이 꽂힌다.
노란색 깃발이 꽂힌다.
어느 부대의 깃발들인가?
푸른 옷의 혁명군이 온 산을 뒤덮고 있다.
여기저기 꽂히는 무수한 깃발과 병사들의 술렁임
방어선의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지고 있다.
산목련은 가지마다 하얀 깃발을 내걸고 있다.
잿빛 승복을 벗어 던지던 날
꽃등에 한 마리
하얀 깃발속 수꽃술의 체액을 묻혀
암꽃술의 몸속에 깊숙히 밀어 넣고 있다.
지금은 合房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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