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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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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9,925회 작성일 12-01-0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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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2012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목련꽃

조영민


꽃이 문을 꽝 닫고 떠나 버린 나무 그늘 아래서

이제 보지 못할 풍경이, 빠금히 닫힌다

보고도 보지 못할 한 시절이 또 오는 것일까

닫히면서 열리는 게 너무 많을 때

몸의 쪽문을 다 열어 놓는다

바람이 몰려와 모서리마다 그늘의 알을 낳는다

온통 혈관이고 살인 축축한 짚벼늘이 느껴져

아주 오랫동안 지나간 것들의 무늬가 잡힐 듯한데…


꽃 진 그늘에는 누가 내 이름을 목쉬게 부르다가

지나간 것 같아

꿈이나 사경을 헤맬 때 정확히 들었을 법한 그 소리가

왜 전생처럼 떠오르는 것일까


그늘은 폐가다 그것은 새집이나 마찬가지

나는 폐가의 건축자재로 이뤄졌다

태양이 구슬처럼 구르는 정오. 꽃그늘에 앉으면

뒤돌아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부르다 부르지 못하면 냄새로 바뀐다는데

뒤돌아서 자꾸만 누가 부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나무를 꼭 껴안아 보는데

나무에선 언젠가 맡았던 냄새가 난다


당선 소감 -“온갖 소재들, 詩로 화려하게 꽃피울 터”


  날마다 출근하려면 정지용 시인의 생가 앞에서 차를 탑니다. 이곳으로 이사온 지 일 년 반이 넘어갑니다. 그동안, 나의 창으로 눈발이 날렸고 비도 내렸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꿀벌이 무수히 다녀갔습니다. 벚꽃의 환한 빛이 너무나 좋아, 나에게 유실된 것들을 찾아갈 때가 많았습니다.

  지용생가 곁에서의 삶은 행복했습니다. 옥천 구읍의 상점 간판들은 온통 지용의 시들이 적혀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면 그 시구에 감흥을 받았습니다. 이곳은 작은 시(詩)의 대도시입니다. 지병 같은 나의 불행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나에게 시를 쓰는 것은 꿀벌과 같습니다. 저 벚꽃의 환한 빛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가만있으면 벚꽃도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 어느 때는 갓 출판된 시리즈물 같은 꽃잎을, 한 장 한 장 번역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돌아보면 시의 소재들이 자신도 번역해 달라 아우성입니다.

  계속해서 벚꽃의 환한 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영남일보와 부족한 저에게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합니다. 아울러, 수원에 계시는 어머니, 그리고 봉화에 계시는 장모님, 나의 사랑 이길현, 금쪽같은 다녕 동하 이준이, 저를 아는 모든 이에게 감사합니다.

  뒤늦게 배운 시인 만큼,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화려하게 피워보고 싶습니다. 시의 쓴 맛, 단맛을 조금 겪어 보았으니 이제 길을 가는데 외롭지 않겠습니다. 길을 가다 꼭 한번 시 나라의 번화가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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