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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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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호텔 602호- 이재성
독한 럼주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하급선원들이 돌아온 바다와
떠나갈 바다를 위해서 건배를 하는 사이
호텔 602호는 마스트를 세우고 바다 위에 떠있다.
아니 이미 항진 중인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허무, 낡은 시집의 행간, 해무는 같은 색이다.
점점 깊어지는 밤의 해무
수시로 무적이 길게 혹은 짧게 울리고
J는 아직 조타륜을 잡고 자신의 바다를 항해 중일 것이다. 조타실의 문을 열자
바다 속에서는 해독할 수 없는 안개가 타전되고
나는 이미 길을 잃은 한 척의 운명
해도를 펼쳐 북극성의 좌표를 찾는다.
J도 이 바다를 떠나 희망봉을 찾아 갔을 것이다.
스무 살, 바다를 잡을 때마다
늘 빈 손바닥이었다.
지금도 바다는 나에게 오리무중이다.
늙은 고양이가 친숙한 비린내를 풍기며
안개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안녕, 이 하룻밤도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안녕, 나도 사라질 것이다.
J가 누워 있던 침대엔
낡은 바다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이번 항해가 길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무사히 귀항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드리드 항에서 이 호텔은
항해사들로 이미 만원이다.
하지만 이 호텔에는 602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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