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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홍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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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588회 작성일 11-12-2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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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年 <세계일보> 詩 당선 홍문숙 

樂想 (악상) 

홍 문숙作

 

이 많은 선율들은 어느 음계를 찾아 헤맨 것들일까

나는 아직도 어떤 언어들이 오전의 숲에 들러

또 다른 선율을 갈아입는지 알지 못한다

어제도 나는 상한 언어들과 하루치의 이마를 짚으며

강 건너 도시를 헤매었다

정오를 넘겨도 되살아나지 않는 새벽녘 꿈의 불협들

애시당초 이 아름다운 선율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수돗물은 쉽사리 斷水를 풀지 않았고

메마른 손잡이와 외출은 허용하지 않는 문들마다

저묾이 들어차고 있다

집을 갖고 있는 것은 고독을 지켜내는 일이다

고독한 자의 고독을 깨우는 일이다

덜 잠근 수도꼭지에서

똑 똑 똑 맺히는 고독의 간격을 헤아리고 있었을까

어떤 선율도 음계를 찾지 못하는 건

건너 편 숲이 음흉스럽기 때문이다

하루가 짧아서다

내가 외로운 건 타인들의 망각이 많아서다

창밖을 넘겨보자 언제 피워 올렸는지 어제의 파줄기 하나

흰 씨앗을 연주하고 있다

 



저녁창/꽃술 홍문숙

 

얼마나 되었을까

아직 덜 저문 고요에 등을 대고서

붉은 저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 압정같은 어둠이 박힐 것이고

생각들이란 이럴 때

희미한 체온을 더듬듯 이마 끝으로 몰리곤 한다

어제도 저녁의 불안은 뜰 밖 목련이

먼저 알아챘었다

불안을 식별하는 것엔 흰빛들이 더 치명적인 걸까

집 밖 오솔길도 중얼중얼 문가로 모여들고

이 순간 나는 거품처럼 가벼워진다

부주의하게 관여하지 말았어야 했다

원했던 것도 아니니 눈을 돌렸어야 했다

망각 이외의 휴식이란 없듯

창가에 걸린 달이 위태롭다

그렇게 나는 세상의 가장 낮은 바닥으로

그리움일 거라던 하늘을 꼭꼭 숨기고 있다

 



파밭 - 홍문숙

 

 

비가 내리는 파밭은 침침하다
제 한 몸 가려줄 잎들이 없으니 오후 내내 어둡다
다만
제 줄기 어딘가에 접혀있던 손톱자국 같은 권태가
힘껏 부풀어 오르며 꼿꼿하게 서는 기척만이 있을 뿐,
비가 내리는 파밭은 어리석다
세상의 어떤 호들갑이 파밭에 들러
오후의 비를 밝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파밭이 좋다
봄이 갈 때까지 못 다 미행한 나비의 길을 묻는 일은
파밭에서 용서받기에 편한 때문이다
어머니도 젊어 한 시절
그곳에서 당신의 시집살이를 용서해주곤 했단다

그러므로 발톱 속부터 생긴 서러움들도 이곳으로 와야 한다
방구석의 우울일랑은 양말처럼 벗어놓고서
하얗고 미지근한 체온만 옮기며 나비처럼 걸어와도 좋을,
나는 텃밭에서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한줌의 파를 오래도록 다듬고는
천천히 밭고랑을 빠져나온다 

 

 

 

심사평] 경직돼 있지 않고 자연스럽고 신선 

예년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에 확 띄는 작품은 없었다. 오늘의 한국시가 갇혀 있는 프레임을 과감하게 깨트리는 작품을 찾을 수 없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저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소리를 중언부언하는 시는 눈에 띄게 줄었다. 아주 뛰어난 작품은 많지 않으면서도 당선작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은 적지 않아 선자들은 마음을 놓았다.

특히 다음 네 분의 시가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다. 홍문숙의 ‘파밭’ 등은 시를 쓴다는 경직된 포즈가 안 보이면서, 자연스럽고 신선하게 읽혔다. 속도감도 있는 데다 요즘의 유행과도 한 발 떨어져 있는 것도 미덕이었다. 그러나 투고한 작품들의 편차가 심해 쉽게 신뢰감이 가지 않았다.

종정순의 ‘개나리는 왜’ 등은 기지도 있어 보이고, 밝고 환한 분위기의 시여서 심사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우리 시가 가진 청승과 궁상이 없는 것도 호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화문석’ ‘현대방앗간’ 같은 산문투의 시들은 시의 맛을 반감시킨다.

유명순의 시 중에서는 ‘내통’이 가장 뛰어났다. 부부 간의 관계, 나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 자못 설득력이 있다. 한데 시들이 전체적으로 숨통을 조일 듯 답답한 것이 흠이다. 게다가 ‘뫼비우스의 띠’ 같은 흔해빠진 이미지가 일부 그의 시를 상투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최인숙의 시들은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표현도 큰 무리가 없고 자연스러웠다. 한데 어쩐지 시창작교실의 냄새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시는 쓰는 것이지 쓰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위한 시가 가지는 감동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이상 네 사람의 시를 놓고 많이 얘기한 끝에 결국 홍문숙의 ‘파밭’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심사위원은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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