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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경제 신춘문예 당선 시/손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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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933회 작성일 12-01-0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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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춘문예

제7회 경제신춘문예 가작

정중한 각도

손효영 



관솔 몇 점으로 술잔을 만든다

그 잔에 향기를 가득 채우면 그가 나를 차지할 것이다


먼저 톱을 켜서 곁가지를 자른 다음 용각무늬가 새겨진 몸을 열어놓는다

빗물로 몸을 닦고 바람으로 머리를 빗던 한 생이

압축된 곡선을 고담하게 품고 있다


끌 머리를 토닥이며 흑반점 하나를 도려내자 메아리가 퍼렇게 울려 퍼진다

그늘이 엷은 바람을 일으키자

그 몸에 우주를 그리듯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숨을 멈춘 채 굳은 살점을 파들어간다

날 선 끌을 튕겨내다가 제 무늬를 가무리며 끌을 물고 늘어진다


어느 누가 제 몸을 호락호락 내어줄까

정중한 각도로 손잡이를 고쳐 잡고 청정한 마음으로 살점을 들어낸다

구멍이 깊어질수록 관솔은 유순해지고 한 생애를 묵언으로 간직해온 감로정의 향기가 무늬의 간극 마다 흘러나온다


두 손 위로 올라앉은 술잔

울창한 솔밭 한 채가 그 안에 담겨있다 





[수상소감] 



  응모 후, 마음을 텅 비운 채 차라리 눈이 내리길 기다렸다. 눈을 맞으며 ‘풀밭’에 가고 싶었다. 허름한 건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옥상이 있고 한쪽 옆에 낡은 옥탑방이 있다. 풀 향기 풍기는 그곳에서 나는 꿈을 키워나갔다. 늦은 밤까지 서로의 작품에게 매를 대는 날이면 허기보다 절망감이 먼저 찾아올 때가 많았다. 누가 걸어놓았을까, 창밖에 걸린 풍경소리에 조용히 위로 받을 수 있었다. 언젠가 그 작은 풍경소리가 바람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울려나왔고 내 생각은 점점 깊어갔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정확한 각도로 대했을 때만이 일을 그르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풀 한포기를 뽑는다거나 작은 못 하나를 박는 일까지도 각도가 어긋나면 풀잎만 뜯기거나 못만 휘어지지 않았던가. 나는 그 각도를 정중한 각도라고 생각했다. 모든 삶에 있어서나 버림받은 시에게까지도 정중하고 싶었다. 막상 당선이 되고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정중했을지, 기쁨 뒤에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고 부끄러워진다.

  많이도 부족한 시를 놓고 고민하셨을 심사위원님께 죄송하고 감사하다. 부족함이 덜어지도록 더욱 열심히 써야겠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주시는 선배님들과 열띤 합평 후에 늘 손잡아주시는 모든 풀밭 식구들이 고맙다. 그리고 용기를 주셨던 마경덕 시인님을 비롯하여 풀밭에서 스쳐간 모든 인연들도 고맙다. 유일한 독자가 되어주고 비평까지 아끼지 않았던 아들 동흔, 당선이란 한 마디를 듣고 병환 중에도 환하게 웃으시는 어머니, 그 웃음 속에서 오래도록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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