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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소설/김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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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237회 작성일 09-01-1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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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김성문
모던 에덴


밤을 새워 짖던 개들의 울음소리는 새벽 무렵에야 잦아들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몸을 뒤척인다. 오늘도 사원의 스피커는 볼륨이 잘못 맞춰져 있다. 알라훔마 라카숨트 앗살람 왈레이쿰……. 조금만 볼륨을 낮춰주면 좋으련만, 기도소리는 일주일째 나를 괴롭히고 있다. 잠이 달아나고, 내 머릿속에는 미국의 어느 산꼭대기에서 우주로 전파를 쏘아 보낸다는 거대한 접시안테나가 떠오른다. 전파가 되어 우주로 날아가는 비틀즈의 음악과 스피커를 통해 내 방을 넘나드는 코란구절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듣는 쪽을 고려하지 않은 소음일 뿐이고 그래서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다. 창문을 넘어온 새소리와 자동차소리, 순찰 중인 경비원들의 자전거 소리가 귓바퀴에 밀려왔다 밀려간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에덴에 아침이 밝아온다.

가정부 라니가 계단을 밟고 올라온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라니의 초콜릿색 맨발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소란스럽지는 않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빗자루와 걸레, 먼지떨이 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라니가 창틀과 소파와 난간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커튼을 열어젖힌다. 내가 열 때는 온몸으로 비명을 지르던 창문이 라니의 손길에는 얌전하고 순종적이다.

내 방 밑 아래층, 정확히 창고와 뒷마당에 면해있는 방에서는 소음의 오케스트라가 시작된다. 탁상시계가 비명을 내지르면서 시작되는 불협화음은 발소리로, 샤워꼭지의 물소리로, 흥얼거리는 콧노래로 악기의 종류를 넓혀간다. 현관문과 방충문이 사이사이 박자를 넣는다. 오토바이 엔진소리를 마지막으로 교향곡은 끝이 난다. 아침 6시. 또또가 일을 나가는 시간이다.

모든 신경이 손끝으로 몰려간다. 검지와 중지 사이를 통과하는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 반사적으로 손을 와락 움켜쥔다. 눈을 뜨고 머리를 들어 올리자 천정에 붙어있던 찌짝 몇 마리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초록색 도마뱀들은 옷장과 책상 사이로 침대 밑으로, 어디든 내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자취를 감춘다. 동시에 라니의 기척도 멀어져간다.

도마뱀과 동거를 시작한 지 벌써 1년째다. 거실과 화장실은 물론 침실까지 출몰하는 놈들 때문에 질겁하는 나를 보고도 라니는 태연했다. 찌짝이 몸에 닿으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뜻이에요.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부터 나에게는 욕심이 생겼다. 나는 행운이 몸에 닿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것들을 잡아서 내 것으로 길들여야 직성이 풀린다. 소유할 수 없다면 행운이 아니라 고통일 뿐이다. 천천히 손을 펴본다. 이번에도 실패다.

샤워를 마치고 몸을 닦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곧이어 라니의 높고 가는 목소리가 욕실 통풍구를 타고 넘어온다. 집을 임대한 이후 집주인과 통화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지붕이 새고 페인트가 벗겨지고 에어컨이 고장 났지만 내내 통화가 불가능하던 사람이었다. 슬라맛 빠기! 아침 인사를 건네는 중국인의 목소리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경쾌하다.

"방금 수리공 두 사람을 보냈습니다. 고쳐야 할 곳이 있으면 얘기하세요. 그나저나……"

이제야 본론이 시작된다. 집주인은 임대를 연장하면 식탁과 소파를 새것으로 교체해 주고, 2년 계약을 맺으면 임대료를 깎아주겠다는 의향까지 내비친다.

"만일 열흘 안에 대답이 없으면 따로 임대광고를 내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책상서랍을 연다. 갈색 봉투를 꺼내어 거꾸로 흔든다. 영어와 인니어로 작성된 부동산 임대계약서, 여권, 취업과 관계된 이민국 서류가 차례로 바닥에 떨어진다. 계약서에 명시된 임대기간은 아직 한 달 보름 정도 여유가 남아있다. 이번에는 여권사이에 끼워져 있는 항공권을 꺼내 펼친다. 1년짜리 왕복권에서 한 장은 작년에 인천공항에서 찢겨나갔다. 달력을 보고 날짜를 헤아려본다. 10개월하고도 23일이 지났다. 남아있는 한 장의 유효기간에서 그 만큼의 시간이 소멸된 셈이다. 돌아가는 것은 간단하다. 가방을 꾸리고 택시를 타기만 하면 된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 교장 앞으로 사직서를 보내면, 이곳에서 보낸 나의 시간들은 깨끗이 마감되는 것이다. 방학 중이라 수업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교장은 처음엔 약간 놀라겠지만 곧 다른 수학선생을 구할 것이다.


낯선 그림자 두 개가 방충문 밖에서 어른거린다. 나와 얼굴이 마주친 나이든 수리공의 눈이 초승달모양으로 휘어진다. 아침 8시에 식탁에 앉아 토스트를 씹는 내 모습이 그에게는 생경한 모양이다. 나는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수리공을 향해 의례적인 미소를 짓는다. 라니가 문을 열어주자 연장통을 든 나이든 수리공이 앞서고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가 사다리를 메고 뒤따른다. 아뿔싸! 그들이 발을 디딘 곳마다 까만 발자국이 선명히 찍힌다. 동시에 그들의 몸에서 너무도 이질적이고 곤혹스러운 냄새가 훅 밀려온다. 식욕은 단번에 날아가고 뱃속이 울렁거린다. 결국 내가 산책을 나가는 것으로 우리 사이에 무언의 타협이 이루어진다.

적도의 태양은 이른 시간부터 지붕을 달구기 시작했다. 길 위의 아스팔트가 검은 빛으로 번들거린다. 근처에 사는 젊은 프랑스인 부부가 유모차를 밀며 지나간다. 모퉁이를 돌자 첫 번째 경비초소가 나온다. 슬라맛 잘란. 초소를 지키던 경비원이 나를 알아보고는 활달한 목소리로 외친다. 산책할 때면 자주 듣곤 하지만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말이다. 아마도 '즐거운 산책' 쯤이나 될까? 큰길로 나서자 낯익은 저택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급수차가 물을 뿌리고 지나간 곳마다 자잘한 물방울이 공기 중에 흩날린다. 소박한 무지개가 길 위에 걸린다.

골프장과 스포츠센터로 들어서는 아치형 입구에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글씨가 눈에 띈다. 모던 랜드, 자카르타 외곽에 위치한 이곳 외국인 거주 지역의 새로 바뀐 명칭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곳을 아직도 에덴으로 부른다. 폭동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중국인들만 모던 랜드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말하자면 이곳은 에덴이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모던 랜드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한때 이곳은 나에게도 에덴이었다. 워싱턴포스트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10대 도시' 사진을 윤에게 보여줄 때만 해도 나는 확신했었다. 이곳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도피처이자 낙원이며, 우리는 21세기의 아담과 이브가 될 거라고.

에덴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곧게 뻗은 야자수가 기둥처럼 늘어서 있어서 마치 신전으로 들어서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신과 소통하기 위한 제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21세기의 아담과 이브들은 신보다 자아를 더 경배한다. 그들은 제단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대신, 스포츠센터와 백화점과 골프장에서 휴일의 대부분을 보낸다.

오토바이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내 앞에 와서 멎는다. 또또가 헬멧을 밀어올리고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아저씨, 태워 줄까요? 금방 돌아올 수 있는데."

내가 먼지뿐인 바지주머니를 뒤집어 보여주자 또또가 헬멧을 두드리며 킬킬거린다.

"걱정 마세요. 아저씨는 평생 공짜니까."

또또의 등 뒤에서 누군가 슬그머니 얼굴을 내민다. 앞집 여자다. 한국남자와 동거중인 그녀는 유독 나를 친근하게 대한다. 가끔씩 음식을 만들어 와서는 한국말이나 한국요리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정도는 이제 한국인처럼 발음할 수 있을 정도다. 그녀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뿌옇게 젖어있는 그녀의 블라우스 앞자락이 유난히 시선을 끈다. 여자의 등에 업힌, 잠든 아기의 머리가 옆으로 늘어진다.

"또또, 얼른 집에 가. 늦으면 라니가 아침을 안 줄지도 몰라."

또또는 내 협박을 무시하고 허리에 찬 전대를 흔들어 보인다.

"괜찮아요. 저한테는 이게 밥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또또는 내가 걸어왔던 길로 핸들을 꺾고는 가속레버를 당긴다. 바람을 날리며 달리는 오토바이 뒤로, 아기의 머리가 출렁거린다. 아기의 동그란 갈색 머리는 껍질을 벗긴 코코넛 열매를 닮았다. 열매치고는 지나치게 무거워 보인다. 금방이라도 여자의 등에서 떨어져 버릴 것 같다.

갈림길에서 잠깐 머뭇거리다 평소엔 잘 가지 않던 길을 택한다. 학교와 병원 앞을 지나면서부터는 샌들을 벗어들고 잔디를 밟는다. 새벽마다 잠을 깨우는 사원을 지나고 주택가가 끝나는 경계지점에 도달한다. 순탄하게 흐르던 길은 거기에서 뚝 끊긴다.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철책이 도로 한 중간을 가로막고 있고 빼곡히 들어찬 방풍림이 밖으로 향하는 시야를 차단한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림 같은 풍경을 가위로 싹둑 잘라버린 것 같다. 에덴에서 잘려나간 구역, 나는 경계를 넘어 그곳으로 향한다.

상처투성이의 또또를 집으로 데려온 것은 변명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겨우 열다섯 살밖에 안된 소년이 쇼핑센터에서 외국인의 지갑을 노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무슨 일이든 이유가 필요했다. 남편과 딸이 있는 여자를 사랑했던 이유, 나를 사랑한다던 그녀가 나를 버린 이유, 내 생의 쳇바퀴가 엉뚱하게 적도의 자오선을 따라 굴러야 하는 이유. 또또는 주차장에서부터 내 뒤를 밟았다. 입구 부근에 숨어서 기다리다가 환전소에서 달러를 교환하고 나오는 나를 몸으로 밀쳤다. 나는 입구에 세워져있던 화분을 안고 쓰러졌고 작고 깡마른 사내아이가 바닥에 떨어진 내 지갑을 낚아채는 것을 보았다. 당황한 내 입에서 도둑이야! 하고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그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도망가던 또또의 발을 누군가 걸어 넘어뜨렸고 발길질 하나가 그 애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또또는 비명을 지르며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이어서 무수한 주먹과 구둣발이 무방비상태의 또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길거리재판이었다. 죽을 만큼 때리는 것이 아니라 때려서 죽여 버린다는 길거리 재판. 피해자인 나는 단지 구경꾼에 불과했다. 변론이나 판결도 없었다. 부근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형집행인을 자청했다. 순찰 중이던 경비원들이 도착했을 때 또또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내 지갑도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건물은 3층짜리다. 한때 극장과 쇼핑몰로 성황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화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잡초사이에 누워있다. 검게 그을린 벽에 군데군데 붉은 페인트로 휘갈긴 낙서가 보인다. 입구마다 셔터가 내려져있고 놀이기구가 있던 곳은 뼈대만 앙상하다. 바람이 불자 녹슨 셔터에서 쇳소리가 울린다. 폐허 속으로 퍼져나간 소리가 다시 깨진 창문을 뚫고 밖으로 나온다. 스산하고 불길하다. 셔터를 열어달라고, 혼들이 안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에덴에 집을 구하겠다고 했을 때 교장과 선생들은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도네시아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내가 그곳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오래 전에 그곳을 떠났다며 말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고집을 꺾지 않자 다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다. 하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이런 나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수학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부모한테 들은 10년 전의 이야기를 내 앞에서 풀어놓았다. 사실과 소문이 뒤엉켜있는 이야기는 항상 어수선했다. 쇼핑센터에 갇혀 불에 타죽었다는 수백 명도 정체가 불분명했다. 어떤 학생은 겁에 질린 중국인들이 쇼핑센터에 숨어 있었다고 했고, 다른 학생은 그게 아니라 현지인들이 쇼핑센터를 약탈하는 도중에 불이 났다고도 했다. 화재가 방화였고 셔터가 밖에서 잠겨 있었다는 점만은 양쪽 모두 일치했다.

벽면을 따라 모퉁이를 돌자 불에 탄 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간판이 나타난다. 화재의 흔적이 남아있는 데다 오랫동안 비바람에 시달린 탓인지 그림은 윤곽이 희미하다. 부부로 보이는 젊고 잘생긴 남녀가 쇼핑카에 물건을 가득 싣고 간판 속에서 웃고 있다. 상대적으로 많이 탄 여자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져 있어서 남자의 멀쩡한 얼굴과 대비를 이룬다. 언뜻 보면 남자가 여자의 고통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림 속 여자의 표정이 내 기억 속의 한 여자를 불러낸다. 윤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일요일 오전, 서울의 어느 마트에서 남편과 함께 카트를 밀며 간판 속의 여자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물과목을 담당했던 그녀는 조용하고 말이 없는 편이었다. 그 때문에 2년 동안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우리는 거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당연히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슬하에 6살짜리 딸이 있고 남편이 치과의사라는 것, 나비채집이 취미이고 얼굴에 좀처럼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정도가 내가 윤에 관해 알고 있던 전부였다. 기말고사를 보름 앞둔 어느 토요일 오후, 내 책상 위에는 선생들이 퇴근하며 올려놓고 간 시험지가 쌓여있었다. 윤은 책상과 책꽂이를 뒤적이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뭘 잊어버렸어요? 그녀가 어색하게 웃고 말았으므로 나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시험지를 학년별로 분류하고 간추려서 인쇄실로 넘기는 것이 당직인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정리가 거의 끝나갈 즈음 윤이 제출한 2학년 생물시험지 뒷면에 붙어있는 노란 포스트잇이 눈에 띄었다. 나는 포스트잇을 떼어낸 다음 무심코 거기에 적힌 낙서를 읽었다. 어렸을 때부터 치과가 싫었다. 그런데도 치과의사와 결혼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개를 들어보니 윤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와 포스트잇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진짜 표정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채점이 끝난 수학시험지를 앞에 놓고 태영이 머리를 긁적인다. 한 달 가까이 함수만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치고는 형편없는 점수다. 태영은 처음부터 함수를 어려워했다. 특히, 하나의 변수에 다른 두 개의 변수를 대응시키는 이차함수의 개념이 녀석을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모눈종이에 포물선을 그려서 보여주면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수식으로 넘어가면 계속 헤맸다. 내 경험으로는 결혼이 함수를 설명하는 데 꽤나 효과적이었다. 집합 X의 원소에 집합 Y의 원소가 각각 하나씩 대응한다, 보다는 여자가 한 명의 남자한테 시집간다, 라는 설명을 대부분의 학생들은 훨씬 쉽게 이해했다. 하지만 태영은 대부분의 범주에 속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문제를 풀다가도 녀석은 자주 되물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어요? 이차함수를 수학이 아니라 인문학의 관점으로 보려는 녀석의 기질이 문제였다.

문제는 또 있다. 태영은 영어로 진행되는 간디스쿨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지난 학기에 JIKS(자카르타 한국 국제학교)에서 지금의 학교로 옮겼지만, 간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태영의 엄마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리라 믿고 있다. 언젠가는 자신의 아들이 인도학생들과 유창한 영어로 대화하는 날이 올 거라고 말이다. 다만 아들의 수학점수만큼은 불안했던지 나한테 과외를 부탁했다.

앞집 남자다. 문밖에서 태영을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그의 차가 집 앞에 멈춘다. 경음기가 울리자 앞집 여자가 맨발로 뛰어나온다. 남자의 귀가는 사흘 만이다.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 컴퓨터 부품이 세관에 묶여있는 바람에 남자는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차에서 내리는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남자가 여자에게 가방을 건넨 후 나에게 다가온다. 얼굴이 불그레한 것이 대낮부터 한잔 걸친 기색이다.

"오랜만입니다. 앞집에 살면서도 얼굴보기가 쉽지 않네요."

"일이 잘 해결된 모양이죠?"

남자가 나를 향해 씩 웃는다. 손가락을 우두둑 꺾는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고는 마치, 일기예보 하듯 한마디 툭 던진다.

"앞으로 진짜 얼굴보기 힘들 것 같은데요."

저녁공기를 타고 그에게서 술 냄새가 풍긴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아기와 닮은 곳을 찾아 탐색한다. 이마와 코, 눈, 입매를 뜯어보고 각진 남자의 턱을 윤곽도 드러나지 않은 아기의 턱과 비교해본다. 불행히도 아기는 남자보다 여자를 더 많이 닮았다. 남자는 평범한 아빠와 다르다.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추지도, 유모차에 태우고 집 앞을 산책하지도 않는다. 어쩌다 그가 아기를 안고 집 앞을 서성이는 경우는 대개 여자가 샤워중이거나 청소기를 돌릴 때다. 그럴 때 남자는 아기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아기와 자신의 얼굴을 자동차 백미러에 비춰보는 남자의 눈길은 항상 의미심장하다.

윤의 수첩에서 그녀가 딸을 안고 찍은 사진을 봤을 때, 나 역시 모녀간에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을 찾으려 애썼다. 그래야만 그녀를 온전히 내 여자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사진속의 딸은 엄마를 쏙 빼닮은 얼굴이었다. 가늘고 고운 머릿결과 긴 속눈썹, 통통하고 동그란 귓불과 뾰족한 턱까지 윤과 똑같았다. 내 눈에는 마치 서른두 살의 윤이 여섯 살의 윤을 안고 찍은 사진처럼 보였다.

남자가 의뭉스런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갑자기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나한테 오라고 윤에게 말했을 때의 내 모습도 저랬지 싶다. 마치 우리가 공범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어둠이 깔리면서 주변 집들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8시밖에 안됐는데도 인적이 끊기고 집 앞 도로에는 이따금 경비원들의 자전거만 지나다닌다. 사위가 고요할수록 개들은 사소한 소리에도 예민해진다. 고즈넉한 저녁이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생활이 단조롭다는 뜻도 된다. 이곳 주민들의 최고 관심사는 안전이다. 과거의 끔찍한 기억이 그들의 얼굴에서 윤기를 앗아간 후부터 카페와 식당이 늘어섰던 상가는 점점 비어가고 있다.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도 간신히 운영되는 실정이다. 대신 경비초소가 배로 늘어났다.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라지만 사실상 통제대상은 현지인들이다. 유니폼을 착용한 운전기사와 가정부들만 예외다. 21세기의 에덴은 더 이상 신의 것이 아니다. 출입을 금지당한 토착민들의 것도, 깊은 상처를 간직한 중국인들의 것도 아니다. 이곳을 낙원으로 소개한 워싱턴포스트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이방인들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앞집 남자와 나도 포함된다.

라니 방에서 낮게 읊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에 다섯 번,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라니의 절대시간이다. 세탁기를 돌리거나 바느질을 하다가 혹은 잠을 자다가도, 라니는 기도시간만 되면 바닥에 양탄자를 깔고 엎드린다. 라니의 머리가 메카를 향할 때 두 평 남짓한 그녀의 방은 기도로 꽉 찬다. 그녀의 기도는 조심스럽다. 누가 엿듣기라도 할까봐 항상 방문을 걸어 잠근다. 기도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라니에게 무슨 간절함이 저리도 많은지 가끔은 궁금해진다.

윤을 제외하면 내 삶에는 도무지 간절한 것이 없었다. 그녀가 당일로 혹은 1박2일로 채집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도 함께 따라나섰다. 우리는 낮에 나비를 잡고 저녁에는 마취와 방부제 처리를 했다. 그리고 밤에는 그녀를 안고 잠이 들었다. 어느 날인가 새벽에 깨어보니 윤이 손가락으로 내 입안을 더듬고 있었다. 당신 왼쪽 어금니 안쪽에 뾰족하고 딱딱한 게 느껴져. 사랑니 같은데, 아프지 않아? 그래? 전혀 몰랐는걸.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혀로 어금니 안쪽을 쓰다듬어 보았다. 혀끝에 낯선 이물감이 느껴지기는 것 같기도 했다. 통증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 나를 윤은 부러워했다. 그녀는 내 앞에서 입을 벌리고 썩어가는 자신의 사랑니를 보여주었다. 나는 겁이 많아서 탈이야. 남편이 수술로 간단히 뽑을 수 있다는데도 무서워서 거절했어. 나는 그녀의 입안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곳에 들어있는 분홍빛 혀와 촘촘히 박힌 치아는 나를 매혹시켰다. 따뜻해 보였다. 세상 어떤 곳보다 내 마음에 꼭 드는 장소였다. 그 속에 자리를 잡고 하얗게 뿌리를 내려, 매 순간 그녀의 혀와 만나고 싶었다.

오토바이 한 대가 대문 앞에 와서 멈춘다. 유난히 마찰이 심한 브레이크의 소음은 또또의 오토바이만이 낼 수 있는 소리다. 또또는 오토바이로 돈을 번다. 가까운 거리는 2천 루피아를 받고, 먼 거리일 경우엔 가격을 먼저 흥정한 다음 사람을 태운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10만 루피아 정도는 벌었을 것이다. 또또가 열쇠로 현관문을 따고 들어온다. 헬멧과 전대를 벗어 식탁에 올려놓는 소리가 2층까지 울려 퍼진다. 식탁 위를 구르던 헬멧이 오늘도 어김없이 바닥에 떨어진다. 라니가 방에서 나와 조용히 또또를 타이른다. 하지만 별로 변하는 건 없다. 소리는 또또에게 하나의 존재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가끔 또또가 '부재중' 임을 알리는 데도 효과적으로 쓰인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8시와 9시 사이, 나 혼자 방에서 음악을 듣거나 하릴없이 잡생각에 빠져있을 무렵이면 갑자기 아래층에 있는 또또의 빈방에서 탁상시계가 울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라니는 1층에서 나는 2층에서, 어쩔 수없이 또또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는 식이다.

병원에서 또또를 집으로 데려온 날, 라니는 또또의 말투에서 중부 자바지방의 억양을 발견해냈다. 하지만 그쪽 경찰서에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자카르타 경찰서에서도 또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실종신고는 접수된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자체가 의심스럽다. 또또는 라니와 내가 지어준 이름에 불만이 없어 보인다. 잃어버린 기억에 별로 집착하지도 않는 것 같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처음엔 지도책을 펴놓고 귀에 익은 지명을 찾으려 시도하더니 얼마 못가서 금방 포기해버렸다. 또또는 과거보다는 현재에 에너지를 쏟았다. 악착같이 돈을 벌고 매 순간 소리를 생산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또또는 내일도 샤워 중에 노래를 부를 것이고 식탁에서는 접시와 스푼을 쉴 새 없이 달그락거릴 것이다. 또또는 자각하지 못하지만, 나에게 그 소리는 조난신호로 읽힌다. 끊임없이 어딘가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애쓰는 소리의 모스부호다. 다만 그 신호가 내 안테나에 자꾸 잡힌다는 것이 조금 성가시기는 하다.


마당에서 라니가 잔디를 깎고 있다. 두 개의 가윗날이 서로 엇갈리며 제법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찰캉……찰캉……내 심장이 뛰는 소리 같다.

드디어 척후병 한 마리가 책꽂이 뒤에서 머리를 내민다. 놈이 눈알을 굴리며 혀로 방안 공기를 탐색한다. 후다닥 몇 걸음을 내딛고는 다시 혀를 내민다. 몇 보 전진……탐색, 다시 전진…… 하는 식이다. 도마뱀이 노리는 것은 내가 책상에 올려놓은 죽은 벌레 몇 마리다. 나는 침대에 앉은 채 눈으로만 놈을 쫓는다. 잡으려고 해봐야 소용없다. 나와 책상의 거리는 약 2미터, 도마뱀과 책꽂이의 거리는 50센티미터가 채 안 된다. 놈이 열 걸음 이상을 움직이는 동안 나는 두 걸음만 떼면 된다. 하지만 내가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놈의 혀가 위험을 먼저 감지해낸다. 몇 번을 시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2미터는 애매한 거리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팔을 뻗으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다. 서로에게 몰입하지도 않고 입장이 달라도 적대시하지 않는 거리가 2미터인 것이다. 나와 도마뱀도 서로 입장이 다르다. 나는 놈들에게 벌레를 잡아주고 고양이나 새의 공격으로부터 놈들을 보호한다. 말하자면 내가 도마뱀들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길들이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놈들이 그것만은 단호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2미터는, 그러니까 기름과 길들임의 차이인 셈이다.

앞집 여자다. 그녀가 집밖으로 걸어 나온다. 아기를 업고 양손에 가방까지 들었지만 발걸음이 가볍다. 앞집 남자다. 그가 집밖으로 걸어 나온다. 손에 아무 것도 들지 않았고 당연히 발걸음도 가볍다. 남자가 대문 빗장을 벗기고 차에 시동을 거는 동안 여자가 도로를 건너온다. 반짝이는 그녀의 새 구두가 잔디를 손질하는 라니 앞에서 멈춘다. 여자는 외출복 차림새다. 여자의 들뜬 표정과 들고 있는 가방의 부피를 보면 하루나 이틀은 소요될 외출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여자는 친정에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가 여자를 부른다. 여자의 구두가 다시 도로를 가로지른다. 대문이 닫히고 차 소리가 멀어져 간다.

다시 책상 위를 바라본다. 도마뱀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놈들은 아직 거기에 있다.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자세히 보면 책상의 원목무늬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책상이지만 잠시 후에 놈들은 벽이나 천정인 척 시치미를 떼고 있을 것이다. 위장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놈들은 항상 사물보다는 배경을 선택하는 편이다. 내 손길이 자주 닿는 물건들, 이를테면 볼펜이나 칫솔 면도기로 위장하지는 않는다. 2미터의 거리에서 사물은 시선을 집중시키지만 배경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갑자기 책상의 무늬들이 후다닥 흩어진다. 보호색을 바꿀 여유도 없이 놈들이 벽으로 천정으로 미친 듯이 기어오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놈들이 패닉상태에 빠진 것 같다. 내가 침대에서 꼼짝 않고 앉아있는데도 말이다. 움직이는 방향도 평소와는 다르다. 도마뱀은 위험을 느끼면 일단 구석진 곳으로 숨는데 오늘은 일정한 방향도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천장을 가로지르던 도마뱀 한 마리가 내 앞에 툭 떨어진다. 재빨리 놈을 덮친다. 성공이다. 마침내 행운을 잡았다. 손바닥에 놈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놈이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뭔가가 손에 느껴진다. 미세하게 시작되는 흔들림. 점차 뚜렷해지며 주변으로 확산된다. 지진이다.


울루와티는 인파로 넘실거린다. 하루 종일 계속된 여진이 사람들을 광장으로 내몬 탓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광장으로 걸어들어 간다. 인공의 구조물이 없는 탁 트인 곳에 서자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풍물시장을 지나는데 휴대용 텔레비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화면을 꽉 채운 자바 섬을 배경으로 중년 남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있다.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100Km지점에 빨간색 램프가 깜박거린 후 화면이 바뀐다. 카메라는 무너진 건물과 끊어진 다리를 잠시 비춘 다음 겁에 질린 시민들의 표정을 클로즈업시킨다.

지진을 몸으로 느껴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창문이 흔들리고 책상위에 있던 색연필이 바닥에 굴러 떨어지자 도마뱀처럼 나도 우왕좌왕했다. 이성은 마비되고 본능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머리위의 전등이 흔들리고, 달력이 벽에서 춤을 추고, 욕실에서는 컵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최초의 진동이 멈춘 후 내 손에는 도마뱀의 꼬리만 꿈틀거리고 있었다.

부모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지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솜사탕이나 막대사탕을 빨며 지진이 가져다 준 하룻밤의 외출에 행복해할 뿐이다. 또또도 역시 어느 틈엔가 사라져버렸다. 벌써 구미에 맞는 흥밋거리를 발견한 모양이다. 이곳을 잘 아는 아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울루와티가 처음인 나는 라니를 따라 움직인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면 나도 멈추고, 그녀가 시선을 빼앗기는 곳에 나도 시선을 빼앗긴다. 라니나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지진에 대한 공포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오늘이 첫 경험이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생활의 일부인 듯하다.

누군가가 밤하늘에 싸구려 폭죽 하나를 쏘아 올린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수십 개의 작은 불꽃이 머리 위에서 피어난다. 불꽃이 낙화한다. 사람들의 얼굴에 울긋불긋 불꽃물이 든다. 몽환적인 표정으로 서있던 라니가 눈을 반짝이며 어딘가로 내 손을 잡아끈다. 그녀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커다란 천막을 씌운 와양 공연장이다. 객석을 차지한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들뿐이다. 다들 무대 위의 그림자에 홀려있다. 라니가 무대 앞 빈자리에 앉자 나도 그녀 옆에 엉거주춤 자리를 잡는다. 조명으로 환하게 빛나는 스크린에 검은 그림자가 변사의 목소리에 맞춰 움직인다. 남자가 바다 속 괴물한테 납치당한 아내를 우여곡절 끝에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흔해빠진 스토리였고 이방인인 내가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은 거기까지가 한계다. 실루엣의 섬세한 움직임이 스크린에 나타날 때마다 변사의 목소리는 여자로, 괴물로, 남편으로 자유롭게 변주된다. 남편이 칼로 괴물의 목을 자르고 아내와 포옹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결말을 비극으로 본 사람은 나 혼자다. 목구멍에 뭔가가 울컥, 치받는다. 팔걸이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무대로 뛰어 올라가서 장막을 걷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른다. 스크린을 들추면 거기에 윤이 있을 것이다. 인형사의 줄에 포박당한 그녀가 괴물을 위해 하염없이 울고 있을 것이다.

나는 윤의 불안을 달래주지 못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를 피하고, 어쩌다 단 둘이 있을 때에도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는 그녀 앞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길거리의 어느 카페에서 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우린 서로 종(種)이 달라. 당신과 내가 잉태할 수 있는 것은 고통뿐이란 말이야. 그걸 모르겠어? 그때가 작년 10월이었고 우리가 앉아있던 테이블 위에는 발행일이 오래 지난 워싱턴포스트지가 펼쳐져 있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윤이 진심을 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여섯 살짜리 딸이 있고 세상에는 몸 따로 마음 따로 인 상황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갖 변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얗게 빛나리라 믿었던 내 사랑니가 결국은 썩고 말았다는 것을. 윤과 헤어진 나는 곧장 그녀의 남편이 운영하는 치과로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남편에게 내가 얼마나 아픈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마취를 거절하자 그는 곤혹스러워했다. 많이 아플 텐데요.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그를 향해 내가 말했다. 바로 그걸 원하는 거예요. 그가 집게로 내 입에서 사랑니를 뽑는 동안 나는 치료용 의자에 누워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태영이 재빨리 손으로 눈가를 가린다. 방에 들어설 땐 모자를 쓰고 있어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얼굴이 온통 멍투성이다. 녀석이 손바닥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묻는다.

"선생님, 제 몸에서 정말로 마늘 냄새가 나요?"

나는 들고 있던 수학책을 다시 내려놓는다.

"인도 애들이 너한테 마늘 냄새가 난다고 놀렸니?"

녀석의 고개가 맥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어깨가 조금씩 들썩거린다. 나는 녀석의 나약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유리잔 두 개를 준비하고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낸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앞집 여자다. 그녀가 아기를 등에 업은 채 문밖에서 울고 있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모습이다. 라니가 뛰어나가 그녀를 부축한다.

"아이 아빠가 없어졌어요. 짐도……모두 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여자의 어깨를 넘어 앞집으로 향한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고 실내등도 전부 켜져 있다. 옷가지와 잡다한 물건들로 어질러진 집안이 도로 건너편에서도 훤히 보인다. 새벽 무렵에 유독 신경에 거슬렸던 낯선 소음의 의미가 이제야 이해된다. 사원의 기도와 불협화음을 이루던 발소리와 자동차 엔진소리, 거칠게 닫히던 대문소리. 여자의 도마뱀이 스스로 꼬리를 잘라내는 소리였던 것이다.

"당신은 알고 있죠? 제발 말해 주세요. 아이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갔나요?"

라니의 품에 안겨있던 여자가 나를 향해 묻는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당황스럽지는 않다. 단지 이 상황에 어울리는 표정이 떠오르지 않아서 조금 어색할 뿐이다. 여자는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 행운은 길들일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을 예감하지 못한 대가는 온전히 여자와 아기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고 싶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라니와 눈이 마주친다. 라니가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시선이 돌아간다. 명치끝이 뻐근하게 결려온다.

잔에 주스를 가득 따라 쭉 들이켠다. 뻐근함이 가라앉지 않는다. 다시 한잔을 채워들고 계단을 오른다. 라니가 여자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전부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고 낯선 발음과 억양들이다.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여자의 등을 쓸어내리는 라니의 손이다. 기도로 단련된 그녀의 손이 내 등에 얹히는 걸 상상해본다. 어이없게도 나는 지금 여자의 등을 질투하고 있다.

태영은 이미 울음을 그친 뒤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을 펴놓고 혼자 문제를 풀고 있다. 주스 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한동안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문제가 어려운지 녀석은 계속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손으로 꼰다.

"태영아, 정 힘들면 선생님이 엄마한테 얘기해 줄까? 다시 한국 학교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말이야."

충혈된 녀석의 눈이 내 눈과 마주친다. 녀석의 눈가에 배시시 웃음이 번진다.

"그래도 처음 보다는 많이 나아졌어요. 요즘은 말을 걸어오는 애들도 가끔 있거든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아볼래요."

녀석의 대답에 그만 아득해지고 만다.


전화벨이 울린다. 초저녁부터 한국에서 걸려온 국제전화가 벌써 여러 통이었다. 무너진 가옥에서 부상자들이 실려 나오는 광경을 텔레비전으로 본 가족들은 인도네시아가 얼마나 넓은 땅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인도네시아는 곧 나를 의미하고 여기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내 안부와 직결된다.

통화가 끝난 후에도 나는 쉽게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한다. 벽시계로 서울, 밤 10시임을 확인한다. 북위 37도 25분, 동경 126도 33분의 좌표에 윤이 있다. 001로 시작되는 열세 자리의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나와 그녀는 다시 교신이 가능하다. 숫자판에 손끝이 닿는 순간, 그러나 나는 멈칫한다. 영원히 기억되리라 믿었던 그녀의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머릿속이 멍해진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시도해본다. 001-82-2-…… 포기하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나는 지진이 원인이었다고 믿는다. 그녀와 나를 연결하고 있던 통신선의 마지막 가닥이 끊어진 때는 공포로 이성이 마비되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사랑니가 뽑혀나갔던 작년부터 그녀의 번호는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전등을 끈다. 방은 달의 뒷면이 된다. 침대에 누워 배에 손을 올려놓는다. 적도의 어느 좌표에서 발신된 소소한 전파 나부랭이가 여전히 내 안테나에 잡힌다. 오토바이가 집 앞에 멈춘다. 개들이 짖는다. 오늘도 또또의 헬멧은 식탁에서 굴러 떨어진다. 라니가 또또를 타이른다. 앞집에서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도마뱀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모든 신호들이 저항 없이 몸에 흡수된다. 나는 눈을 감고 서서히 열대의 꿈속으로 빠져든다.



[2009년 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경제 현실 다룬 작품 없어 의외… 당선작 안정된 글솜씨 믿음직
예심을 통과한 8편에서 다시 5편을 추렸다. 경제가 어렵다는 요즘 현실의 팍팍함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게 의외였지만 소설이 체험의 산물이면서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특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었다. '사이음'은 캐나다 한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특이했지만 소재를 너무 좁게 다루고 있다. '고추농사'는 아버지와 조부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정작 나의 고민이 빠져 있을 뿐더러 호칭사용에서도 혼란을 보여준다.

노인계소설인 '그들만의 유희'는 치매와 반신불수로 고통받는 인물들의 일상을 밝고 건강하게 그린다는 점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언어사용이 거칠며 인물로부터 서술자의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어 긴장감을 놓치고 있다. 연인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적 외상을 앓는 남자를 이야기하는 '내 연인의 황토 찻잔'은 장치물들을 서사전개에 긴밀하게 연결시키지 못하면서 현재시간에 등장시킨 여자의 처리에 문제가 있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모던 에덴'은 간결하고 세련된 문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가지런히 전개시키는 안정된 솜씨에 우선 믿음이 간다. 이질적인 문화를 산만하지 않게 활용하면서 인물의 심리에 실감을 주는 도마뱀과 사랑니 지진 등의 소도구와 배경을 제대로 의미화시킬 뿐더러 플롯으로까지 확장시킨다는 점도 높이 살 만하다. 본심 심사위원 오정희(소설가) 조갑상(소설가·경성대 교수)

추천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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