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만개/임강빈 시(독서신문)
페이지 정보

본문
만개滿開
임강빈/195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의 손, 동목, 한 다리로 서 있는 새, 집 한 채 외.
겨울 뒤에서 숨어 있다가
작심한 듯
마침내 뇌관을 터뜨린다
일제히 터뜨린다
펑펑
가지마다 꽃이 만개한다
꽃은 몸 전체로 핀다
조용하지만 치열하다
순수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꽃은 허구虛構가 없다
―임강빈 시집 이삭줍기에서
감상/봄은 소리 없이 온다고도 한다. 봄은 너무도 부드러워서 언제 우리 곁에 찾아왔는지 느끼기가 어렵다고도 한다. 거세고 요란한 겨울바람에 비해 봄바람은 너무 포근하고 따뜻하여 그 존재의 강력함이 겨울만 못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봄이 밀어낸 겨울을 돌아보자. 한때 무소불위의 위력을 과시하던 겨울은 얼마나 강력한 존재였던가. 겨울의 기세가 등등할 때에는 아무도 그 기세를 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고, 그 기세 꺾이기 전에 오히려 모든 것이 끝나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위축되지 않았던가. 그 거대한 겨울을 일시에 밀어내버리는 것이 바로 봄이다. 그러니 봄의 에너지야말로 겨울을 능가하는 더 대단한 힘이 아니겠는가. 그 힘의 본질은 말할 것도 없이 만물의 기본 에너지인 생명력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봄의 첨병이 꽃이다. 봄은 겨울의 뒤에 숨어 있다가 때가 되면 일시에 겨울을 제끼고 그 첨병을 내보낸다. 일제히 뇌관을 터뜨리며 마치 기관총을 쏘듯이 펑펑거린다. 온몸으로 대지를 박차고 나와 치열한 정신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순식간에 세상은 신명나는 세상으로 변해버린다. 순수의 세계이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을 잘 참고 견디기만 하면 반드시 봄의 생명력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교훈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설마 봄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봄의 첨병인 꽃의 총탄세례를 받으며 새로운 꿈의 세계를 창조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장종권
- 이전글사월/박완호 시(독서신문) 12.01.13
- 다음글밤꽃 아리아/김동호 시(독서신문) 12.01.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