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편지/허형만 시(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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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허형만/1945년 전남 순천 출생. 197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풀무치는 무기가 없다, 첫차, 눈 먼 사랑 등. 영랑시문학상, 순천문학상 등 수상. 목포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서리서리 감아서 숨겨둔 그리움
풀어서 다시 보니
모든 게 다
내 탓인 줄 알겠더라
잘 있느냐 사랑아
아즐아즐 아즐하게
애돌아 살아온
알천 같은 사랑아
안개에 쌓인 듯 아슴아슴한
선잠도 풋잠도 토막잠도
모든 게 다
내 탓인 줄 알겠더라
―허형만 시집 그늘이라는 말에서
감상/세상이 변해서 핸드폰을 통한 즉각적인 문자 사용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 좀 더 긴 내용이 필요해지면 이메일을 사용하면 그만인 것이 참 편리하고 빠른 세상이구나를 실감하게 한다. 우정도 사랑도 언제든 문자 한 방이면 순식간에 전달이 된다. 전혀 말이 길 필요도 없다. 온갖 미사여구로 상대방을 현혹시킬 필요도 없다. 간결한 세상에는 간결한 말이 어울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누구나 편지를 썼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는 편지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밤을 세우며 편지지에 매달려 한 통의 편지를 보내기 위해 몇 권의 편지지가 사라지곤 했다. 그리고 우체통에 집어넣을 때까지 다시금 몇 번이나 다시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는 했다. 그리고 그 편지가 상대방에게 도착하는 시간까지 얼마나 마음을 조이고 불안해하며 애를 태웠던가. 그것이 주로 지난날의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빛바랜 편지들을 열어보는 일은 지난 시절의 황홀했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작은 시도이다. 세월이 지난 후 비밀스럽게 숨겨둔 편지들을 홀로 열어보는 것으로 사람들은 자신만의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을 다시 만든다. 돌이켜볼수록 새롭다. 돌아볼수록 부끄럽다. 어디어디 그쯤그쯤 해서 아름다운 사연이 끝나버렸을 경우에는 안타깝기 짝이 없다. 조금만 주의했어도, 조금만 겸손했어도, 그 좋은 사람들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뒤늦은 후회가 따라온다. 지난 편지들을 낡은 편지합에서 꺼내 읽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남몰래 갖는 비밀스럽고 행복한 시간이다. 반성과 용서의 따뜻한 시간이다./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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