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고창수 시/가을은 그 맑은 광채로/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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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수
흥남 출생. 196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파편 줍는 노래, 산보로, 원효를 찾아, 사물들, 그 눈과 귀 외. 시문학상, 바움문학상 등 수상. 주이디오피아 대사, 주파키스탄 대사 역임.
고창수 시/가을은 그 맑은 광채로
가을은 그 맑은 광채로
우주의 끝까지 비춰줍니다.
우리의 몸은 오색 연처럼 하늘에 뜨고
우리의 눈 속엔
만화경의 세계가 넘실거립니다.
우리의 넋을 울리는
우주 교향악이 울려 퍼집니다.
우주의 무한공간 속으로 맨몸을 던졌던
옛 시인들을 기리게 하시고
한국말의 시원 너머
언어가 태어나는 기적을 보게 하소서.
한민족의 가슴에 난 상처를
우리의 시 속에 옮겨오게 하소서.
우리의 시공이
우주 속에 오래 피어있는 꽃동산임을 믿게 하소서.
우주의 신비에 눈뜨게 하소서.
또한 우주의 신비에 눈 감게 하소서.
-고창수 시집 <사물들, 그 눈과 귀>에서
감상
봄은 싹이 트는 계절이므로 우주 생명의 시원이라고 한다면 가을은 아무래도 우주 공간이 가장 완숙한 경지에서 한껏 확장되며 열리는 계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주의 의미도 가을에 와서야 그 얼굴을 드러낸다. 여름은 너무 뜨거워서 겨를이 없었다. 세상이 보이고, 자연이 따뜻해지고, 그러면서 우주는 자연스럽게 그 얼굴을 손톱만큼 내민다.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은 겨우 그 정도에서 의문을 닫아야 한다. 우주의 신비는 신비로움 자체로 그만이다. 신비로워서 아름답고 신비로워서 경건해진다. 그래도 이 우주의 신비에 가장 접근해 가는 존재가 시인이다. 시인이 있어 우리는 우주의 신비를 잠시라도, 손톱만큼이라도 엿볼 수 있다. 우주의 신비를 더듬는 시인이 있어 민족의 상처도 이만하다는, 따뜻한 시인의 가을이 우주의 문을 열고 있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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