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고선주 시/무좀/경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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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주 시/무좀
세상이 갈수록 가렵다
비누로 씻어내고, 소주와 식촛물에 담가도
발에 견고한 집을 지은 무좀균들은
도무지 방 뺄 생걱이 없다
전셋값이 너무 오른 데다
물가와 교육비까지 올라 먹고 살기가 힘들고
삶에서 발을 아예 빼든가, 배짱이다
긁으면 생채기만 남기는
일상의 시시콜콜한 사건들
간지럽다 간지럽다
간지러워서
정말
죽을 맛이다
-고선주 시집 밥알의 힘에서
고선주
전남 함평 출생. 199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꽃과 악수하는 법.
감상
시원스러운 사회를 기다리는 일은 아무래도 요원할 듯하다. 너무 복잡해진 데다가 아전인수격으로 개인 이기주의나 집단 이기주의까지 팽배하여 물고 물리는 사정이 대추나무에 연 걸린 형국이다. 그러니 답답하고 가렵다는 것이다. 가려운 곳을 골라 긁어주면 될 것인데 이것이 긁으면 긁을수록 성을 내는 무좀균이라는 것이 문제다.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고 시원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이 경우를 어찌해야 할까. 무좀균은 결코 쉽사리 물러서지 않는 집요한 존재다. 무좀균을 없애기 위해 발가락을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한 일이다. 무좀균을 가지고 있는 모든 한국사람들은 오늘도 가렵다. 어제도 가려웠고, 내일도 가려울 것이다. 지독한 무좀균이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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