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이상훈 시/또 발이 묶이다/경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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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시/또 발이 묶이다
우물가에 쪼그려 앉아 어떻게 하면 우물 속에 빠진
달을 길어 올릴까 궁리궁리한 끝에 결국 포기했다
북극 칠성의 무게를 재려고 푸줏간에서 저울을 빌려왔다
눈금 읽는 방법을 몰라 도로 가져다 주었다
옆마을 용한 점쟁이 왈 금년에는 애정운이 안 좋은
괘가 나왔다 하여 몹시 실망하여 점집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두루마기 편지지 낱장을 사서 왔다
손꼽이 기별을 기다리다 못 견디어 심부름 값을 주고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지만 모두 감감무소식이었다
찬 겨울이 오기 전에 낙향하려고 주섬주섬 봇짐을 싸는데
기러기가 먼저 찾아오는 바람에 또 발이 묶여
일 년을 더 눌러앉아 살기로 했다
-이상훈 시집 나비야 나비야에서
이상훈
전북 익산 출생.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나도 혼자 가는 길이다, 나비야 나비야.
감상
사람은 꿈을 꾸며 산다. 꿈이라도 있어야 이승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꿈이라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옳은 말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꿈을 꾸지 않으면 인생이 참 팍팍하고 답답하다. 허지만 꿈은 꾸어보았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루어지는 꿈과 시인의 꿈은 좀 다르다. 시인은 이루어지는 꿈은 처음부터 꿈이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꿈을 꾸다가 이루어지지 않아 절망하는 꿈은 아예 꾸지 않고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꿈이 별 거냐. 우물 속의 달을 건진들, 북극 칠성의 무게를 재본들, 점쟁이 괘가 좋다고 호들갑을 떤들, 기다리던 편지 받아본들, 도시를 떠나 낙향해 본들,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는 것이 시인의 주장으로 보인다. 역설을 통한 인생의 답 없음이 통렬하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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