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집착/천선자(독서신문)
페이지 정보

본문
천선자
2010년 <리토피아> 신인상. 막비동인.
천선자 시
집착
넌 사랑, 연민, 그 중간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거야.
기억의 조각들 끊임없이 뇌리 속을 헤집고 다니는 문턱.
밤새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뜰, 눈물의 뜰에 갇힌 문턱.
며칠 밤 자면 온다던 엄마의 목소리가 귀울음 하는 문턱.
너의 첫사랑이 떠나가고 그 후 몇몇 여자들이 떠나간 문턱.
까치발을 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너의 여자들을 기다리는 문턱.
닳아버린 문턱엔 어린 네가 살아가고 너의 여자들이 살아가지.
문턱은 세월의 수레바퀴를 멈추었고 텅 빈 뜰에 켜켜이 쌓인 적막.
무성한 칡넝쿨이 기둥을 감고 지붕을 감고 내 온몸을 감아서,
너의 여자들이 살아가는 그 슬픈 문턱으로 데려가지.
-애지 겨울호에서
감상
집착과 집중은 분명 다른 말이다. 집중이 생산성이 있는 어떤 일에 매달리는 현실적인 말이라고 한다면, 집착은 생산성도 현실성도 기대할 수 없는 그저 맹목적인 쏠림 현상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기가 지나도 다음 단계로 진행하지 못하고 그 상태에 머물러 있다. 못내 아쉬워서일까, 아니면 다음 단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망각도 있어야 산다고 배워 왔다. 버릴 것 버리고, 잃을 것 잃고, 잊을 것 잊고, 상처는 상처대로 간직하며 살 수만 있어도 인생은 살만 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시간,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을 즐기면서 조화롭게 사는 법에 익숙하도록 되어 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 잊혀진 사람, 잃어버린 환경은 집착한다고 해서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집착도 일종의 어쩔 수 없는 생명체의 본능일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목숨 걸고 집착하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문을 과감하게 열어야만 비로소 변화무쌍한 내일이 있다./장종권(시인)
- 이전글돌 쌓기/정승열(독서신문) 13.05.20
- 다음글바톤 타치/장순금(독서신문) 13.05.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