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굴뚝새/이성렬(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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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렬
1955년 서울 출생. 2002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여행지에서 얻은 몇 개의 단서, 비밀요원, 밀회.
이성렬 시
굴뚝새
나는 굴뚝새를 모르네
그럼에도 굴뚝새를 말하고자 함은
굴뚝새를 모르기 때문
굴뚝새가 굴뚝을 닮았는지
굴뚝새의 숨결이 검은지
나도 모르네
굴뚝새를 알려 하지 않네
굴뚝새를 만난다 해도
굴뚝새인지 알 수 없어
어느 추운 새벽
굴뚝 곁에 누워 온기에 기대는
새 한 마리 만나면
안개를 겹겹이 걷어내며
허방에 볼 비비어가며
한겨울을 굴뚝새와 함께
나고자 할 뿐이네
-이성렬 시집 <밀회>에서
감상
철이 들기 전에 어머니를 잃은 사람이라면 어머니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 수 없다. 실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본능 속에서 어머니를 아주 지울 수는 없다. 죽는 날까지 어머니를 그리게 된다. 잃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상상력으로 어머니의 존재를 자신과 뗄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꿈속의 어머니로 자신의 존재감과 생명력을 유지 내지는 연장시켜간다. 생명체이기 때문에, 혹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 시는 어머니 대신 굴뚝을 집어넣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질 듯도 하다. 굴뚝새는 길이가 10센티도 안 되는 진한 갈색의 텃새라고 한다. 이 새를 유심히 관찰해보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 시의 굴뚝새는 굴뚝으로 인해 상상력이 발동했을 뿐이며, 굴뚝이야말로 이 시인이 꿈꾸는 평화로운 세계의 핵심일 것이다. 유년시절, 토방 끝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새어나오는 굴뚝에 대한 기억은 가난해도 풍요로웠던, 그리고 언제나 꿈꾸는 어머니와, 고향과, 시의 시원이 아닐까./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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