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꽃 피는데 비/정온(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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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
1966년 김제 출생. 200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오, 작위 작위꽃.
정온 시
꽃 피는데 비
가랑이 벌리고 걷는
흰 원피스 입고 비를 맞는
저기 백목련
젖은 가지 위에 도드라지는 젖, 젖꼭지들
젊은 며느리가 급히 들어섰네 자지러지는 어린애를 당겨 안았네 어린애를 달래던 시아버지 팽하니 아랫목에 드러눕네 돌아앉은 젊은 며느리 땀 젖은 저고리를 서둘러 끄르네 그- 그런데 저 젖, 저 퉁퉁 불은 젖꼭지, 어린애보다 먼저 시아버지 물고 말았네 후다닥 뛰쳐나간 젊은 며느리 아궁이에 불을 지피네 연신 눈가를 훔치고 있네
바깥 마당엔 목련의 젖빛 봉오리
그 옆에 마른 대추나무
괜찮아
봄, 봄이니까
-정온 시집 <오, 작위 작위꽃>에서
감상
무릇 살아있는 것들의 살아가는 에너지는 싸잡이 생명에너지라 볼 수 있다. 살아있는 것들의 기본적이면서 궁극적인 목표는 당연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가장 신비로운 덫이다. 그리고 그 덫이 다름 아닌 성(性)의 문제이고, 그래서 생명 에너지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성 에너지일 수밖에 없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성적 에너지가 극대화 되는 계절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고, 절제하기도 어렵다.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성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답고 건강하다면 보다 더 성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생명체의 숙명이다. 젖봉오리 백목련에 몸이 다는 것이 마른 대추나무뿐이랴.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연분이 난다해도 그것은 당연히 봄 탓이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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