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작금의 사랑/이명(독서신문)
페이지 정보

본문
이명
경북 안동 출생. 201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앵무새학당.
이명 시
작금의 사랑
1.
주무르면 열이나는 찜질팩이 고장났다. 물렁물렁한 젤 속, 열을 일으키는 동그란 열판 두 개를 붙여놓고 아무리 똑딱거려보아도 발열되지 않는다. 내용연수가 한창 남아있는데 내 손가락만 화끈거린다 감감무소식이다
2.
안마의자가 탈이 났다 온몸에 열기를 전해주던 푹신한 의자의 아늑함이 사라졌다 앉으면 등을 주물러주고 있는둥 없는 둥 고용히 따뜻함이 전해오던 자리, 내부를 열고 전기선에서부터 열선까지 통로를 점검해 보았다 발열되지 않는 이유, 모호하다
-이명 시집 <앵무새학당>에서
감상
생명체의 신비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아예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개체분열이 필요할 때에는 그렇게 뜨겁던 사랑의 감정도 개체분열이 다 끝나가는 시점에 이르면 동시에 조금씩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본능적으로 타오르던 감정이 아무리 본능적으로 움직이려 해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기가 막히다. 기왕의 발열판을 아무리 부딪쳐 봐도 불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편안하고 따듯하던 서로의 아늑함도 어느새 매말라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청춘에 이런 현상을 예측이나 했을까. 죽을 때까지 서로를 마주보고 안기만 해도 본능이 작동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는 찜질팩처럼 고장이 나도 폐기처분할 수 없는 사이다. 아늑함이 없는 안마의자라 해도 쓰레기통에 버릴 수 없는 사이다. 죽는 날까지 가능성을 기대하며 발열판을 똑딱거려야 하고, 마지막까지 서로의 등과 어깨를 주물러야 하는 낡은 안마의자이다. 어쩌겠는가./장종권(시인)
- 이전글하강/김윤(독서신문) 13.05.20
- 다음글꽃 피는데 비/정온(독서신문) 13.05.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