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밥상 앞에서/이가림(경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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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림 시
밥상 앞에서
밥알 한 톨이
내 목구멍에 들어오기까지는
적어도 60만 명의 손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내 앞에 놓인
고봉밥 한 그릇,
작은 라마 사원의 궁륭穹窿처럼
거룩하다
날마다 부질없이
남들이 땀 흘려 쌓아놓은 사원을
세 채씩
허물고 또 허물고 있으니
이 탕감할 수 없는 죄값을
어찌 갚을꼬!
-계간 리토피아 겨울호에서
이가림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빙하기,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순간의 거울, 내 마음의 협궤열차, 바람개비 별 등이 있음.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펜번역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 수상. 현재 인하대 프랑스문화과 명예교수.
감상
인간은 누구나 우주를 가지고 있다. 오직 자신만의 우주이다. 그러니까 일개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그만의 소중하고 거대한 우주가 담겨있으니 아무리 못난 사람이더라도 우습게 볼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우주는 섬과 같아서 그 우주 단독으로는 존재 의미가 별로 없다는 것도 무시할 일은 아니다. 우주와 우주가 몇 겹으로 겹치고 엇갈리고 만나야 우주는 우주답게 확장하며 그 가치를 발휘한다. 밥 한 끼 먹으면서 밥알 한 톨에 묻은 수많은 우주를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저 혼자 힘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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