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실어증에 걸린 남자/정치산(경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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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산 시
실어증에 걸린 남자
그가 쓰러져 말을 잃었다. 팔다리를 펼 때마다 소리만 친다.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통증이 올 때마다,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다. 달아난 친구를 기다린다. 사라진 돈을 기다린다. 그가 나타나면 할 말이 있다. 돈이 돌아오면 살 것도 같다. 하늘이 무너질 때마다,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땅이 꺼질 때마다,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말이 아니어도 사람들 다 알아듣는다.
-계간 리토피아 가을호에서
정치산
2011년 <리토피아> 신인상. 원주문학상 수상. 막비동인.
감상
사람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말은 인격이 가장 고귀하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봉건주의가 무너지면서 인간의 가치는 이전과는 판이하게 상승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면서 이건 정말 아닌데, 라는 탄식을 금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물질이나 자본의 논리에 힘 없는 개인이 무지막지하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다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현대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그야말로 전투적인 정신무장이 필요해 보인다. 대부분의 경우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착한 사람들이 이겨낼 수 없는 상처를 받는 일이 흔하다. 정말 착해서일까, 아니면 너무 나약해서일까, 그도 아니면 세상이 너무 모질어서일까. 시인은 남자의 실어증이 배신한 친구와 돈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은 아직도 먼 곳에 있나보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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