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서정시 읽기
불량을 꿈꾸는 양질의 시인, 김보숙/인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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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을 꿈꾸는 양질의 시인, 김보숙
불량식품
1990년, 딱히 민주화도, 딱히 최류탄도, 딱히 폭력도, 딱히 가난도 없던 시절, 불량해지고 싶어도 도저히 빌미가 없던 그 시절, 우리에게는 불량식품이 있었다. 기꺼이 불량을 허락해준 아폴로, 쫀득이, 비닐과자, 물감주스, 뽑기, 젤리쨈, 아폴로를 쥔 더러워진 손으로 거뭇한 수염을, 부드러운 거웃을 그렸다. 허름한 문방구, 먼지 쌓인 구멍가게에 아무렇게나 진열되기 일쑤였던 불량식품, 하나 골라 빨아 먹다 보면 혓바닥은 빨강도 되고 파랑도 되어 불량을 물들였다. 빨갱이도 되고 파랭이도 되던 하교길, 바코드를 달기 전 세상은 순한 주둥이로 밀레니엄을 속삭였다.
-2002년 가을 <시에>에서
김보숙
2011년 리토피아로 등단.
세상은 변했다. 학교 부근에 혹여나 불량식품이 나돌기만 하면 순식간에 철퇴를 맞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먹는 음식에 불량식품이라고 하면 제조사가 불분명한 제품이나 제조일자가 불분명한 제품, 판매자가 비정상적인 것 등이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 불량식품이라고 하는 것들이 판을 치던 시대도 있었다. 우리는 그 불량식품들을 매일같이 사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말 맛이 있었다. 그리고 별 탈 없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으며, 그 세대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다.
불량식품이 사라지면 또 다른 불량스러운 일을 꾸며내고야 마는 존재들이 바로 어린 시절의 어린 심리다. 불량식품을 추방하고 나면 어린이들이, 혹은 사춘기 청소년들이 불량에서 멀어질 듯싶기도 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더 불량한 것을 꿈꾸는 존재들이 바로 이들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그들의 심리이며 권리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어린 사람들의 주변에서 각종 불량스러운 것들을 열심히 치우는 사이에도 그들은 어른들이 알 수 없는 더 깊은 불량스러움을 추구하게 되는것이다. 어른들의 사고에 대한 반작용도 물론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만의 불량스러운 세계를 그들 동세대의 특권으로 가지려 애쓰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만의 동질감을 위해 불량해질 빌미를 열심히 찾는 것인데, 그 속에서 그들은 불량이 아닌 양질의 인생을 배운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들이 아직 책임지지 않는 세상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강력한 어른들이 해결해줄 것이므로 아직은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린이는 빨리 어른이 될 필요가 사실 없다. 세상은 무한으로 발전하고 인류의 무궁한 꿈을 실현해가고 있지만, 한편으로 어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철부지성 불량한 순수가 그 바탕이 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최류탄도 가난도 없는 시절에 그들은 어떤 불량스러움을 찾아낼까. 문제가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아름다운 사회도 아니다. 어딘가에서 썩어가고 있는 불량스러움을 찾아내는 어린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들이 바로 시인들이다. 동심을 읽어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동심 속에서 꿈틀대는 불량스러움을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그 불량함 속에 어른들이 챙겨야 할 양질의 꿈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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